오십 줄이 넘으면 이런 저런 연유로 상가(喪家)에 들르는 일이 많아진다. 업종이 업종인지라 많은 경우 문상객들은 학계에서 낯익은 얼굴이기 십상이다. 조문하고 정담을 나누다보면 왁자지껄 악수공세가 펼쳐지는 인물이 나타난다. 십중팔구 학계를 발판으로 정계나 관계(官界)에 진출하여 한자리 하는 사람들이다. 애써 외면하는 나는 항상 처세에 뒤쳐진 거북한 딸깍발이가 된다. 대단한 순결주의자도 아닌 내가 이런 학계 인심의 쏠림에 내심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악수공세를 받는 “전직(前職)” 학자가 학문적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개인적 판단 때문인 경우가 많다. 허나 보다 깊은 연유는 대단치 않아보이는 일상(日常)의 집적이 종국에는 학계를 아는 새 모르는 새 “대단치도 못한” 부패의 유혹에 순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단치도 못한” 부패의 유혹은 우리 학계 주변에 널려있다. 트럭으로 수백억씩 져 나르는 정재계(政財界)의 대담함과 무모함은 없어도 학회를 유지하려면 관행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하찮은 일상적 부패의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한마디로 학회를 유지하려면 솔솔치 않게 돈이 든다. 국제회의라도 하려면 모시는 “귀한 분”들의 면면체면치레를 생각하고 교통과 행사준비의 편의를 위하여 호텔을 빌려야하고, 발표문에 대한 사례비 외에 청중의 밥값도 내주는 것이 관례이다. 청중이나 회원들이 참가비를 내지 않으면 이른바 스폰서를 구해야한다. 행사에 드는 돈은 확실한 이윤이 보장되는 직접투자라기보다는 여론형성이나 장기적 안목의 우군형성을 위한 간접투자의 성격이 짙다. 당연히 “눈먼 돈”이 타겟이 된다. 눈먼 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관가의 판공비거나 기업의 접대비이기 십상이다. 눈먼 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시쳇말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선후배나 제자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알음알음으로 줄을 댄다.
또 다른 유혹은 정부나 재계의 프로젝트 유혹이다. 미국 속담대로 “돈이 얘기한다.(Money talks.)”고 합법적인 제도적 절차를 밟아 프로젝트를 수주하였어도 전문가 집단인 학계는 구태여 발주자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결론을 미리 짐작하게 된다. 행사지원용 부패의 유혹이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일과성 관행이라면 이것은 보다 구조적이고 심각하다.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온당치 못한 국가정책이나 기업관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분석으로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한 환경영향평가가 슬금슬금 재앙의 축적으로 나타난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나 기업의 시장적 필요성에 대한 학계의 객관적이며 동시에 우호적 판단이 미분적(微分的) 공평과 동시에 적분적(積分的) 불공평으로 드러난 것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던가? 거대한 문제점에 비하면 학계가 얻는 것은 대단치도 못한 획득이다. 프로젝트 수주의 대가로 회원인 연구자의 연구비중 일정 부분을 오버헤드로 거두어 학회 운영비로 쓰는 정도이다. 이 와중에 관행적으로 액수가 적혀있지 않은 ‘백지’ 영수증이 오가기도 한다. 물론 학계행사의 경우와 진배없이 프로젝트 수주에 있어서도 상가에서 악수공세를 받는 “전직” 학계 인물이 중요 역할을 한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이다. 비판하면서 닮아간다고 학계는 비판적 분석과 감시의 대상인 제도나 집단을 관행의 이름으로 복사해가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 한국의 학계는 지식인 집단인체 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일반적 수준을 상회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종류는 비슷해도 정도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이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고 참여정부가 들이대던 항변과 유사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대접 받으려거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계는 학문적 관련업종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고슴도치 사랑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하찮은 부패의 유혹에 찔리고 너무 멀면 관찰과 분석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얘기하자. 학계는 눈먼 돈 탐내지 말고 검소하게 회원의 회비로 밥 먹고 회의하고 운영해야한다. 그래야 학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상가집에서 출세한 “전직” 학자를 만나도 서둘러 악수하러 손 내미는 일이 줄 것이다.
강명구 아주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