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스타벅스를 두 번 가봤다.

한 번은 나이든 선생님이 약속 장소를 거기로 잡아서 갔고,

다른 한 번은 역시 출판사 직원이 거기를 약속 장소로 잡아서 간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한 번도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는 셈인데,

가끔 보면 스타벅스 예찬자들이 눈에 띈다.

물론 알다시피 격렬한 비판자들도 많다. 나는 격렬한 비판자는 아니더라도

될 수 있으면 안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학교-집 바깥의 동선으로 나가는 일이

드문 편이니 사실 갈 일도 별로 없긴 하다.

그동안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는데,

마침 경향신문에서 [왜 스타벅스인가?]를 특집으로 다뤄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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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매거진X

[커버스토리]나홀로면 어때!한 잔의 허영심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cafe.daum.net/starbucks)은 회원 1만5천여명의 인터넷 카페다. 지난해 12월 이후 가입한 신입회원 500여명에게 20개 항목의 설문 e메일을 보냈다. 30명이 설문에 응했다.

경향신문 설문에 대답한 이들 중 몇명을 빼고는 ‘스타벅스 애호가’이며 적극적으로 설문에 응했다는 점에서 ‘특수표본’이다. 설문 응답자 30명은 많지는 않지만 ‘왜 스타벅스’인가를 이해하는 데 부족하지는 않다.

설문 응답자 나이는 20~24세가 23명(76.7%)으로 가장 많았다. 25~29세가 3명(10.0%), 15~19세 3명(10.0%)이었고, 30세 이상 1명(3.3%)이 설문에 응답했다. 여성이 22명(73.3%), 남성 8명(26.7%)이었다. 대학생이 20명(66.7%), 직장인이 8명(26.7%), 고등학생 2명(6.7%)이었다.

나이, 성별, 대학생 등의 공통분모를 따지면 ‘20대 초·중반의 여대생’이 가장 많다. 스타벅스의 주 마케팅 대상과 일치한다. 한국의 커피 역사·사회사 측면에서 ‘20대 여대생’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지은이 오두진씨의 설명을 빌리자면 ‘스타벅스를 계기로 커피의 소비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40~50대에서 20대로 바뀐 것’이다.

조선말 커피가 들어온 뒤 여성은 커피 소비의 주체라기보다 객체였다. 여성은 집안에서 남편에게 커피를 타주는 존재였다. ‘커피가게’의 대명사격인 다방에서는 남성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 배달하는 존재였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연인들이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커피’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남성 사이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오씨는 “스타벅스가 모든 걸 확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할까. 설문 응답자 50명(중복응답 포함) 중 ‘커피향·맛’을 꼽은 사람은 23명(46.0%), 스타벅스만의 분위기 14명(28.0%), 서비스 5명(10.0%), 음악·브랜드이미지·위치가 각 2명(4.0%)씩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맛은 과연 좋은가? 월간커피 홍성태 편집장은 “취향의 문제라 대답하기 곤란하다”면서도 “단 스타벅스 커피는 많이, 빨리 팔리기 때문에 커피의 회전율이 높다. 즉 신선하다 것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성공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 47명(중복응답 포함) 중 11명(23.4%)이 ‘새로운 커피문화’를 꼽았다. 다음은 브랜드이미지가 8명(17.0%), 서비스 및 감성·공격마케팅이 각각 6명(12.8%)이었다. 커피맛·향을 꼽은 이는 4명(8.5%)이었다.

‘스타벅스를 왜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커피맛, 분위기라는 답이 가장 많았지만, 한국 성공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는 ‘새로운 커피문화’란 답이 가장 많은 게 눈에 띤다. ‘새로운 커피문화나 브랜드이미지 때문에 스타벅스를 접했다가 커피맛과 분위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스타벅스에서 주로 뭘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중복응답자 48명 중 20명(41.7%)이 약속·데이트라고 답했다.

독서·공부가 16명(33.3%), 나홀로 휴식(18.8%), 커피즐기기 3명(6.3%)이었다. 약속·데이트같이 커피를 매개로 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공간이자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최적의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는 셈이다. ‘나홀로 스타벅스에’는 스타벅스가 들여온 새로운 커피문화기도 하다.

한달간 스타벅스를 찾은 횟수와 비용을 물어보았다. 30명 중 18명(60.0%)이 한달 2~5회 간다고 응답했다. 6~10회 5명(16.7%), 10~15회 2명(6.7%), 20회 이상 간다고 응답한 이도 5명(16.7%)이었다. 한달 스타벅스 커피값으로 나가는 돈은 1만~2만원이 9명(30.0%), 3만~5만원 10명(33.3%), 6만~10만원 9명(30.0%), 15만원 이상은 2명(6.7%)이었다.

이밖에 중복응답자 42명 중 17명(40.5%)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로 ‘카라멜 마끼아또’를 꼽았다. 30명 중 22명(73.3%)이 커피 말고 다른 물건을 사봤다고 응답했다. 중복응답자 40명 중 15명(37.5%)이 텀블러, 12명이 다이어리(30.0%), 9명(22.5%)이 머그잔을 샀다고 답했다.

〈글 김종목·김동은|사진 정지윤기자〉

 

[커버스토리]독서·휴식 ‘커피 그 이상’
스타벅스의 국내 첫 상륙지는 ‘이화여대 앞’이다. 1999년 7월 이곳에 1호점(이대점)을 냈다. ‘이대 상권’은 사업 성패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 이대점은 성공했고, 스타벅스 확장 전략의 근거가 되었다.

스타벅스 마니아인 안성원 김종은 신수정씨(사진 왼쪽부터).

스타벅스의 첫 커피 세례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지난달 22일 저녁 이대점에서 개점 당시 이화여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세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요즘도 2~3일에 한번꼴로 스타벅스를 찾는 마니아들이다.

“기숙사 개방행사 때 스타벅스가 판촉하러 왔어요.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줬는데 다들 ‘커피맛이 왜 이래’라는 반응이었어요.” 신수정씨(26)의 말이다. 안성원씨(26)는 “처음 입맛에 안 맞았는데 커피맛이 진화해 나갔다”고 기억했다. ‘테이크아웃’이란 것부터 모든 게 새로웠다. 줄을 서 직접 주문하고 받아야 했다. 자리는 창으로 나 있고, 안과 밖이 서로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신씨는 “미국, 캐나다에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들이 ‘서울에도 스타벅스가 생겼네’라며 반기며 찾기 시작했다”며 “그 친구들 영향을 받아 애호가들이 한둘씩 늘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멋’ ‘이미지’도 ‘라떼 세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녹색의 환경 이미지, 재즈 음악이 주는 편안함.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마력도 있었다. 신씨는 “아침을 여는 이미지도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해 리포트를 들고 가는 기분. 커피로 잠도 깨지만 그때는 나 스스로가 ‘있어 보인다’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종은씨(26)는 “영화 ‘유브갓메일’에서 맥 라이언이 스타벅스를 즐기는 모습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나서 친구들과 밥을 먹었는데 ‘스타벅스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간다’ ‘스타벅스 가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겼다. 커피는 기본이고 대화, 공부, 리포트 쓰기, 독서, 데이트, 사색, 휴식까지.

안씨는 “스타벅스의 가장 큰 의미는 ‘공간’이었던 거 같다. 그 공간에 흐르는 재즈 음악, 분위기도 좋아했지만 5,000원짜리 커피 한잔이면 몇 시간이고 있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폼나는 거였다. 웰빙의 시초격이었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현상’? 신씨는 “아는 영국인이 있는데 ‘서울에 스타벅스가 왜 이리 많으냐’며 놀란다”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회 분위기도 스타벅스 현상에 한몫 거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밥값’을 훌쩍 넘는 커피값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미국, 캐나다, 일본과 비교해 비싸다”며 “서구, 미국 이미지에 대한 값도 치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계속 승승장구할까? 안씨는 “서울에서 스타벅스는 대중화 단계인 것 같다. 커피 마니아 중에는 스타벅스보다 조금 더 비싼 커피빈, 파스꾸치 같은 델 가거나 유럽에서 오리지널로 배우고 온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매장이 늘자 또다른 차별을 시도하는 ‘구별짓기’가 새롭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김종목기자〉

 

그 이외의 나머지 기사들은 아래로 ...

http://news.khan.co.kr/s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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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6-1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싸서 가는데요. ㅎㅎㅎ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847795

balmas 2006-06-1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그럼요. 퍼가셔도 되고, 자료를 더 보충하셔도 되죠. ^^
매너님/ ㅎㅎㅎ 스타벅스가 싼가요?

스타벅스 현상은 여러 모로 시대의 상징 같더군요.
실재와 기호의 분열,
욕망에 대한 통치,
문화와 젠더,
등등등 ...

마늘빵 2006-06-1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거지로 세번인가 갔습니다. 저도 스타벅스 싫어요.

하이드 2006-06-1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커피마시러 가요. '마시러' 는 안 맞는다. '사러'
앉아서 마시는 시간은 백번에 한번도 안 될꺼에요.

mannerist 2006-06-1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스타벅스 가서 삼천원짜리 오늘의 커피 말곤 안마시거든요. 뭐 거기에 우유나 각종 파우더 무한 리필되니까요. 자세한 건 저 링크해놓은 페이퍼를 참고하심이^^

balmas 2006-06-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음, 그렇군요. 혹시 그래서 애인이 없는 건지도 ... 3=3=3=3=3
하이드님/ 스타벅스 커피가 맛이 있나요? 저는 주로 자판기 커피나
집에서 타먹는 커피만 먹다 보니 잘 모르겠던데 ... -_-a
매너님/ 그렇군요. ㅎㅎ 어쩌다 혹시 가게 되면 '오늘의 커피'를
시켜야겠네요. :-)

비로그인 2006-06-1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상대편이 약속 장소 잡을 때나 아니면 일정이 어긋나서 몇 시간 앉아 있어야 할 때만 가는데요. 솔직히 전 스타벅스 커피 정말 맛 없더군요.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에 적응이 되어있다보니 쓰기만 해요.

chika 2006-06-1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는 덴 스타벅스가 없습니다.
울 사무실 동네 찻집에선 생과일 듬뿍 넣은 생과일 쥬스가 삼천오백원입니다. 거기서 최고로 비싼거라서... 커피 열잔 마신 쿠폰으로만 사 먹습니다. ㅎㅎㅎ
(딴나라 스타벅스 얘기하는 것 같아서...;;;;;;)
- 아앗, 그러고보니 청도의 스타벅스에서 차 한 잔 마셨었슴다. ㄴ ㅑ ~ ;;;;;;

하이드 2006-06-1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커피를 맛으로 마시는 종이 못되어서, 대부분의 불쌍한 나인투파이브처럼 카페인을 보충하기 위해 마십니다.

balmas 2006-06-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몇 시간 혼자 있기는 편한 곳이더군요. 혼자서 책보는 사람들도
많고 ...
치카님/ ㅎㅎㅎ 생과일 주스, 오, 좋네요. :-)
ㅋㅋㅋ 하이드님 ... 역시! (-_-)b

싸이런스 2006-06-1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다방 콩다방 유감 ㅠ.ㅠ

이매지 2006-06-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150원짜리 학교 자판기커피나 뽑아서 벤치에 앉아 마시렵니다.
스타벅스는 그나마 가면 2명이서 하나 시켜서 시간이나 때우는 곳.

balmas 2006-06-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
예전에는 연대앞 독수리다방이 좋았는데 ... 빵 공짜로 주고 소파 편하고
오래 있는다고 눈치 주는 사람 없고 ... ㅋㅋㅋ
이매지님/ ㅎㅎㅎ 사실 학교 다니면 굳이 스타벅스 이런 데 갈 필요가 없죠.
자유롭게 있을 만한 데가 얼마나 많은데 말예요. :-)

balmas 2006-06-1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애님/ 난 따우님이 더 좋은데 ... ^^;;;
지난 번에 원두 커피 사다 먹는다는 이야기하신 거 기억나네요. ^^a
맞아요, 그래서 숨은아이님은 안가겠다고 하셨죠. :-)
흐흐흐, 새벽별님이야 가실 일이 별로 없으실 듯 ...

balmas 2006-06-1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고보니까, 진짜 "다애"가 아니라 "다우"네요,
따우님. ^^a

ceylontea 2006-06-12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로 커피메이커에 내려 마셔요... 에스프레소 기계는 노리고만 있구... 사서 마시기엔 커피 값이 당최 감당이 안되요.. --;
따우님.. 스타벅스 패스포트.. 이젠 더 이상 안해요.. 기존에 있는 사람은 적용될테지만..
전 그보다는 커피빈 원두. 파스쿠치 원두는 양이 너무 많아요..--; 커피빈은 커피빈 마일리지 쌓이고, 12번이면 한봉지 공짜, 그리고 필터도 10장인가 15장인가 줍니다..
전 주로 커피빈 Tiera(유기농 커피) 마시는데.. 요즘은 커피빈 원두 품귀현상...--;
그래서 이번엔 그냥 유기농 매장에서 원두 샀어요...
스타벅스는 유기농 원두가 2종류 있는데.. 좀 연한 느낌.. 그에 비해 커피빈 원두가 더 진해요... 파스쿠치는 원두 종류 안많던데.. 요즘은 좀 많아졌나? 글롤리아 진즈는 무척 비싸더군요.. 왜 비싼지 모르겠어요..--;

딸기 2006-06-12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는 금연이라서 싫어여 -.,-

보르헤스 2006-06-1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는 의자가 안 좋아요. 나무의자로 궁데이 배겨요.좀 푹신한 의자 좀 갖다놓지. 거기서 몇시간씩 책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뽕뽕팬티라도 입은건지...^^

마늘빵 2006-06-1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ㅠ-ㅠ

로드무비 2006-06-1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엔 신달자나 유안진의 수필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소녀 취향과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고급스러울 것도 없고요.^^;

기인 2006-06-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커피를 안 마시는 저로서는... 담배, 커피를 안 하니, 밥만 먹습니다. ㅡ,.ㅡ; 제 애인은 20대중반 여성인데, 커피 맛을 구별하더라고요. 저는 고기 맛은 구별하는데 애인은 고기 맛은 잘 모릅니다. 회 맛도 잘 모르고요. 우하하, 커피 맛 아는 것 보다 고기 맛과 회 맛을 아는 제가 더 뿌듯합니다. ^^; 고기는 정말 맛있는데서 먹어야 해요!!! (괜히 뻘소리 날림.... )

기인 2006-06-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인 말로는 자하연 에스프레소 최악급이라고 하던데요. 마치 녹두 고기부페의 고기가 영 아닌 것처럼요. (고기부페 고기 중 맛있는 고기를 못 먹어봤습니다. 고기부페 싫어요 -_-;) 스타벅스 커피는 괜찮은 정도고, 어디 커피가 맛있다고 했는데...
예전에 수x 종종 출입할 때, 고기를 먹지 않는 식생활을 계획해 보기도 했지만, 한달 한번 정도 먹지 않으면 슬퍼지던데요... 쩝;

stella.K 2006-06-1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 맛 없던데...값만 비싸고. 미국에선 그냥 흔한 커피체인점이라면서요? 뭐든 물건너 오면 그저 좋은 줄 안다니까요. 그래도 보편적인 것에선 성공했죠. 그 이후 글로리아 진스니 스타벅스 보다 조금은 고급 브랜드가 들어오긴 했지만 살아남지 못했어요. 진스가 스타벅스 보다 맛이 훨 난데도 말이죠. 역시 맛 보단 마케팅인가 봐요.

비로그인 2006-06-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여대생이라... 이대 앞에 있는 스타벅스가 한국 스타벅스 1호점이라고 그랬던 거 같아요. 저도 몇 번 가보긴 했지만 너무 비싼 나머지 제 돈 내고 뭔가 마셔본 적은 한 번도 없다지요. 실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사 가지고 들어가서는 스타벅스 3층 구석탱이에서 먹어댔던 경험이 더 많네요;;;

Runa 2006-06-1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댓글이 많으니 어떤 식으로든 스타벅슬 경험하는 게 우리 현실인가 봅니다.
부대 앞에도 있어, 커피 좋아하는 친구 땜에 몇 번 가긴 했죠.
아시다시피 FTA는 무역협정으로만 있지 않고, 이미 우리 안에 너무 많은 미국이 있죠,
글구 미국화는 앞으로 얼마나 더 촘촘하게 이루어질까요.

전 스타벅스커핀 꼭 코카콜라같아요. 고딩 땐 콜라 일부러 안 마시고 그랬는데, 지금은 배달된 치킨에 끼워주는 공짜 콜란 한번씩 마시죠. 절대 안 된단 고집도 우습지만, 싸구려 원가의 피자가 여기선 무슨 고급 요리처럼 대우받듯이-요즘 좀 내렸지만- 미국적 가치라면 먹히는 상술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거죠.
요번 서울길에 친척동생이 커피빈이 더 맛있다해서 가보긴 했는데, 커피맛이 다 쓴맛 아닌가요?^^;;(낫긴 낫더군요, 4명이서 두 잔 마셨는데, 전 오늘의 커피를..ㅋㅋ)
저역시 나름 까탈스럽긴 합니다만, 대중이 상품으로 만나는 '고급'과 '예술'이란, 그저 주머닐 털기 위한 얄팍한 상술에 지갑 열어주는 것밖에 안 된단 냉손 어쩔 수 없네요.
근데, 저번에 무슨 일로 서울 갔을 때 만난 선생님께서 홍대 앞 스타벅스에서 보재서 좀 의외였는데, 선생님께서도 스타벅스에서 보자는 줄 알고 약간 뜨악했죠.
그래서 다시 보니 그게 '에서'가 아니고 '앞에서' 더군요.ㅎㅎ

BRINY 2006-06-1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학연수경험 있어서 스타벅스가 처음 우리나라 들어왓을 때는 프라푸치노를 다시 맛볼수 있게 되서 무척 기뻐했었는데. 커피는 안마시면서도 푸라프치노의 시원한 단맛에는 중독되어 버렸답니다.

balmas 2006-06-1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 ㅎㅎ 그러시군요. 사서 마시기엔 넘 비싸죠.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도

있는 데 말예요. ^^;; 커피에 대해 잘 아시네요. :-)

딸기님/ 월드컵 시청 잘 하고 계십니까? ㅋㅋ 요즘 살 맛 나시겠어요. 스타벅스를

안가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게 아닐까요? ^^;

보르헤스님/ 흐흐, 스타벅스에서 오래 견디려면 특수 팬티가 필요하군요. 첨 알았습니다.

아프락사스님/ ㅋㅋ 동병상련이랍니다.

로드무비님/ 님이 젊은 아가씨였다면 자주 가셨을 것 같은데 ... 3=3=3=3=3

기인님/ ㅋㅋ 저는 고기맛도, 회맛도, 커피맛도 구별 못하는데 어떡하죠?

님과 님의 애인님은 각각 장점이 있으니 서로 보완하면 되겠네요. ^^

스텔라님/ 오, 그렇게 브랜드가 많은가요? 저는 예전에 들어온 "자댕"이라는 데는

기억나는데 ...

여대생님/ ㅎㅎㅎ 님도 역시 스타벅스를 애용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이건 칭찬인가 비난인가? ^^;)

카우테님/ 웬만하면 다들 스타벅스에 한번쯤은 가보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스타벅스가 오래 갈지 안갈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못간다 하더라도

그 비슷한 것이 또 대체하게 되겠죠. 젊은이들이 한미 FTA에 대해 그렇게 반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생활의 미국화, 문화의 미국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브라이니님/ 그러시군요. 그런데 프라푸치노는 뭘까요??

(촌스런 발마스 올림 ;;;)

HS님/ 혼자 다닐 경우, 특히 시간 때울 일이 있을 경우 스타벅스는 꽤 괜찮은

장소인 것 같더라구요. 사람들이 찾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죠??


비로그인 2006-06-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연기가 없어서 좋긴 한데, 너무 시끄러워서 다른 카페를 가게 되었어요. 테이블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는 듯 해요.

balmas 2006-06-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시끄럽던가요? 하긴 좁은 공간에 의지가 좀 많은 편인 것 같더군요. ^^;;
 

 

[기획 -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 ②] 논쟁조항 살펴보기 - 17조 재산권 조항
논쟁과 타협 속 기억해야 할 출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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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세계인권선언 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세계인권선언 17조, ‘재산권’ 조항은 읽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재산을 인권으로 인정한다고? 그러면 재산 많은 사람에게 눌리는 다른 인권은 어떡하란 말이야?” 혹은 “재산권은 세계인권선언도 보증하는 당연한 인권인데 왜 인권 운운하는 사람들은 재산을 가지고 그리도 못마땅해 하는 거야?”, 이렇게 서로 다른 식의 이해 또는 오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계인권선언 17조는 불친절하다. ‘재산’이 ‘무엇’인지를 얘기하지 않고 ‘재산권’을 얘기하고 있고, 재산을 ‘단독’으로 가져도 ‘공동’으로 가져도 괜찮다고 하니 안 해도 그만, 해도 그만인 말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언을 기초한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 17조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을 크게 세 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재산의 소유는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둘째, 재산은 단독으로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으로 가질 수 있다. 셋째,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이 세 요소를 차례로 살펴보자.


세계인권선언 17조의 영문본 <그림 출처 : UN Photo>


재산의 의미

재산의 소유를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선언은 재산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선언을 만든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논쟁 중에 계속 변했다. 처음에 인권으로서 생각한 재산의 의미는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적(private) 소유’가 아니라 ‘개인적 (personal) 소유’였다. 즉 사는 집, 소지품, 가구,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통신 등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생각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유자가 될 권리를 인권으로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언에는 그런 말이 없지만,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 다뤄진 문구는 ‘존엄한 삶과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에 대한 권리’를 재산권으로 봤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개인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갖는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조항 이전에 중간 채택했던 조항의 문구는 “모든 사람은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그러한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가지며, 이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곧 흔들리게 된다.

여러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개인적 재산의 개념이 나라마다 다른데,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필요나 최소한의 재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의 개인 소유를 기본적 권리로 봐야 하느냐? 이런 문제 앞에서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를 재산으로 보는 것은 너무 막연한 표현이라 비판받았다. 인간의 존엄한 삶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재산권을 정당화하는 것이 막연한 반면에 개인 재산 외의 다른 종류의 재산권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선언 기초자들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해내는 경제체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냐를 생각하게 되자, 의견이 대립되는 건 당연했다. 재산권을 앞서 말한 개인의 소유에 국한하는 것은 협소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윤창출 기업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등의 여타의 재산권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 소유와 사적 소유 둘 다를 재산권으로 인정하는 걸 반대했다. 개인의 소유가 생산방식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부 사람은 엄청나게 소유하는 반면 다수를 착취하고 굶주리게 하는 일은 나쁜 것이고, 광산․운송서비스․은행 등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는 없는 일이니 개인의 소유와 사적 소유는 다르다고 했다.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의 부에 대한 동등한 몫을 요구할 권리, 기업의 이윤에 대한 몫을 요구할 노동자의 권리를 재산권이라 주장했다.

이런 대립 속에서 선언 기초자들은 경쟁하는 경제체제에 대해 뭔가 말해야 하는 곤란에 부딪쳤다.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어떤 체제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서로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단독’으로나 ‘타인과 공동으로’

그래서 선언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할 권리라고 말한다. 어느 하나가 아닌 둘 다를 허용하는 혼합 체제를 선택한 것이다. “단독”이라는 말은 개인 소유와 사적 소유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당시 소련은 우려를 표했다. 그래서 “그 재산이 위치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서”를 덧붙이자고 주장했다. ‘단독’이냐 ‘공동’이냐의 소유형태의 선택을 국가가 할 수 있어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가능성을 불허할 수 있고, 그래야만 사회주의 체제가 세계인권선언에 의해 배제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단독으로”란 말은 개인적 재산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사적 소유도 포함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식 경제 방식을 배제한다고 봤다. 선언의 취지를 따져보면 ‘단독’의 소유가 사적 소유만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을 포함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에 영국과 미국은 국가가 자본주의를 불법화하고 사적기업소유를 금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련안을 반대했다. 개인소유냐 공동소유냐를 결정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소련의 제안대로 하면 선언과 같은 보편적 문서에서의 재산권이 무의미해진다고 했다. 다른 여러 국가들도 국가 법률을 언급하면 선언의 도덕적 탁월성이 손상되고,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기존의 재산관련 법률을 승인하게 된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다. 결론적으로 “그 재산이 위치한 국가의 법률에 따라서”란 소련안은 거부되었다.

사유형태든 공유형태든 둘의 혼합이든 어느 쪽을 선호하든지 선언 기초자들이 ‘무제한적’인 재산 소유권을 옹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 간에 중도를 유지하려 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들조차 순수자본주의 체제란 게 설령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언 기초자 중 그 누구도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간 존엄성에 요구되는 재화를 전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선언 29조에 권리의 제한과 규제를 둔 이유이다.

한때 제한 요건을 17조 자체에 두느냐, 딴 조항에 별도로 두느냐도 또 하나의 논쟁거리였다. 결론은 별도의 조항인 29조에 “공동체에 대한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란 제한에 모아졌다. 선언 29조에 있는 제한 요건이 재산권 조항만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재산권 조항이 그것의 구속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29조에 덧붙여 더 중요한 제한 요건은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재산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권리에 의해 기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분명히 인식했다.

재산을 무엇으로 보고, 어떤 재산에 대해 얼마만큼 제한을 두어야 하느냐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논쟁이다. 한 예로, 세계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양대 국제인권규약(약칭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에는 재산권 조항이 없다. 그 이유는 재산권은 인권이 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라 재산권을 어느 정도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의적 박탈 금지

재산권에는 재산을 획득할 권리와 재산을 획득한 후에 그것을 이용하고 향유할 권리가 포함된다. ‘자의적 박탈 금지’는 획득한 재산에 대한 사후 보호를 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논쟁의 핵심은 ‘자의적’이란 단어의 의미이다. ‘불법적’이란 단어를 더 선호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거부됐다. 선언 기초자들은 ‘자의적’이라는 것이 곧 ‘불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국가는 법률로써 얼마든지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에, 법률로 행해진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견해이다. 재산의 박탈은 자의적인 박탈과 법률에 의한 박탈 둘 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자의적이란 말은 불법이 아닌 오히려 불의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모아 읽기

선언에서 재산권 조항만 따로 떼어서 읽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다른 권리들과 마찬가지로 재산권 조항은 홀로 있는 ‘섬’이 아니라 다른 여러 권리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권리이고, 그것이 위치한 더 큰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할 권리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권 등 경제사회적 권리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재산권 조항은 선언에서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구분되는 권리군의 중간에 놓여있다. 어떤 국가는 재산권을 자유권으로 읽고, 어떤 국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 노동, 주거, 교육, 의료 등에 관계된 권리와 같이 고려하지 않으면 재산권을 권리로 고려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그래서 국가의 자의적 개입이나 간섭을 배제하기만 하면 보장될 수 있는 권리로 재산권을 바라보는 국가가 있는 반면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의무가 요구되는 사회권으로 취급하는 국가가 있다.

유엔은 어떤 식이냐 하면, 재산권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란 주제 속에서 다뤄왔다. 그 속에서 주된 논의는 재산권을 여타 인권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재산권에 대한 논의를 돕기 위해 90년대에 독립전문가(Mr. Uis Valencia Rodriguez)를 임명한 일이 있다. 그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개인의 사적 소유를 보편적 인권으로 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사적 소유의 이용은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의 집중을 촉진해왔을 뿐 아니라 소수가 무제한으로 부를 축적하게끔 했다. 이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 간의 계급 분화의 근본원인이다. 집단적 재산이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왔으며 재산의 사적 이용은 국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어떤 경제체제에서도 절대적으로 사적인 생산수단의 소유 현상은 결코 없으며, 공공의 이용․안보․건강보호 등의 필요성에 법으로 제한돼왔다”고 말한다.

이처럼 선언의 기초과정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은 여전한 논쟁거리이다. 눈에 보이는 명시적 문구는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를 누릴 권리로서의 재산권이 17조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입력] 2006년06월08일 0: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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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 ①]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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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글 싣는 차례
1) 탄생의 배경과 한계, 2) 논쟁조항 살펴보기-재산권 조항, 3) 논쟁조항 살펴보기-사회보장권 조항, 4) 논쟁조항 살펴보기-교육권 조항, 5) 논쟁조항 살펴보기-노동권 조항, 6) 그 밖의 문제들


달력을 틈틈이 살펴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흔한 습관이다. 올해는 휴일이 며칠이나 되는가를 헤아리기 위해, 또는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인가 알아보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달력을 훑다보면 12월 10일에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또는 ‘인권의 날’이라 적혀있다. 한국 사회에선 오랫동안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인권대통령이니 인권경찰이니 국정지표니 하는 것들에 ‘인권’이 바쁘게 등장하면서 약간은 주목받는 날로 변한 것 같다. ‘유엔에서 세계인권선언이란 걸 만든 날이어서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는 요지의 기사와 인권특집이 해마다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고, 각종 기관과 단체들의 ‘인권’자 붙은 포상과 기획행사들이 많이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세계인권선언’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인권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일에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인권을 헤쳐 나가는 길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맞닥뜨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인권 논의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서이기 때문이다. 가보지도 못한 곳의 지명을 듣고 ‘아, 거지 좋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꼭 집어서 무엇이 좋은데요?’라고 물으면 얼버무리듯이 ‘세계인권선언’이 전 인류가 소중히 여겨야할 공통의 기준이라고 떠받드는 사람에게 ‘왜 무엇이 그런데요?’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인권선언에 대해 그간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그것에 대한 찬사와 반복적 인용이지 비판적 분석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를 통해 우리 시대 인권의 허술하고 빈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생략된 부분을 복원하고 암시된 부분을 명확히 해보는 건 어떨까?


살육과 야만의 경험, 선언의 기초

세계인권선언 작성을 주도한 엘리노어 루스벨트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알려진 2차 대전의 살육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권침해가 인권선언 기초의 주인공이었다. 전후 국제질서의 판을 짜는 열강의 입장에서 인권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하려 했든 간에, 선언을 기초할 당시의 국제 분위기는 인권을 소리 높여 강조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손에 피를 묻혔지만 유독 나치의 인권침해에 대한 비난은 강도 높았기에 ‘나치가 이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뭔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세였다. 인권의 인정이야말로 나치즘의 복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전쟁수행과 전후 재건을 위한 이념으로 등장했다. 그 일환으로서 새로 만드는 국제기구인 유엔이 강한 이빨을 가지기를 바랐다. 인권을 말로만이 아닌 이행과 실현의 장치와 결합된 것으로 요구했다. 그래서 국제권리장전을 유엔헌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국제적 요구가 거셌다. 이런 장치가 조금만 더 일찍 있었더라면, 파시즘과 나치즘이 아직 미약했을 때 전쟁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야만적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인권을 높이 치켜세웠다. 여기에는 인권을 부인하는 정부들에 대해 인권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시각이 깊이 배어 있었다.


왜소해진 선언, 의외의 결과 낳아

하지만 계산된 명분과 실천은 다른 것이다. 선언을 만드는 과정 초반의 대부분은 ‘조약’을 만드느냐, ‘선언’을 만드느냐는 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대표자들은 국제권리장전이 ‘조약’이어야 한다고 느꼈고, 당시 유엔 회원국 중 소국들은 단순한 권고나 결의안이 아닌 큰 국가나 작은 국가를 똑같이 구속하는 조약을 원했다. 하지만 두 강대국, 미국과 당시 소련은 이행장치 없는 선언 또는 원칙들을 담은 성명을 끈질기게 주장했다. 반대의 이유는 서로 달랐다. 미국이 권리를 갖는 것과 그것을 이행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라고 하면서 ‘선언 먼저, 조약은 나중에’를 주장했다면, 소련은 ‘몇 개 국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언기초위원회가 국제권리장전의 이행문제까지 고려할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반대했다.

또한 조약을 제쳐두고 선언부터 만들게 되자 차 떼고 포 떼고 추상적 원칙만을 나열하려는 시도가 거셌다. 애초에 국제 ‘조약’이 아닌 ‘선언’이라는 형태 자체가 이행장치는 떼어놓고 논의를 시작한 것인데, 자기에게 껄끄러운 문제는 최대한 간략화하거나 독자적인 조항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실랑이가 미소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은 아름다운 합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선언에는 8개의 기권표가 있는데 그 주요 이유는 선언이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성과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1948년 12월 10일, 이행장치를 제쳐둔 선언의 채택은 결과적으로는 선언의 장점이 됐다. 부담 없이 채택된 선언은 이후 2백여 개가 되는 국제인권선언, 국제조약, 선택의정서, 헌장 등의 탄생을 자극했고 많은 나라의 헌법에 인용됐다. 이행의 부담을 떨쳐놓고 만들었기에 어찌 보면 만들 수 있었던 선언이 불러온 결과이다. 하지만 국가들 편에서 겹겹의 안전장치를 갖춘 것이 국제인권조약들의 전형적인 양상인 점을 극복하는 것, 효과적인 인권의 이행장치를 만드는 것은 선언 이후에 계속돼온 과제이다.


인권에 관한 ‘보편’ 선언이었나?

한국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이라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상은 ‘보편(universal)' 인권선언이다.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언을 만들기 전에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논쟁이다.

하지만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한계점은 있다. 나치즘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언을 기초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한 국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1914년 레닌의 거친 계산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민지에 살고 있고, 이를 합하면 세계 영토의 3/4에 해당’했다. 이 계산은 1940년대 말까지도 대략 들어맞았다. 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할 당시 유엔회원국의 수는 58개국이었고, 유엔인권위에 속한 국가는 18개국, 선언기초위원회는 처음 3개국에서 나중에 8개국이었다. 회원국 58개국 중에서 아메리카의 21개국이 전체의 36%, 16개국의 유럽이 27%, 14개국의 아시아가 24%, 4개국뿐인 아프리카는 겨우 6%를 차지했을 뿐이고, 3개국의 남태평양 제도가 5%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이 아주 불충분하게 대표됐음을 보여준다.

수단의 난민 여성과 아이들. 이들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세계인권선언은 어떤 의미인가 <사진 출처: http://www.wfp.org>


선언 기초 과정에서 식민지 민중의 인권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주장은 식민지 종주국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식민 체제하에 사는 민족들 속에 생겨난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전혀 모른다”는 비난과 그에 대한 반발 끝에 선언에는 ‘식민지’라는 표현이 아닌 ‘비자치지역,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에둘린 표현이 등장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인권이 보편적인 위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실재와 모순된다”고 비판한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 유엔이 창설한 회의는 서구에 의해 지배됐고, 세계인권선언은 대부분의 3세계 국가들이 여전히 식민통치하에 있을 때 채택”됐으니 선언은 “제한된 적용성”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채택 50주년이 되던 해에 유엔회원국 수는 채택 당시보다 3배가 늘어났다. 이들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 요구를 실질적으로 고려하느냐 아니냐가 오늘날 선언의 적용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선언을 기초할 당시의 58개국에만 국한한다 할지라도 그들 간의 차이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37개국이 기독교전통을 배경으로 했고 11개국이 이슬람, 6개국이 사회주의, 4개국이 불교를 배경으로 했다. 서로 다른 문화․종교․경제․정치 체제 속에서 수용될 만한 답을 찾는 일은 ‘막연하지 않게, 하지만 모든 체제를 포괄할 정도로 유연하게’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이 조건은 오늘날 우리가 선언을 읽을 때 써야 하는 안경일지도 모른다.


진보적 선언은 거짓 희망을 불어넣는다?

세계인권선언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다. 전후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새로운’ 권리를 반영하면서는 ‘급진’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극히 신중을 기했고, 여성이나 가족생활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보수적 사회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조약기초과정을 보면 조금 ‘센’ 의견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불러일으키지 말자’며 제지하는 의견이 강력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수정돼야 할 점이 많고 실제로 이후의 국제조약에서는 변화된 내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성차별적 언어가 있다. 1조에는 ‘형제애의 정신으로’라는 표현이 나오고 노동자와 가족생활에 대해서는 노동자를 남성형으로만 지칭하고 있다. 이 구절은 한 가족의 임금을 남성가장이 버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의 지적으로 성차별적 언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 “모든 사람”(all men)으로 시작하는 초안에 대해 여기서의 사람(men)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에 관한 역사적 반영이기 때문에 고치자는 제안조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뜸을 들여서야 “모든 사람”(human beings)이 되었다. 또한 사형제 폐지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인정 등의 새로운 제안들은 깊이 논의되지 않았다.


인권은 액자 밖으로 뛰쳐나온다

사람들은 간직하고 싶은 좋은 것은 좋은 액자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다. 그럼 인권은 어떨까? 좋은 액자에 넣어 두고 우러러볼 수 있는 그런 것일까? 물론 세계인권선언처럼 일종의 액자에 담긴 인권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권은 그 속에 얌전히 있지 않고 뛰쳐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규범이 무시하고 있는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면이 언제나 그 규범을 돌파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권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에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세계인권선언에서 주요논쟁이 벌어진 조항을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인권오름 제 3 호 [입력] 2006년05월10일 5: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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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 1793)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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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의 1789년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신체제의 국가형성과 헌법제정의 원리를 밝힌 1791년 헌법 서문에 해당한다. 이 선언이 지향한 세상은 ‘구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는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전 세상을 지배했던 특권계급의 타도와 귀족제의 폐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중심이 되는 봉건적 소유관계와 경제활동에 대한 봉건적 규제를 폐지하는 각종 ‘자유’가 선포된다. 재산권은 이들 자유 중 하나로서 국가와 헌법에 선행하는 자연적 기본권으로 선언된다. 이러한 사람의 자연권 보전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적 결합의 유일한 목적이며, 사회 속에서 갖게 되는 유일한 제한은 권리의 평등을 정한 법률에 복종한다는 것뿐이다. 법률상 평등하기만 하면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통해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 결과 평등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돼버린다.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 <그림 출처 : www.unl.edu>


이로써 신체제는 재산의 자유를 토대로 한 체제이고, 재산의 자유는 여러 자유 중 하나가 아닌 사실상 다른 모든 자유들의 토대가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직 일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자들만이 참정권 등 권리를 갖게 되는 체제였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 세력인 부르주아의 우위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지, 농민과 도시민중을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왕과 특권세력의 끈질긴 도발 속에서 위험을 느낄 때마다 민중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계속됐지만 말이다.

부의 축적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자는 소수의 제안은 묵살된다. 그런 목소리 중의 하나가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이다. 왕국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공화국 헌법의 제정사업이 시작됐다. 1793년 국민의회는 새로운 헌법에 대해 논의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새 헌법의 정신에 대해 먼저 논의하여 그것을 새로운 인권선언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작성한 38개항의 인권선언 초안(아래 인용구는 모두 로베스피에르 초안에서 따옴)을 제안했다. 오늘 읽어볼 “재산권에 대하여”는 인권선언 초안의 재산권 조항에 대해 로베스피에르가 덧붙인 해설이다.


소유는 자연권 아닌 사회적 제도

재산권에 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생각은 1789년 선언이나 여타의 헌법구상과 달랐다. 사람의 ‘생존’과 ‘자유’만을 기본적 인권으로 하고,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권리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고 평등이 환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힘의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유가 단순한 사회적 제도인 이상 그 모든 것은 인민의 의사를 자유롭고 엄숙하게 표명한 법률에 의해 그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규제하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사고한 것이 자연적 기본권으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관념과는 다른 점이다.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적 형식에 맞추는 것은 폭정에 최후의 미화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비합법의 저항을 정당화한 것이나,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다”는 주장은 탐욕스런 계급에게는 너무 간 큰 소리였을 것이다. 그의 제안은 동료 정치집단의 권리선언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소유의 신성불가침을 신랄하게 공격했던 로베스피에르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차이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과의 격차가 컸다면, 또 다른 격차는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관계에서이다. 당시 입법자들이 염두에 둔 재산권의 현실적 대상은 토지소유로서, 그들은 토지소유권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재산 소유권 일반을 ‘자유’로서 규정했다. 토지나 생산수단의 소유를 다른 소유와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원리에 따르게 할 때 아무리 법률상의 제한을 가하더라도 자본의 소유자와 몸뚱이 하나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중의 인권구상에서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균등하게 분배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야기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1789 선언이 말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신랄하게 공격했지만,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들과 노동하는 이들의 자유를 동일한 원칙에 따르게 한 점에서는 동료들과 같았다. 그런 이유로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포효대로 “지상의 주권자”들은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정신과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해결방법을 계속 찾아왔다.

우리 주변엔 그런 예들이 수없이 많다. 이라크에서의 학살에 아파하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 서울역 로비에서 밥 굶어가며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들, 평화적 생존권을 염원하는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과 광화문에서 촛불을 맞든 사람들, ‘자유’로운 ‘생존’을 위해 ‘부자유’한 한미 FTA 협상에 맞서는 사람들…. 여기서 “살인자와 약탈자를 기소”하며 “사회 성원의 단 한사람이 억압된 경우라도 그것을 사회전체에 대한 압제”로 여기고,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를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포”하는 힘을 발견하자.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1793)
먼저 재산권에 대한 여러분의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항들을 제안하겠고 이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비열한 인간들, 가치를 재는 척도라곤 황금밖엔 없는 자들아, 그 재산들의 원천이 아무리 더럽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대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 선의로서 재산권을 지배하는 원칙을 세우자. 인간의 편견과 악이 그렇게 간고하게 비밀로 감추려 한 것이 재산권 말고는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필수적이다.  
 
이 인육상인에게 무엇이 재산인지 물어보라. 그는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넣어 보관하는 선박이라고 부르는 이 긴 관을 보여주면서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재산이다. 나는 일인당 얼마씩을 주고 이것들을 샀다.” 토지와 가신들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이것들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곧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믿는 이 귀족에게 물어보라. 그는 재산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보여줄 것이다. 
 
카페 왕조의 위엄 있는 성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든 재산권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프랑스 영토에 살고 있는 2천5백만의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합법적으로, 군주로서 억압하고, 타락시키고, 쥐어짤 수 있는, 그들이 예로부터 누려온 대대로 내려오는 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재산에 어떠한 도덕적 원칙이 있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인권선언이 “인간의 제일 가치있는 재산이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가장 신성한 권리”인 자유를 정의하면서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왜인가? 우리는 자유의 한계가 타인의 권리라는 것을 타당하게 이야기했다. 왜 우리는 이 원칙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인 재산권에는 적용하지 않았는가? 마치 자연의 영원한 법이 인간의 관습들보다 덜 신성하기나 한 것처럼! 여러분은 재산의 행사를 위한 가장 큰 자유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많은 조항들을 만들면서, 재산의 성격과 정당성을 결정하기 위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분의 선언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 부당이익자들, 투기꾼들, 전제군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진지하게 확립함으로써 이러한 결점들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1. 재산이란 각 시민이 법으로 그에게 보장된 몫의 재산을 향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권리이다. 
2. 재산권은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 
3.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이나 자유나 생존이나 재산을 해칠 수 없다. 
4. 이 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재산 소유, 모든 상업적 거래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다.  
 
또한 여러분은 세금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원칙으로서, 세금은 오직 인민 혹은 인민의 대표자들의 의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전체의 이해에 필수불가결한 한 조항을 누락시켰다. 즉, 누진세 원칙 세우기에 소홀했다. 이제, 공공 재정의 문제에는 자신들의 소득에 따라-즉, 자신들이 사회체제로부터 끌어낸 물질적 이익에 따라서- 국가 지출에 대해 누진적으로 기여하는 의무를 시민에게 부과하는 것보다도 더 사물의 본성과 궁극적인 평화에 굳건히 기초한 원칙이 있다. 
 
나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만큼을 넘지 못하는 소득을 가진 시민은 국가 지출에 기여할 의무를 면제받는다. 그 외 다른 시민들은 자신의 부에 따라 누진적으로 국가지출을 책임져야 한다.” 
 
위원회(국민의회의 제헌위원회)는 또한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우애의 의무와 그들의 상호원조의 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전제군주들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영원한 동맹의 토대를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의 선언은 소유하고 거주하도록 자연으로부터 땅을 부여받은 거대한 민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고립된 한구석에 몰아넣어진 한 무리의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다음의 조항들을 부가함으로서 이 큰 격차를 메울 것을 제안한다. 이 조항들은 여러분이 끊임없이 왕들과 불화를 겪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민족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이 단점은 결코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들과 화해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네 개의 조항이다: 
 
Ⅰ.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형제이고, 여러 민족들은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 
Ⅰ.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언된다. 
Ⅰ.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한 민족에게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예사로운 적이 아니라 살인자이자 반도, 약탈자로 기소되어야 한다. 
Ⅰ. 왕들, 귀족들, 폭군들은 누구든 지상의 주권자인 인류와 우주의 입법자인 자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입력] 2006년06월08일 2: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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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옮겨붙는 패권경쟁

 

[먼슬리 리뷰: 제국의 확장(2)] 미-중의 아프리카 쟁탈전

 

새로운 아프리카 쟁탈전

  아시아에서 새로운 거대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새로운 아프리카 쟁탈전(New Scramble for Africa)'도 전개되고 있다. 2002년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전 세계 테러에 맞서 싸우고' 미국의 에너지안보를 확실히 하려면 미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개입을 증대시키고 아프리카 대륙에 지역안보 협정들을 창출하기 위한 '자발적 의지를 가진 국가들의 연합(coalitions of the willing)'을 추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직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본부를 두고 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군사작전을 책임지고 있는 미군 유럽사령부(US European Command)가 서부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을 증가시켰으며, 특히 상당량의 석유가 생산되거나 매장돼 있는 기니만 안쪽 및 주변 지역(대략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앙골라까지에 해당하는 지역) 국가들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었다. 현재 미군 유럽사령부는 업무시간의 70%를 아프리카와 관련된 일에 쏟아붓고 있다. 이 비율은 2003년까지만 해도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현재 미국 외교협회의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이 협회가 2005년에 작성한 (책으로 발간된 시점은 2006년 초-옮긴이) 보고서 <인도주의를 넘어: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More Than Humanitarianism: A Strategic U.S. Approach Toward Africa)>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2010년에 가까워지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미국의 에너지 수입처로 중동만큼이나 중요한 곳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서부 아프리카는 확인된 매장량 기준으로 600억 배럴 규모의 석유자원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의 석유는 미국경제가 필요로 하는 저유황 스위트 원유다. 미국의 관련 정부기관과 싱크탱크들은 2006년부터 5년 간 전 세계에 추가로 공급될 석유 5배럴 중 1배럴이 기니만에서 나올 것이며, 미국의 석유 수입량 중 기니만에서 생산된 석유의 비중이 현재의 15%에서 2010년에는 20% 이상, 2015년에는 25%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이미 미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10%를 공급하고 있다. 앙골라는 미국의 석유 수입량 중 4%를 공급하고 있으며, 2010년에 가까워지면 이 비중은 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도 새로운 유전의 발견과 석유생산의 확대에 따라 주요 석유수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적도기니, 상투메프린시페, 가봉, 카메룬, 차드 등이 바로 그런 나라들이다. 모리타니아도 2007년까지는 석유수출국으로 떠오르게 돼 있다. 동쪽으로 홍해, 서쪽으로는 차드와 접해 있는 수단은 이미 주요 석유수출국이다.
  
  현재 아프리카에 있는 가장 중요한 미군기지는 2002년에 '아프리카의 뿔(에티오피아, 지부티, 소말리아 등 3개국을 포함하는 지역을 지칭-옮긴이)' 지역 안에 있는 지부티에 설치돼 있는 기지다. 이 기지의 지리적 위치는 미국으로 하여금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4분의 1이 통과하는 수송로가 있는 해역에 대해 전략적 통제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지부티 기지는 수단의 송유관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도 하다(참고로 프랑스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부티에 상당 규모로 주둔해 왔고, 차드의 수단 쪽 국경도시인 아베셰에 공군기지도 두고 있다). 지부티 기지는 미국이 현재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긴요하다고 여기는 아프리카 횡단 '석유 띠'의 동쪽 끝을 장악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석유 띠'란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1600km 길이의 '히글레이그-포트 수단 송유관'에서 서쪽에 있는 1030km 길이의 '차드-카메룬 간 송유관' 및 기니만까지 남서쪽 방향으로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띠 모양의 광대한 지역을 가리킨다. 우간다에 새로 설치된 미국의 '전진작전 지역(forward-operating location)'은 수단에서 대부분의 석유가 발견되고 있는 이 나라의 남부지역을 미국이 지배할 수 있게 해준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서부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전진작전 지역을 설치해 오고 있다. 세네갈, 말리, 가나, 가봉, 그리고 남쪽으로 앙골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미비아가 바로 그런 곳들이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이런 곳들에 있는 비행기 이착륙장을 개선하고, 긴요한 군사물자와 연료를 사전배치하고, 미군 병력을 신속하게 배치하는 데 필요한 기지이용 협정을 체결해두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03년에는 미군 유럽사령부가 서부 아프리카에서 테러대응 프로그램을 출범시켰고, 2004년 3월에는 미국의 특수부대가 사헬(Sahel, 사하라 사막 남쪽의 초원-옮긴이) 지역 국가들과 함께 미국정부의 테러조직 명단에 들어 있는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Salafist Group for Preaching and Combat)'에 대항하는 군사작전에 직접 나섰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기니만 지역에 '기니만 수비대(Gulf of Guinea Guard)'라는 이름의 해안보안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또한 상투메프린시페에 미국 해군기지를 설치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미군 유럽사령부는 이곳의 해군기지가 인도양의 디에고가르시아에 있는 미국 해군기지와 대등한 기지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해 왔다. 이처럼 미국 국방부는 기니만에 미군의 주둔을 공세적으로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기니만의 미군 주둔이 확대되면 미국이 광범한 아프리카 횡단 석유 띠의 서쪽 부분에 대해, 그리고 이 부분에서 발견되고 있는 중요한 유전들에 대해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2005년 서부 아프리카에서 처음 실시된 '부싯돌총 작전(Operation Flintlock)'이라는 군사훈련에는 1000명의 미국 특수부대 병력이 참여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기니만 지역을 겨냥해 새로 편성한 신속대응군의 훈련을 이번 여름에 실시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깃발보다 무역이 앞섰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모든 주요 석유기업들은 서부 아프리카의 석유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미국 상공회의소와 함께 '미국의 통합된 대응'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서 미국 기업들의 역할을 확대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4월 25일자에서 보도했다. 아프리카의 석유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이런 경제적 쟁탈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옛 식민주의 강대국들이 미국과 경쟁관계에 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는 그들도 이 지역에 대한 서구의 제국적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테러에 맞서 싸우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유전지대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조치라고 종종 정당화된다. 수단은 2003년 이래 남서부 다르푸르 지역(수단의 유전 중 상당부분이 이곳에 있다)을 중심으로 벌어진 내전과 민족 간 갈등에 시달려 왔고, 이로 인해 정부와 연계된 민병세력이 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무수한 인권 유린 및 대규모 살상행위를 저지르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2003년에는 상투메프린시페에서, 2004년에는 적도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 새로 산유국이 된 나라들에서는 최근 쿠데타 시도가 잇따랐다. 미국이 뒷받침하는 안보 및 첩보 장치에 의해 보호되는 잔혹한 억압정권이 통치하는 차드에서도 2004년에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2005년 모리타니아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실력자 엘리 오울드 모하메드 타야(Ely Ould Mohamed Taya)에 대항하는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었다. 앙골라에서는 미국에 의해 부추겨진 내전(이 내전에서 미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사빔비가 이끄는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UNITA)의 하부조직으로 테러부대를 조직했다)이 30년 간이나 계속되다가 2002년 사빔비가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중단됐다. 이곳의 역내 패권국인 나이지리아는 부패, 반란, 조직적인 석유 절도 등이 만연한 상태이며, 이로 인해 니제르 삼각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 중 상당부분(2004년 초에는 하루에 30만 배럴)이 부정하게 착복되고 있다. 니제르 삼각주 지역에서 일어난 무장봉기도 그렇지만 이 나라 북부의 이슬람 지역과 남부의 비이슬람 지역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미국에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인도적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부단히 이어지고 있고, 개입을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주장도 모자람 없이 나오고 있다. <인도주의를 넘어>라는 미국 외교협회의 보고서는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 대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국제적 제재조치, 필요하다면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적절한 행동에 언제든 나설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렇게 하는 것이 방해받고 있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군이 머지않아 나이지리아에 개입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학자들과 정책담당자들 사이에 폭넓게 거론되고 있다.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의 통신원인 제프리 테일러(Jeffrey Taylor)는 이 잡지의 2006년 4월호에 게재된 글에서 나이지리아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실패국가"가 됐다면서, 만약 이 나라가 더 불안정해지거나 급진 이슬람 세력에 넘어간다면 "미국이 보호하겠다고 공언해 온 풍부한 석유자원 매장 지역"이 위험해질 것이며 "그렇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이라크 작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대대적인 군사적 개입을 예고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썼다.
  
  미국의 거대전략가들은, 문제는 아프리카 국가들 자체나 그 국가들에 사는 사람들의 복지가 아니라 '석유' 및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확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아프리카가 전략적인 싸움터로 떠오르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은 아프리카를 전선으로 삼아 자국의 지구적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아프리카와의 무역을 지난 5년간 세 배로 늘려 그 규모를 약 370억 달러로 확대시켰고, 아프리카의 에너지 자산들에 대한 자국의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수단과 같은 나라의 정권과 무역협상을 타결했고, 중국의 대학이나 군사학교들에서 아프리카의 미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 외교협회도 <인도주의를 넘어>라는 보고서에서 주된 위협은 중국으로부터 오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전략적 맥락을 변화시켰다. 오늘날 아프리카 전역에서 중국은 자연자원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있고, 주요 기반시설 건설공사 입찰에서 서구의 기업들을 따돌리고 있으며, 자국의 경쟁우위를 떠받치기 위해 장기저리의 융자를 비롯한 유인들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석유의 4분의 1 이상을 앙골라, 수단, 콩고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수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은 나이지리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나라에 많은 보조금을 지원해 왔고, 이 나라에 전투기도 판매하고 있다. 미국 거대전략가들의 관점에서는 2004년에 중국이 앙골라에 제공한 20억 달러의 저리차관이 가장 위협적이었다. 이 차관은 앙골라로 하여금 자국 경제와 사회를 신자유주의 노선에 맞게 재편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맞설 수 있게 해주었다.
  
  미국 외교협회가 볼 때 이 모든 상황은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협회의 보고서는 중국의 역할을 전제로 할 경우 "과거에 프랑스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지금 미국과 유럽이 아프리카를 자기만의 사냥터로 간주할 수는 없다"면서 "중국이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자원의 생산과 배분까지 통제하고, 자원이 점점 더 희소해지는 상황에서 자원에 대한 우선적인 접근권까지 미리 확보해두려고 함에 따라 게임의 규칙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에 관한 이 협회의 보고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이 군사작전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 중국을 물리쳐야 한다는 점을 대단히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부의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지낸 체스터 크로커(Chester Crocker)조차도 이 보고서가 "미국 또는 서방이 유일하게 주된 세력이고 자신의 목표를 멋대로 추구할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희망 섞인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분명한 것은 미 제국이 탐욕스럽게 석유를 찾아다니다보니 이제는 아프리카의 일부까지 포괄할 정도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아프리카 민중에게 파멸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아프리카 쟁탈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의 새로운 아프리카 쟁탈전도 자원획득과 약탈을 위한 강대국간 싸움이지 아프리카의 발전이나 아프리카 민중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다.
  
  확장의 거대전략
  
  최근 전략적 맥락이 급속히 변화하고 제국주의가 보다 노골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국적 거대전략에는 하나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제국적 거대전략은 미국 권력구조의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폭넓은 합의, 다시 말해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지구적 우월성(global supremacy)'을 미국이 추구해야 한다는 합의로부터 도출되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의 보고서 <인도주의를 넘어>는 미국이 거대전략을 확장시켜 아프리카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작성을 주도한 사람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클린턴 대통령의 국가안보 자문관으로 일했던 앤서니 레이크(Anthony Lake)와 부시 행정부에서 환경보호청장을 지낸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Christine Todd Whitman)이다. 레이크는 클린턴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내며 클린턴 행정부 안에서 미국의 거대전략을 정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2003년 9월 21일에는 존스홉킨스대학의 고등국제문제연구대학원(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에서 '봉쇄에서 확장으로(From Containment to Enlargement)'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을 통해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미국이 "세계의 지배적 강대국"이 됐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 가장 큰 경제, 다인종이며 가장 역동적인 사회를 갖고 있다. (…) 과거에 우리는 시장민주주의에 대한 지구적 위협을 봉쇄했다. 이제 우리는 시장민주주의가 미치는 범위의 확장을 추구해야 한다. 봉쇄의 독트린을 잇는 것은 확장의 전략이어야 한다." 해석하면 이 말은 미국의 군사적, 전략적 우산 아래 세계 자본주의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레이크는 그런 새로운 세계질서의 주된 적으로 '반발국가들(backlash states)', 그 중에서도 특히 이라크와 이란을 지목했다. 레이크가 클린턴 행정부의 초기에 미국의 거대전략으로 주장한 '확장의 전략(strategy of enlargement)'이 오늘날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확장되는 것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의 제국적 거대전략은 워싱턴에서 지배계급의 이 분파 또는 저 분파에 의해 창출된 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21세기가 시작된 시기에 미국 자본주의가 갖게 된 역관계상 지위(power position)가 낳은 불가피한 결과다. 미국의 경제적 힘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과 더불어 꾸준히 퇴조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20년 뒤에도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 지금과 똑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세계에 대해 미국이 갖고 있는 군사적 힘은 소련이 붕괴한 이후 상대적으로 증대돼 왔다. 지금 전 세계 군사비 지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이며, 이는 전 세계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두 배 또는 그 이상에 해당한다.
  
  미국의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의 목표는 이런 전례 없는 군사적 힘을 이용해 모든 대륙을 다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전면적인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수십 년간 그 어떤 잠재적 경쟁세력도 미국에 도전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세력의 부상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자본주의, 특히 미국 자본주의의 확장을 위해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 민중을 대상으로 미국이 벌이는 일종의 전쟁이다. 이것은 또한 지구적으로 넓게 펼쳐지는 지정학적 싸움 속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그저 '전략적 자산'으로만 간주되는 '새로운 미국의 세기(New American Century)'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군사적인 수단으로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비록 자본주의 아래에서 불가피한 것이긴 하나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고,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와 그 주된 뿌리인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미국의 이런 새로운 제국적 거대전략에 저항하는 것은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끝, 번역=이주명 기자)

   
 
  존 벨러미 포스터/오리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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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1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랫글하고 이 글 퍼갑니다.

balmas 2006-06-11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러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