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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숲 이야기 - 생명이 살아 숨쉬는 녹색 댐 ㅣ 생태동화 3
조임생 지음, 장월궁 그림 / 꿈소담이 / 2009년 10월
평점 :
솔직히 생태동화라거나 과학동화, 수학동화와 같은 이름이 붙여진 책에 대해서 반감이 많았다. 동화면 동화지, 지나치게 목적의식을 드러낸 이름이 아닌가 싶어서다. 그리고 동화를 읽기도 전에 사고의 폭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태동화로서의 매력보다는 사회적인 인식에 대한 문제를 읽게 되었고,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숲 나라 임금님이 될 거야'는 숲 속의 나무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가을 한솔이도 숲에서 도토리를 주워왔고, 그 도토리로 묵도 해먹고 떡도 해 먹었다. 도토리를 주우러 가면 만날 수 있는 게 있다. 숲 속 동물들을 위해 도토리를 다 가져가지 말라는 문구이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뿐만 아니라 나무를 흔들어 도토리를 따기도 하고, 땅속에 묻어 놓은 도토리까지 다 싹 쓸어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도토리는 엄마 나무에서 떨어져 다람쥐에 의해 땅 밑에 묻힌 떡갈나무 도토리이다. 이 도토리는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싹을 틔운다.
엄마나무는 아기도토리들을 훌륭하게 키워낸다. 그런 엄마에게 단풍나무는 “자식 많은 게 뭐가 그리 좋아요? 먹여 살리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데.”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똑같은 일이 자연의 세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 떡갈나무는 단풍나무에게 ‘부모의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단풍나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동안 행복을 느끼고,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을 먹이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 엄마의 모습은 이상적이다. 단풍나무의 화려함을 ‘자신을 치장할 줄만 안다’고 탓하기에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떡갈나무가 수많은 도토리를 땅에 떨어트려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도토리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만큼, 단풍나무도 자신의 씨앗에 날개를 달아 멀리 날려 보낸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생활과 연관을 시키자면, 가장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떡갈나무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균형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연이 해 온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연을 자연 상태로 두는 것, 숲을 숲이 되게 하는 것, 강이 강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뭔가를 더함이 아니라, 우리가 더한 것을 빼고, 그대로 두는 것이다.
‘꿀벌나라 여왕님의 결혼식’은 ‘숲속의 곤충들’이야기이다. 벌은 개미만큼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곤충이다. 단체생활을 하는데다, 각자의 역할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특별한 이야깃거리는 아니다. 부지런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한 집사 마루의 눈으로 곤충들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여왕벌, 일벌, 수벌이 하는 역할을 그려내면서, 숲 속 곤충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전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분 상승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일벌 부룩소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벌 마루보다 호감이 가는 캐릭터이다. 거미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부룩소가 꿀벌 나라의 꿀벌로 만족하며 살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말이다. 물론 꿀벌의 일생이 그렇긴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보는 것 같았다.
‘아기 다람쥐 바비’는 ‘숲 속의 동물들’이야기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숲 속의 생물들의 이야기를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하면서도 그들의 특징을 살려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비와 몽구리의 설정은 특히 아쉬움이 느껴졌다. 바비는 숲 속의 귀염둥이이다. 숲 속의 동물들은 바비를 보며 ‘바비 부모가 교육을 잘 시켰다’느니, ‘바비네가 훌륭한 집안’이라느니 하며 칭찬하는 데 반해 몽구리에게는 ‘부모님이 안 계시니 보고 듣고 배운 게 없다’고 한다. 바비는 몽구리에게 수없이 당하면서도 ‘엄마 아빠가 없는 몽구리 형이 불쌍해서’ 고자질을 하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선입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없는 단순한 동정심은 더 위험하다. 숲 속의 동물들이 겪는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오목눈이 둥지 속의 아기 뻐꾸기’는 ‘숲 속의 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넣어두고 자신의 새끼를 대신 키우게 하는 뻐꾸기와 그것도 모르고 정성을 대해 키우는 오목눈이 부부의 이야기 속에 숲 속의 새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생화의 여왕’은 ‘숲 속의 야생화들’의 이야기이다. 야생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바로 ‘민들레’이다. 이 책에서도 야생화의 여왕을 뽑는 자리에 서양민들레가 참여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자리 잡고 있다. 토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야생화의 여왕을 뽑는 자리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토종 야생화들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 야생화의 여왕을 뽑는 자리이지, 토종야생화의 여왕을 뽑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민들레는 외래종이라고 미워하지 말고 그 나라의 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데, 심사위원장인 호랑나비는 ‘시민권을 받는다고 해서 피를 속일 수는 없’다고 하고, ‘외래종은 강하고 포악해서 우리 토종을 멸종’시킨다고 말한다. 결국 서양민들레는 퇴장을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토종민들레가 서양민들레에 밀려난 현실은 슬픈 일이지만, 이제는 민들레 하면 다들 ‘서양민들레’를 떠올릴 만큼 일반화되었음에도 배척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것인가?
이 책은 생태동화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인간의 삶이 더 많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수많은 숲 속 생물들과, 그들의 습성과 특성을 잘 표현했지만,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조금 주저된다. 사회적인 배려와 대책 없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만 하는 현실, 부와 권력의 집중으로 격차가 더 벌어져 사회적 신분의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한부모가정 혹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을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지 않으려는 현실이 그대로 이 책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생태동화로서만 읽지 못했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러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