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잘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질문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묻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질문을 하려고 하면 나는 식은 땀이 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딱히 정식으로 물어보지 않아도 질문은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다고.
우리 눈에 무언가가 보이고,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고, 코에 어떤 냄새가 맡아질 때 '어? 이건 뭐지?'라고 무의식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늘 '본능적으로' 묻는다. 그랬구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질문이 정확해야 답이 구체적일 수 있으며 질문-대답에 이어 새로운 질문이 나와야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좋은 질문이란 무엇보다 구체적인 질문이고, 길이 잡힌 질문이고, 무한히 펼쳐놓기보다 차츰 길을 좁혀 주는 질문이다. (p.27)
질문에도 종류가 있을까? 의도에 따라서 질문의 형태가 결정된다. 정말 궁금해서 상대에게서 그 답을 듣고자 던지는 질문을 '진짜 질문'이고, 이미 답이 정해진 상태에서 상대에게 그걸 재확인하려고 내놓는 질문은 '가짜 질문'이다.
질문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궁금한 것이 아닌 '가짜 질문'은 수사적 질문(수사의문문)이 있다. 반대 의미를 강조하는 '반어적 질문(반어의문문)', 질문의 형태를 빌린 '명령적 질문(명령의문문)', '감탄적 질문(감탄의문문)' 등이 있다.
이러한 가짜 질문은 자신의 감정을 강조해 표현함으로써 상대가 나에게 공감하며 내가 강조하는 바를 재확인해 주길 바라는 의도를 품고 있다. 이런 질문은 '지식 추구'에 부합하는 형식은 아니다.
그에 반해 '진짜 질문'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판정적 질문(판정의문문)'과 '설명적 질문(설명의문문)' 등이 있다. 진짜 질문을 '방향성'이란 관점에서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면 '한 지점으로 좁혀 가는 질문'과 '사방으로 넓혀 가는 질문', 그리고 '옆으로 이동하는 질문'으로 구분된다.
'좁혀가는 질문'은 여러 정보를 한 점의 확정적 지식으로 모아주는 질문으로 주로 '예, 아니오'로 귀결되는 '판정적 질문'이 이에 적합하다. '넓혀 가는 질문'이란 한 가지 정보에서 시작해서 다방면의 지식으러 뻗어나가는 질문이다. '옆으로 이동하는 질문'이란 특정한 방향성 없이 대화를 이어주는 질문으로 딱히 목적 없는 대화나 사고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질문이다.
질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다 질문의 힘에 이른다. 질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우리가 '힘'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언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질문의 힘은 더 활기찬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더 나은 지식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는 것에서 실현된다.
질문 권력은 시민의 알 권리로부터 나온다
'알 권리(right to know)'에 대응하는 의무개념으로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 있다. 질문 권력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듯, 설명 책임 역시 아무에게나 지워지지 않는다. 본래 질문 권력은 민주적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주인인 시민에게 주어진 것이고, 설명 책임은 그런 시민이 (다스림을 받는 자로서가 아니라) 주권자로서 갖고 있는 권력을 잠시 맡겨 둔 대행자, 즉 공직자에게 부과되는 것이다.(p.102)
나쁜 가짜 질문과 진짜 질문, 그리고 좋은 가짜 질문과 진짜 질문 가운데 오직 좋은 진짜 질문만이 우리를 더 나은 지식으로 이끌고 그로써 우리 사회를 개선한다. 각 개인 각 부문이 마망히 궁금해해야 할 것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질문 권력을 쓰거나 그걸 대행하는 이들을 통해 책임자들의 설명을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질문 '대행자, '훈련자, 선구자'가 있다.
대표적인 '질문 대행자'는 언론이고, 교육은 '질문 훈련자'이다. 그리고 각종 예술은 '창의적 질문의 선구자'이다. 질문에는 훌륭한 힘이 있고, 그 의도와 형태가 올바르기만 하다면 누구나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힘과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질문이 무엇인지,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질문이 가진 힘과 영향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은 마지막에 묻는다. 왜 우리는 질문을 하지 않느냐고.
첫째, 우리는 아직도 권위적이고 집단적인 문화에 익숙하다. 내 주장을 펼치기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데에 여전히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둘째, 모임과 학습에 참여하는 자발성이 부족한 까닭에 질문과 대답이 잘 이어지는 쌍방향적이고 역동적인 소통을 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 세째, 이로부터 질문으로 익숙한 상황을 깨는 것보다, 질문하지 않는 상황에 적응하거나 그냥 회피래 버리는 것이 이득이라는 '경험칙'이 사회적으로 공유된다. 넷째, '부분적으로 합당한' 경험칙이 '전체적으로 부당한' 관습으로 고착됨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사회 변화가 어려워진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다섯째, 그렇다면 여러분이, 아니 우리 모두가 내심 품고 있을만한, 탈권위주의적이고 반집단적주의적인 욕망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작용에 대해 반작용이 없을 수 없고, 해소되지 않은 욕망은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p.1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