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인문학 산책 - 7일에 완성하는 서양 고전의 모든 것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서정원 옮김 / 프로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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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스 로마'를 공부하겠지만, 인문학 관련 도서를 읽다 보면 '그리스 로마'를 알면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는 것은 서양 인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스 로마 인문학 산책'은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자꾸 만나게 되는 '그리스 로마'때문에 선택한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윤기 선생님의 책을 꽤나 꼼꼼히 읽었는데 그걸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아서 다른 책에서 대뜸 신들의 이름이 나올 때 그들이 어떤 신이었는지 무엇을 상징하는 지가 바로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에 손이 간 듯하다.

일단, 결론을 말하자면 서양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도움이 되겠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리스 로마를 다 이해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약간의 도움을 얻을 수는 있다.

 

1부에서는 서양 문화의 뿌리, 신화이야기를 다룬다. 그리스 로마의 신들의 가계도를 정리하고 주요 신들을 소개하며, 아홉 여신, 모이라이, 복수와 저주의 여신들, 고르곤, 하르피이아이,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와 같은 여성 혹은 괴물을 다룬다. 이어서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다양한 문화와 어휘 속에 남아 있다. 신화 속 인물들은 문학 곳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아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

2부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룬다. 2500년 전으로 거술러 올라가면 역사가 끝나고 신화가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른다. 위대한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과거의 사건들을 연구하고 검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고전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헤로도토스를 읽지 않았다'(p.68)고 말한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들은 것을 기록하면서, 그것을 믿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히거나 여기서 언급한 것은 내 눈으로 보았다라고 확실히 언급하기도 한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위대한 그리스인과 위대한 로마인을 비교한 23편의 수필로 구성되어 있다. 플루타르크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화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글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이와 함께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이야기하며 위대한 연설가 데모스테네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3부에서는 고대 로마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갈리아족, 로마공화국, 카르타고, 페니키아,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에 이어 로마의 황제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 라틴어 이름에 관한 간단한 지식 페이지가 흥미롭다. 그리스인들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시작되자 이름에 지역을 포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귀족은 보통 세 개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르는 개인의 이름, 씨족이나 부족, 대가족의 이름,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전해진 성씨와 같은 이름으로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네 번째 이름은 개인적인 업적으로 표시하거나 입양을 나타내기 위해 추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4부에서는 휴머니즘을 담은 고전문학을 소개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호머는 고대그리스의 유일한 문학가가 아니었다. 이솝,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있다. 고전극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시학>은 후기 유럽의 극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의 극작품은 상당히 정해진 패턴을 따랐는데 코러스가 시작되고, 연극의 액션이 코러스의 해설과 함께 퍼진다. 연극은 항상 종교적인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문학에서는 키케로, 오비디우스를 살펴봄직하다.

5부에서는 수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을 다룬다. 그 유명한 수학자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들이다. 의학에서는 히포크라테스를 들 수 있고 철학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이름만 들어도 아!! 하지 않는가.

6부에서는 화려한 건축과 예술, 고대스포츠를, 7부에서는 고전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살펴봤지만, 우리가 서양 인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그리스와 로마'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읽었던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도 반복해서 그리스의 신들이 나온다. 현대 문학에서도 그리스 신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다.

이 책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문 지식을 깊이 있게 다뤄주지는 않는다. 서양인문학을 시작하기 전에 이 정도는 알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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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4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들은 읽을 때는 아 하는데 읽고 나서 조금만 지나면 또 까먹고 다른 책 보면서 또 아! 하고 하여튼 늘 반복되어요. ㅎㅎ 이놈의 기억력이 정말.... 이책은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찾아보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이네요. ^^

하양물감 2021-04-14 23:29   좋아요 0 | URL
음. 이 책은 그리 매력적인 책은 아니어서 곁에 둘 정도는 아니어요. 서양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정도는 될것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04-15 00:29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보관함에서 확 뺄까요? ㅎㅎ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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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시리즈로 기획된 도서가 한 권씩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인문학 도서를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고민할 때 서가명강 시리즈가 꽤 괜찮은 것 같다. 고전을 선택할 때 '세계문학시리즈'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의식적으로 역사, 과학, 인문 도서를 찾아서 읽는 편이지만 읽는 것만큼 이해도 잘 하고 있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잘 풀어서 설명해주는 책이 좋다. 『열하일기』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만큼 유명한 책이다. 고등학생 때 『열하일기』의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하게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자세히 읽어보겠다고 몇 권의 책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조금 읽다가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마침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을 읽고 나니 읽다 만 『열하일기』를 다시 읽어야겠다.



이 책의 제목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1780년'과 '열하'를 하나의 제목 안에 넣음으로써 이야기의 시공간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한다.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을 여행하고 남긴 기록을 보통 '연행록'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연'은 '베이징'을 의미하므로 베이징을 다녀온 여행기라고 볼 수 있다. 연행록 중에서도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주 유명한데,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관한 내용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열하일기』 속의 '열하 이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적은 글이 아니라는 것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선 후기 사신의 외교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 우선 나는 몇 가지 단어를 정리할 수 있었다. "조선의 국왕은 1년에 몇 번씩이나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이를 보통 조공이라고 부른다. 명의 황제는 비록 형식적이고 사후적인 행위이긴 했지만 조선의 국왕을 공식적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를 책봉이라고 한다."(P.21)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조선과 청은 군신관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청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기념한 3대 명절, 즉 성절, 정단, 동지에 조선에서 파견한 사신은 절사로 통칭되었다. 이 세 가지 절사 외에 경조사나 기타 중요한 외교 사안이 발생했을 때 보내는 사신은 별사라고 한다. 절사든 별사든 조선의 사신은 국왕 명의로 작성하 표문을 지참하였는데, 이런 표문에는 응당 선물, 즉 예물이 뒤따라야 했다. 조공 사절이 가져가는 예물을 방물이라고 불렀다."(P.66)

건륭제는 10년에 한 번씩 만수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칠순 만수절 또한 베이징에서 기념하리라 예상하였다. 황제의 칠순은 청의 건국 이래 처음 맞이하는 경사였으며, 중국 역사 전체를 보아도 통일 이후 그 시점까지 고희의 경지에 이른 황제는 여섯 명 정도였다. 그런데 건륭제는 자신의 칠순 생일을 여느 생일과 다름 없이 보내고 싶다면서 고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사실은 자신의 생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건륭제가 칠순을 맞을 당시 조선의 왕은 정조였다. 정조는 건륭의 칠순을 그냥 넘기지 않고 '특별한 축하'를 하였다. 이전까지는 없던 일이었기에 '축하'를 위한 '진하표문'을 가져는 가되 분위기를 봐가면서 제출을 하기로 하였다. 절사로 간 조선의 사신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바꾸거나 일정을 조정하는 등의 외교활동을 하였다. 보통 조공을 위해 사신들이 중국을 가거나 하면 조공으로 바쳐야 하는 방물의 전달만을 생각하기 쉽다. 우리에게 사신들이 실제로 한 일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데, 이 책을 통해 일부지만 사신들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3부에서는 절사로 갔던 박명원의 '봉불지사'소동을 다루고 있다. 이 내용은 학생 때 배우기도 했기에 기억에 있다. 다만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이 사건을 해명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해놓았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열하일기』의 최대 특징은 역시 조선인이 직접 겪은 '열하 이야기'를 최초로, 그것도 빼어난 글솜씨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일 것이다. 연행록 작품들은 대개 베이징에 다녀온 이야기였지만, 『열하일기』에는 제목이 표방한 대로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열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 전체 분량의 30~40퍼센트가 직접 또는 간접의 열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박지원은 자신을 포함한 조선 사신 일행이 겪은 열하 이야기를 「태학유관록」, 「찰십륜포」, 「반선시말」, 「황교문답」, 「행재잡록」등에 집중적으로 펼쳐놓았다."(P.153)

이 중에서 「찰십륜포」에 묘사된 건륭과 판첸의 만남은 청과 티베트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특별한 가치를 인정 받아 많이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박명원이 이끌었던 1780년 진하 특사의 활동에서 나온 산물이므로 당연히 박명원 일행의 사행활동을 이해해야 한다.

4부로 가면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통해 박명원의 '봉물지사'를 어떻게 변호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박지원은 중국 예부의 거짓을 밝혀 적음으로써 박명원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하고, 사건의 발생 시점을 교묘하게 섞어놓음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놓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그의 책이 건륭과 판첸의 만남이라는 논쟁거리 외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 않은가.

5부에서는 조선과 청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표면에 드러난 결과와는 달리 그 이면에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협상도 하고 정세도 바꾸는 것이 외교이다. 1780년의 열하는 조선과 청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중요한 분수령이 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문학작품으로서도 훌륭하지만 조선의 외교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위기에 처한 박명원을 변호하는 글로서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열하일기』를 읽는다면 1780년 그 시기의 한국사를 떠올리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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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월든 : 숲속의 생활 - 185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전행선 옮김 / 더스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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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을 처음 읽었던 때가 생각난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었다. 수중에 가진 돈도 얼마 없었기에 여성전용 고시원의 방 하나를 빌려 들어갔다. 책상 하나와 내 몸 하나 누우면 몸을 돌리기도 불안했던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 책상 한 귀퉁이에 책을 한 권 두 권 쌓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월든'이다.

당시에 샀던 책을 제법 오래 갖고 다녔는데, 다시 읽으려고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분명 어딘가에 있겠지만, 찾다가 포기하고 새 책을 한 권 샀다. 같은 표지의 책이 보였지만, 똑같은 책 2권이 생기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이 책을 선택하였다. 1854년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이란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이 책도 이름은 알지만 읽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다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 책을 쓸 당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숲속에 혼자 살았다. 그가 월든 호숫가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도, 대단한 희생을 치르며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개인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일은 형 존과의 추억을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소로는 '집을 마련하고 나면,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가난해진다."(P.52)고 하였다. 이 문장을 읽는데 딱 지금의 현실과 어쩜 이리도 들어맞을까 싶었다.

"대다수의 사람이 마침애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식 주택을 소유하거나 빌릴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 보자. 문명의 발달과 함께 주택도 개선되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의 수준까지 똑같은 정도로 향상되지는 않았다."(P.53)

나는 아직 내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부동산'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이 섞여버린 요즘, 내 집 하나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가 사는 곳이 곧 그의 신분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몇 십억 짜리 집에 사는 이들은 구입한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단지 내에 차를 갖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들만의 세상에 우리는 없다.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가 우리를 규정짓는다. 소로의 말대로 집이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고 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하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로는 "그런 집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 집을 등껍질 삼아 사는 거주민의 삶이지, 집 자체의 독특함이 아니다"(P.72)라고 말한다.

소로의 숲 속 생활을 엿보는 것도 좋았지만, 직업 탓인지 관심사가 그러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독서'에 관해 쓴 글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고전은 인류의 생각을 담은 가장 고귀한 기록"(P.150)이라는 그는 "책은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쓴 만큼 열심히 삼가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P.150)고 주장한다. "책은 세상의 소중한 재산이고 모든 세대와 민족에 속하는 유산이다."(P.152) 고전을 원어로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인류 역사에 관해 충분히 배울 수 없다. (P.153)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자를 읽을 줄 알거나, 남이 읽어주는 글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이는 삶을 더욱 유익하게 살아가며 지혜도 쌓여간다.

소로는 숲에서 지낸 첫 여름에 책을 읽지 못했다고 말한다. 노동의 참맛을 알아가던 그 여름은 몸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던 터다. 자기가 지은 집에서 이런 저런 방문자들을 맞이하며 숲 속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 소로는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지고 집값을 갚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안타깝다고 여겼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소로가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추가: '월든'을 읽으면서 소로가 그리스 신화와 이야기들, 동서양의 고전이 이야기하는 가치들을 인용한 문장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다. 서양 인문학의 중심에 '그리스 신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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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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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외래어 표기는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아 '똘스또이'는 낯설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읽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했던' 중학생 때 읽었다. 그래서 늘 읽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거의 떠올리지 못했다. 얼마 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었고, 이번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다.

"이반 일리치는 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동료였고 그들 모두가 사랑했던 사람이다. (중략) 그가 사망하고 나면 알렉세예프가 그 자리에 임명될 것이고 알렉세예프 자리에는 빈니꼬프나 시따벨이 임명될 것이라는 설이 이미 나돌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모여 있던 이 고위급 인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 (p.8~9)

이 장면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신문에서 읽은 그들 동료들의 생각으로, 소설의 서두를 장식한다.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추모하기에 앞서 남은 자들의 삶을 걱정하거나나에게 닥쳐올 변화에 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리게 된다. 1800년대의 그들과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

동료의 죽음을 듣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직장 내 보직 이동 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은 이가 자신이 아니라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예의상 추도식에 참석해서 미망인을 위로하고 귀찮지만 인사는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반 일리치의 부인도 장례를 치르며 남편의 동료들을 상대하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이것 저것 준비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대성통곡을 하며 쓰러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익히 아는 장례식장의 풍경을 떠올려보라. 그들이 죽은 이반 일리치를 생각하며 울지 않는다고 욕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죽은 이의 보험 처리를 하고, 재산을 분할하며 남은 자들의 삶을 챙긴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린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료들은 '귀찮지만' 예의상 추도식에 참석하고, 아내와 딸은 그가 남긴 재산과 더 받을 것이 없는지만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는 어떤 삶을 살아 온 사람일까?

이반 일리치는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지극히 끔찍한 것이었다고.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인정되는 한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는 착실하게 근무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고 모든 일을 수준 높고 절도있게 수행했기 때문에 그를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도 없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고 예의 바르게 처신했기 때문에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결혼도 평생 그렇게 해왓던 것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진행하였다.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이 채워졌고, 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p.31) 때문에 결혼을 하였다.

이반 일리치에게 가정은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 사랑이 없는 아내와의 관계는 당연히 삐걱댈 수 밖에 없는데, 그는 가정을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갔다. 아내가 매달릴수록 이반 일리치는 생활의 중심을 자신의 직무로 옮겨갔다. 이반 일리치에게 가정은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나마 품격을 잘 지키는 것'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이쯤 되니 이반 일리치의 아내가 장례를 치르며 슬퍼하기보다 현실적 문제를 더 고민했던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거나 고통을 감내하면서 받아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정보다 일을 중시하는 것이 워커홀릭이어서가 아니라 가정이나 아내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녀'를 더 응원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이 끔찍하게 외롭고, 누군가를 부르자니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상태가 더욱 악화된다는 것"(p.89)을 잘 알고 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통증보다 혼자라는 끔찍한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죽음' 앞에 서면 '더 살고 싶어질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3년 전 암 수술을 하였다. 암이라는 것이 워낙 '죽음'과 가까운 병이어서 나 또한 그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만약 죽는다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아주 어리지 않다는 것에 안도했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만큼 의료보험 덕을 볼 수 있다는 것에도 안도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 내가 '삶'이라는 것에 그렇게 미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저 살아있는 동안에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야겠구나.

이반 일리치는 죽음 직전에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이 온다. '고통'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겠나마는, 그래도 나는 이 한 세상 잘 살다 간다고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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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4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하양물감님 그런 일도 있으셧군요. 잘 견디고 이겨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죽음앞에서 어떨지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인간 대부분의 죽음이 저렇지 않을까 싶어 씁쓸하네요. 톨스토이 같은 대가가 그려낸 죽음의 진실 같기도 하구요.

하양물감 2021-04-11 23:16   좋아요 0 | URL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죽음이 나에게 닥치지 않는 이상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가명강 시리즈 15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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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일의 고전 명작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홍진호 교수가 그 답을 제시하기 위해 썼다.

첫 번째는 작품이 쓰인 시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작품에서 얘기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통적인 문학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p.12~13)

어떤 해석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는지, 혹은 더 타당한 것인지는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문학 작품은 그것이 시이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뒤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줄거리가 전부인 소설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문학작품들, 특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것들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작품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이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즉 우리가 '해석'이라 부르는 세심한 독서와 성찰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p.32)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하는 것들을 접할 때 머리 속에서 이미 '해석'을 하고 있다. 미디어는 지금 우리의 현재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반응이 따라오는 시대이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고전문학이 어렵거나 지루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고전이라 하면 서양의 고전이 대부분이다보니 한국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루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줄거리 이면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세심한 독서가 필요하다. 대강의 줄거리만 알아서는 그 이면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해석을 위해서는 작가나 작품에 관련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작가가 살던 시대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작가가 살던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아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어떤 고전은 이런 정보가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가하면, 어떤 고전은 이런 정보가 주어져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선행 정보가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만 있다면, 그렇게 많은 서양 고전들을 우리가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고 있거나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상황이나 현실에 공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일의 소설을 소개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시골의사』 가 그것이다.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키워드를 만날 수 있다. 1919년에 헤세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데미안』은 독일문학의 오랜 전통인 '발전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인간관이나 가치체계는 파괴되었지만 새로운 인간관이나 세계관이 자리를 잡지 못한 시대였다. 헤세는 소설 곳곳에서 내면에 대해 언급한다. 철학이나 종교, 윤리나 관습 등과 같은 외부의 가르침이나 명령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를 따를 때 올바른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헤세의 삶을 이해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데미안』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꼭 그런 이유를 알아서였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데미안』을 중학생 때 처음 읽었고, 그때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서야 내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은 작가의 상황이나 그 이면의 내용을 알아서가 아니다. 이 책이 그렇게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고전으로서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자신의 이야기와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엮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완성하였다. 괴테도 이 책을 출간할 당시 익명으로 출간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고 한다.

이 소설이 출간된 후 베르터를 따라 자살한 남성들이 최소 12명이라고 한다. 오늘날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베르테르효과'라고 하는 이유다. 그래서 괴테는 두 편의 시를 삽입하여 자살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젊은이들은 그렇게 사랑하기를 갈망하고

모든 소녀들은 그렇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 욕망 중 가장 성스러운 것.

그런데 쓰디쓴 고통이 솟구쳐 나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걸까?

사랑스러운 영혼이여, 너는 눈물을 흘리고, 그를 사랑한다.

너는 그의 기억을 굴욕감으로부터 구한다.

보라, 그의 넋이 그의 동굴에서 네게 손짓하는구나.

남자가 되어라, 그리고 나를 따르지 말라고.

p.107~108

저자는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18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재미있는 줄거리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전문학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당대의 문화적 요구에 의해 쓰여진 책이니 우리가 그 시대를 알지 못하면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있고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라도 재미있지 않다면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고전이 되기는 어렵다. 드러난 줄거리 이면의 내용을 조금만 알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고전이 많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작품을 먼저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소설 중에서 폰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래서일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을 덮은 후 『672번째 밤의 동화』를 찾아서 읽을 확률은.... 낮다. 어쨌든 이 부분을 어렵게 넘기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시골의사』 가 나온다. 역시 읽어본 책, 그리고 아는 내용이 나오니 더 술술 이해가 된다.

카프카의 작품은 해석을 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라고 한다. 그나마 『변신』은 아주 쉬운 편? 굳이 카프카가 살던 시기의 사회적 현상을 알지 못해도 지금의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착취와 인간소외로만 이 책을 읽었을 경우에 그러하다. 『시골의사』 는 그 내용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소설이다. 저자는 『시골의사』를 정신분석학의 측면에서 해석한 내용을 소개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와 작품은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이해했던 작품을 한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회문화학적으로, 혹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또는 작가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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