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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
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약 20년전 인가? 윈도즈용 <한글 3.0>이 출시되었을 때 흥미로운 기능이 있었다. 바로 글맵시! 글자모양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었기에 가끔씩 요긴하게 써 먹었다. 요즘은 써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읽은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의 표지에서 글맵시 특유의 모양과 글꼴을  발견한다. 그런데 형압처리된 표지인데도 불구하고, 최근 내가 본 책표지 중 가장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한 세대 전의 책 표지를 보는 듯한... 이 뿐만 아니라 본문도 고색창연한 구시대의 나열식 편집인지라, 이것이 의도적 복고 컨셉인지 그냥 쉽게 원고대로 처리한 건지 아리송하다. 책의 내용에 관한 언급도 없이 쓰잘데 없는 트집부터 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같은 내용일지라도 표지와 출판사의 기획·편집력에 따라_물론 적절한 광고를 포함한_ 그 판매량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참 많이 봐 왔기에 목표 독자층을 어디에 두고 이런 일러스트를 표지화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제학을 입다 먹다 짓다>는 KDI 박정호 전문연구원의 책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에겐 별로 끌림이 없는 책이다. 이렇게 신간평가단의 선택서로 어쩔 수 없이 읽고 리뷰를 올려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표지에서부터 나의 눈길이 외면했을 것이고, 설령 손에서 휘리릭 내용을 훑어보는 짧은 인연이 있었더라도 그 순간으로 끝날 책이었다. 내용이 별로냐? 그건 아니다. 우리의 기본적 삶_의식주_ 속에서 발견되는 여러 현상을 테마로 삼아 의외로 이해하기 쉽게 어려운 경제 원리나 프레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실무에 밝은 전문가의 포스가 제법 느껴지는 내용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경제학 콘서트> 이후로 이런 컨셉의 유사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자연스레 이미 여러 책을 섭렵하였다. 나에겐 이 책의 내용이 새롭지도 않고 어떤 느낌마저도 없는, 그저 또 하나의 아류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배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론 그랬다는 거다.

 

 이 책을 다 읽어보니 아쉬움이 생기더라. 저자처럼 경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좀 더 욕심(?)을 내었더라면 좋았겠단 아쉬움... 처음에 밝힌 것처럼 단순히 출간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편집 디자인에 더 공을 들였더라면 훨~ 나은 평가를 얻지 않을까. 젊은 감각의 다양한 편집 기법을 활용하여 내용을 세련되게 정리하고, 가끔씩 삽화로 쓰인 흑백 톤의 이미지도 좀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색으로 하거나 아니면 QR코드를 삽입하여 이미지를 보완하게 하거나 하면 좋았으리라는 그런 느낌... 예를 들어 콜라의 대체재로 탄생한 '환타'가 설탕의 대체재 역할까지 했다는 것은 전쟁사 에피소드로도 소개되는 이야기인데, 인터넷을 서핑해보면 환타 이미지의 판타스틱한 색감이 읽고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읽을 만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여기에 광고 카피까지 세련되면 더욱 좋고... 뭐~ 그냥 임택트가 좀 약했다는 거다.

 

조금 시니컬하게 느낌을 적었지만, 명품 의류와 SPA 의류의 양극화 현상 이유는? 식권을 지급해야 하나, 중식 보조금을 줘야 하나? 글로벌 불균형이 탕수육을 탄생시켰다? 미인은 누구와 결혼해 사는가?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낸다? 지방의 대형 마트가 더 큰 이유는? 당신의 부동산은 공공재다? 이런 테마는 참 괜찮았다. <경제학 콘서트>에 못지않았으며,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저자만의 식견과 감각이었다. 다만 이런 멋진 경제적 감각을 얼마만큼 독자의 선택으로 이어지게 하였는지 의문이 인다. 한마디로 책의 내용에 비해 편집이 아쉽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촌평이다. (이렇게 적어놓고도 내가 이 표지에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아리송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인데... 내 마음 속에 저런 글맵시 스타일에 뭔가 맺힌게 있는걸까? 표지와 편집에 대한 언급이 그저 나만의 딴지 일까?... 아마도 이런 류의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는 출판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나섰으면 뭔가 좀 더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색이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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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경제가 D의 공포니 어쩌니 우려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를 반영하듯 기준금리는 1%대라는 아찔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도 어느 선에서 유지하고 싶고, 경기활성화도 이루고 싶겠지만 뭔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어찌하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민족의 저력이 다시 모습을 나타나야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봄은 봄인가 보다. 벚꽃은 만발하였고... 어제 오늘 비 소식이 반갑다...


간밤에 내린 비 겨우내 빈 논을 적셨네
고즈넉한 아침햇볕 늦도록 겨울잠자는 개구리 깨우는데
부지런한 할아버지 벌써 호미며 쟁기를 손질하고
할머니는 새로 올라온 냉이를 찾고 있네. 

 

夜雨滴寒畓 密陽驚遲蝸
燥翁備耨耜 老姑探薺菜 -早春(이른 봄)-

 

1. 발명 상업화 바이블 - 발명출시부터 특허분쟁까지 

 한번씩 아이디어가 반짝거려도 이를 어떻게 가치화 시킬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변리사를 통하면 된다지만 그것도 뭘 알아야...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2. 새로운 트렌드가 온다  - 미래 트렌드, 예측을 뛰어넘는 행간 읽기

매년 초에 이런 책이 많이 나오는데... 시기상으로 좀 늦은감... 경쟁을 피한건가? 아무튼 이 책은 좀 더 포괄적인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거꾸로 즐기는 1% 금리

금리 1%대. 정말 어렵다. 저축을 하자니 별 실익도 없고, 투자를 하자니 위험이 바로 눈에 보인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4. 작지만 강한 나노 브랜드 - 니즈와 원츠를 쪼개고 또 쪼개라

 나노 브랜드란 고객의 초세분화된 ‘원츠’에 맞는 브랜드를 의미한단다. 조금 새로운 느낌의 내용일거란 느낌. 기대가 된다.

 

5. 3천만원으로 은퇴 후 40년 사는 법 - 행복한 귀농귀촌 첫 걸음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내자신이 아리송하다. 귀농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데, 가끔 작은 텃밭이 그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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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4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5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미셸 뷔시의 <검은 수련>! 너무 괜찮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읽은 형사추리물 중 단연 최고 반열의 책이라 꼽을 만하다.(단, 빠른 전개로 생각할 틈도 없이 밀어붙이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스릴러 형사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머리만 아프고 별로 일듯...) 책을 덮고 한참동안 여운이 남더라. 살인이 있고 이를 해결하는 스토리야 추리소설의 전형이지만, 그 속에 3중의 구조(화자의 입장에서)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쌓아가며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유지하는 플롯은 정말 대단하다. 암시나 복선이 아닌 듯한데 뭔가가 행간에 숨겨져 있는 듯한, 느리게 소실선을 따라가면서도 그 깊이가 얼른 잡히지 않는 그런 느낌! 그 조각 조각 숨겨진 의혹의 그림자를 쉬이 떨치지 못해 머릿속으로 쉽게 판단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다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전율에 빠지는 순간, 한마디로 고도의 감각으로 언어를 잘 갈무리하고 있다는 감탄을 하게 하더라.(범인을 좇아 차근차근 진실에 접근하는 추리소설 특유의 묘미를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문학성까지 갖췄다는 의미). 일본추리에서 느낄 수 없는 한 수준 위의 품격이 있었고, 유럽추리의 스케일에 미묘한 섬세함이 더해져 빛을 발한다. 보통 이런 찬사는 잘 안하는데, 이 책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정교한 짜임으로 놀라움을 주는 소설을 꽤 오랜만에 봤는지라 책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추리문학상(2011년 귀스타브 플로베르 대상, 지중해 추리문학상, 코냑 추리문학 독자상, 상당크르 페스티벌 독자상, 미셸 르브룅 상, 2014년 자유비평닷컴상, 도미티 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비평가 추리문학상' 등 7개 문학상에 후보작으로 지명되었다고 나온다.(역시 느낌 있는 책은 어디서든지 알아보는구나.) 리뷰를 어떤 관점으로 적을까 조금 고민했는데 한 가지는 분명해지더라. 다른 독자를 위해 아무런 힌트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므로 혹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절대로 그 뒷내용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지 마시라. 모든 미스터리 책이 그렇지만, 결정적 내용을 살짝 흘리는 헤살꾼들에게 휘둘리지 마시라.(그냥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줄거리가 제일 적당하다.) 읽는 도중에 어떤 의심(예를 들어 아이들이 너무 똑똑한 거 아니냐~ 이 할머니 도대체 뭐냐~ 등등)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시길... 전체 얼개가 이해되는 순간이 한 순간에 들이닥친다.(난 아둔한지라 오르티 섬에 가는 장면에서야 소품처럼 등장하는 개 '넵튠'이 나타날 때 전체 아웃라인과 플롯이 선명하게 읽혀지더라.)

 

모네의 정원으로 유명한 지베르니 마을. 한적한 어느 새벽, 엡트 강에서 발견된 시신으로 예술의 신이 그려낸 듯한 아름다운 마을에 핏빛 균열이 생긴다. 피해자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엡트 강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흘러가고, 포플러 장막이 둘러싼 개양귀비 흐드러진 붉고 푸른 초원에는 신성한 침묵이 감돈다.

이 마을에 세 여인이 살고 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열한 살 소녀, 매혹적인 서른여섯 살의 여교사, 마녀처럼 모든 걸 알고 몰래 숨어 지켜보는 노파. 이들에게는 비밀스러운 공통분모가 있다. 그건 마을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베르니는 인상주의 성지이자 꿈의 정원이지만 이들에게는 액자 속 그림 같은 감옥이자 운명을 얽어매는 덫일 뿐이다.
살인사건을 계기로 세 여인의 필사적인 탈출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 중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 그곳을 빠져나갈 자는 누구인가?
<출판사 제공 줄거리> 

 

검은 수련! 이 무채색의 암울함 속에 스며 든 인간의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광기가 나를 슬프게 한다. 살해된 남자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시 구절 "우리는 꿈이라는 죄 만들었지."(루이 아라공 <님프의 동굴>에 나오는 시라고 하네. Le crime de rêver je consens qu'on l'instaure). 꿈이 죄가 되어야 하는, "이성의 눈에 꿈은 무뢰배 Aux yeux de la raison le rêve est un bandit"가 되는 뒤틀린 갈증이 욕망의 스산함을 잉태한다. 그리하여 빛을 잃은 수련이 "애도의 꽃. 절대 완성되지 말았어야 할 슬픈 애도의 꽃"으로 운명 지어질 때, 인생무상의 덧없음이 마음을 아리게 하더라. 인생사 불여의(人生事 不如意)라... 여하간 살인을 다루는 형사 추리소설에서 적절한 애로틱함과 함께 시공간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구성하여 전율적인 반전을 끌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가히 독보적인 경지라 아니할 수 없다.
정리해 보자. 추리소설의 평가 잣대로 많이 활용되는 엘러리 퀸의 10가지 관점으로 볼 때, 구성, 서스펜스(긴장감), 의외의 결말, 해결방법의 합리성, 문장, 성격묘사, 무대, 단서, 독자와의 대결 등 아홉 분야에서 별 다섯 ★★★★★, 살인의 방법 한 분야에서는 별 넷 ★★★★을 준다. 쪼잔한(?) 일본 추리에 지친 마니아는 꼭 읽어볼만한 책이라 추천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을 구글링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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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0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과 관련된 추리소설은 제가 좋아하는 장르인데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

표맥(漂麥) 2015-04-02 09:00   좋아요 0 | URL
분량에 비해 의외로 느리게 읽혀진 형사미스테리였습니다. 유럽 추리는 스케일은 크나 섬세함이 좀 부족하다는 평소의 생각이었는데, 이 책은 확실히 플롯이 잘 짜여있다는 생각입니다. 내용보다는 작가의 짜임이 괜찮다는 점에서 한번 읽어보시길 정말 권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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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은 분주함을 넘어선 '바쁨'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더 이상 미망(迷妄)의 더께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자문하게 되더라. 이어 내 자신을 위한 이런저런 투자(공부를 더 한다거나 마라톤 등등)의 시기마저 지나니 그 다음은 보다 자유로운, 걸림이 없는 나만의 삶을 지향하게 되더만.(물론 뜻대로 다 되는 건 아니고...) 당연히 인간 본연의 존재 의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오고, 자연스레 고전(古典) 사상서나 종교의 경전(經典) 속에서 그 해답의 단초를 찾으려고 뒤적거리게 되더라. 묘하게도 젊은 시절엔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이 없던 문장이나 가르침이 세상사 경험의 깊이만큼 선명하게 각성되는 이건 또 뭐람.  대략 서양의 정신 속엔 건조한 묵시적 신비주의가 보였고, 동양의 정신 속엔 정해진 틀이 없는 '마음'이란 게 있더만. 종교라는 것도 그 이름을 들어내고 보니 뿌리와 줄기는 거의 비슷하고 크고 작은 가지만 달라보였다. 그 무엇이든 결국은 인간의 삶, 그 중에서도 고(苦)로 귀결되더라는 거지. 이 고(苦)란 것이 어디 단순한 괴로움이겠는가. 시대의 결함과 불만족에 맞닿아 있는 아픔이 아니겠는가. 그 아픔을 보담는게 종교 아니겠는가. 에고~ 개똥철학 집어치우라 해도 뭐~ 할 말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경전 7첩 반상>.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경전'이란 큰 제목보다 '7첩 반상'이란 글의 의미가 더 빨리 와 닿더라. 그래서 요리 관련 책인가 싶었다.(아마도 최근 들어 요리에 조금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요리 책이 아니더만. 인류가 낳은 정신적 유산 중에서도 그 최고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가히 지혜와 사상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일곱 권의 경전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더라. 책에 뒷면에 요약되어있는 일곱 가지 경전의 카피를 보니,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가장 초기에 모아진 <숫타니파타>, 동양 문헌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덕경>, 양 극단으로 치달은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간절한 정신이기도 한 <중용>, 나뿐 아닌 너와 우리 모두의 대 자유를 추구하는 대승의 중추 <금강경>, 인도를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된 <바가바드기타>,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선두 마차 <도마복음>, 우리 정신과 우리 철학을 담고 있는 <동경대전>이 소개되어 있었다. 물질만으론 해소할 수 없는 풍요 속의 허기와 깊은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지혜가 경전 속에 있다는데, 이 일곱 중 다섯의 원전을 어쨌든 나름의 느낌으로 읽은 적이 있는지라 나는 저자가 어떻게 그 오의(奧義)를 풀어내는지, 그 깨달음의 경지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저자는 다양한 종교의 경전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바탕을 다지는 일이요, 나아가 '참된 나'를 체득하는 뛰어난 방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이 나온 것이고... 사실 '내 경전'만 챙기는 종교적 편협성이나 극단주의는 갈등의 심화 또는 전쟁 등의 고통으로 이어져 온 것이 역사 아닌가. 독선은 편견과 무지를 낳고 이는 '너의 것만 아니라 나의 것'조차 올바르게 알 수 없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눈 감은 신앙으로는 경전에 숨은 속뜻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개념이 곧 내 마음이다. 저자는 그래서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도록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고 묵상해 보자는 의도에서 2013년 늦가을 '종교 너머, 아하! 경계 너머, 아하!'를 지향하는 '일요경모임'이란 지식협동조합을 설립하였는가 본데, 이 책은 그 결과물인 듯하다. 경을 소리 내어 읽고, 가다듬고, 잠시 명상을 통해 이들이 얻은 '황홀한 기쁨, 은혜와 가피'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단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한번 들어보시라', '냄새라도 맡아보시라'고 권하는 생각 밥상이요 마음 밥상이라는 의미에서 책의 제목을 <경전 7첩 반상>이라고 했다한다.(그런데 난 경전을 음식에 빗대는 타이틀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구먼)

 

처음에 소개되는 경전이 <도마복음>이다. 1945년에 발견된 이 도마 복음서는 4복음서의 형식과 달리 예수의 일생에 대한 전기적 내용 보다는 예수의 어록을 주로 담고 있다. 신성을 중시하는 기독인들은 이단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나, 정신과 영혼을 탐구하는 이에겐 참으로 경이롭고 놀라운 경서다.(나는 오강남 교수 책과 도올 선생 책을 읽었다.)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는 여러 기적이나 부활, 재림, 최후 심판 등등 유일신을 향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진면목 즉, 자아를 찾는 '깨달음'을 강조하니 어찌 놀랍다 하지 않겠는가. "나를 추종하지 말고 나처럼 되라.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무지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는 말은 정말 지금의 성경과는 많이 다르다. 도마복음은 "이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비밀의 문을 연다. 달마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결국 마음속에 있는 신성(神性, 하느님)을 깨닫고 그것이 인성(人性) 그 자체가 될 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로 이해하고 만다. 한마디로 불이(不二)다.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가 완전히 다른 것 같으나 그 사이에 도마복음을 놓으면 서로가 통하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느낌을 들더라.

 

저자가 일곱 경전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홀로 있음'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그래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으로 나아가자는 거지. 도마 복음의 67절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를 보면 어째 섬뜩하다. 이건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과 통할 뿐 아니라, 도덕경의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自知者明)과 통하고 중용의 신독(愼獨)과도 통하며, 법구경의 무소의 뿔과도 연결되고 바가바드기타의 지혜의 요가와도 그 깨달음이 하나가 된다. 한마디로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너 자신을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일곱 경전의 전반을 관통한다. 행복은 자신의 깨달음 즉, 자아를 찾아 다시 시작점으로 회귀하였을 때 시작되는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끝이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는 "시작을 찾았는가?"라고 되묻는다. 나는 여기서 본성을 찾는 단계를 소 찾는 것에 비유한 심우도(尋牛圖)가 떠오르더라. 도마복음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작에 서 있는 사람이며,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이며, 가난한 사람이고, 홀로 있는 사람이고, 박해받는 사람, 길 잃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어째 고(苦)의 향기가 나지 않는가! 결국 '삶의 답'은 자신을 어떻게 알고 구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일곱 경전 중 내가 정식으로 읽은 적이 없는 경전은 <바가바드기타>와 <동경대전>이었다. 힌두교의 <우파니샤드>는 어찌어찌 요가 아사나를 배우면서 읽었는데 바가바드기타는 처음으로 간략 내용을 알게 되었다. <동경대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움(?)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더라. 동학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고, 인내천이나 21자의 주문(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만세불망만사지) 염송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그 근본을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동경대전이나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경전이 오늘날에는 그저 '열린 보물창고'처럼 언제든지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는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 한 자락만 열면 편협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의 진수를 수용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종교적 경계의 걸림에서 벗어나 그 종교가 가진 '황금 지혜'를 슬기롭게 받아들인다면,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보다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즈음에서 생각의 흐름이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로 이어지더라. ‘참된 나’로 맞이하는 삶은 그저 행복이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걸까? 진리로 통하는 비밀의 문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않나싶다. 내가 어리석어 이 책에서 특별한 견성(見性)의 경지를 엿보지는 못했지만, 제법 읽을 만 했다는 건 알겠다. 나름 괜찮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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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방외지사 열전 2 - 죽기 전에 한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자!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1권보다 훨~ 흥미로운 2권!
오래 전 캄보디아 명승지를 여행 한 적이 있다. 첫날 앙코르톰을 방문했을 때 입이 벌어지지 않더라. 그런데 그 이튿날 앙코르와트를 봤더니 톰은 아마추어이고 와트는 프로더라. 만약 와트를 먼저보고 톰을 봤더라면 싱거울 뻔 했다. 이 <방외지사> 2권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1권은 나와 조금 거리감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였지만, 2권은 가끔씩 내가 걸어가고자 꿈꾸기도 했던 길을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였다. 2권 중에서도 특히 2부 '한길을 가는 구도자'편 보다 1부 '정신의 길을 가는 탐험가'편이 확~ 마음을 끌어당기더라. 단순한 방외지사의 소개가 아닌 저자 조 선생의 내공과 등장인물들의 내공이 어우러져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를 엿보게 하더라. 1,2 권 두 권 중 한 권만 선택하라면 당연히 나는 2권을 택하겠다.


정신의 길!
인간의 각성은 우주론적 깨달음에 진정으로 이를 수 있는 걸까? 이 길에 멀리 가 있는 방외지사 제주도의 대각심 스님도 대단하고, 신선의 길을 추구하는 곽종인 화산파 23대 장문인의 인생사도 그냥 흥미롭다고 표현하기엔 찌리리~ 전율이 인다. 옥추경(玉樞經)을 외우는 청원 도사의 영적 파워는 또 어떤가. 글로 대한 그의 신통력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 또한 선승 범휴(梵休)의 언덕배기인 청화(淸華)문중 수행 요지가 보리방편문(염불선)이라는데, 이 수행법이 용수보살로 부터 전해져온 티베트 닝마파의 비전(秘傳) '족첸' 수행법과 같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유가의 도인 청곡을 통해 본 유교적 카리스마와, 영남·기호학파의 오늘 날 정체성과 존재감에 대한 내용도 괜찮은 읽을거리였다. 대담 중 최고의 대담은 도담(道談)이고 영담(靈談)이라더니 참으로 그 느낌이 잘 전해져 오는 조 선생 글빨! 대.단.하.다.


전어풍광공유전.
조 선생의 <방외지사 2>를 읽노라면 지리산 터줏대감이라는 김을생 선생의 소감과 책의 이미지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전어풍광공유전(傳語風光共流轉)이란 두보의 곡강(曲江) 한 구절로 지리산 철학을 전하고 있다. '바람과 빛과 대화하면서 함께 흘러간다.'는 뜻인데, 자유자재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의지'를 이루어내는 방외(方外) 그 길을 나는 왜 걸어가지 못했을까…….

일단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바깥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부터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이 많이 들리던데, '죽기 전에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자!'라는 부제를 단 이 <방외지사>는 그런 소소한 목표를 초월하는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바람과 저 빛에 나의 마음을 실고 자연과 함께 흘러갈 수 있는 나는 존재하기나 할까……. 이 시대 진정한 인생 고수들인 그들이 부.럽.다.


경계선 너머의 삶!
이규태 선생 이후 강호 동양학에서 가장 신선한 문필력으로 다가온 분이 조용헌 선생이다. 그의 글은 그냥 머리로 공부해 뱉어내는 공허함이 아니라 발로 몸으로 직접 부딪혀 본 그런 생생함이 살아있어 좋다. 대담자의 삶을 그냥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잘 섞어서 심장이 죽은 도시인의 일상과 다른 세상_무협지의 천외천 같은_을 걸어가는 방외지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이만 먹고 고정관념의 울타리 안에서 허덕이는, 어쩌면 열린 세계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사람들에게 경계선 너머의 삶이 있음을 알게 한다.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했던가... '오포세대'란 신조어가 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의 꿈마저 포기해 버린 청년 백수들이 넘쳐나는 세태를 꼬집는 단어인데, 이런 방외지사의 삶도 있음을 그들이 알았으면 하는 다소 비약적인 생각을 해 봤다.


잡스러운 생각 두어개.
조용헌 선생의 칼럼이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젊고 신선한 강호학에 흠뻑 빠져들기는 하지만, 그에 대해 박수만 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강호학은 이거저거 다 떼어버린 '삶' 그 자체에 대해서는 참으로 진솔하고 깊이 있는 품격을 느끼게 하지만, 정작 그 삶이 끼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축소 또는 함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월의 더께가 조금 더 쌓이면 더욱 강건해진 글을 볼 수 있으리라고 혼자 생각해 버리고 만다... 또한 조 선생이 무협지를 써도 거의 김용(金庸)급 작가가 되었으리란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더라. 그만큼 그의 글에는 독자를 끌어땅기는 감칠맛이 있다... 책 속으로 상당히 빠져든 2권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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