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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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은 분주함을 넘어선 '바쁨'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더 이상 미망(迷妄)의 더께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자문하게 되더라. 이어 내 자신을 위한 이런저런 투자(공부를 더 한다거나 마라톤 등등)의 시기마저 지나니 그 다음은 보다 자유로운, 걸림이 없는 나만의 삶을 지향하게 되더만.(물론 뜻대로 다 되는 건 아니고...) 당연히 인간 본연의 존재 의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오고, 자연스레 고전(古典) 사상서나 종교의 경전(經典) 속에서 그 해답의 단초를 찾으려고 뒤적거리게 되더라. 묘하게도 젊은 시절엔 별다른 감흥이나 느낌이 없던 문장이나 가르침이 세상사 경험의 깊이만큼 선명하게 각성되는 이건 또 뭐람.  대략 서양의 정신 속엔 건조한 묵시적 신비주의가 보였고, 동양의 정신 속엔 정해진 틀이 없는 '마음'이란 게 있더만. 종교라는 것도 그 이름을 들어내고 보니 뿌리와 줄기는 거의 비슷하고 크고 작은 가지만 달라보였다. 그 무엇이든 결국은 인간의 삶, 그 중에서도 고(苦)로 귀결되더라는 거지. 이 고(苦)란 것이 어디 단순한 괴로움이겠는가. 시대의 결함과 불만족에 맞닿아 있는 아픔이 아니겠는가. 그 아픔을 보담는게 종교 아니겠는가. 에고~ 개똥철학 집어치우라 해도 뭐~ 할 말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경전 7첩 반상>.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경전'이란 큰 제목보다 '7첩 반상'이란 글의 의미가 더 빨리 와 닿더라. 그래서 요리 관련 책인가 싶었다.(아마도 최근 들어 요리에 조금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요리 책이 아니더만. 인류가 낳은 정신적 유산 중에서도 그 최고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가히 지혜와 사상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일곱 권의 경전을 통해 우리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더라. 책에 뒷면에 요약되어있는 일곱 가지 경전의 카피를 보니,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가장 초기에 모아진 <숫타니파타>, 동양 문헌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덕경>, 양 극단으로 치달은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간절한 정신이기도 한 <중용>, 나뿐 아닌 너와 우리 모두의 대 자유를 추구하는 대승의 중추 <금강경>, 인도를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된 <바가바드기타>,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선두 마차 <도마복음>, 우리 정신과 우리 철학을 담고 있는 <동경대전>이 소개되어 있었다. 물질만으론 해소할 수 없는 풍요 속의 허기와 깊은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지혜가 경전 속에 있다는데, 이 일곱 중 다섯의 원전을 어쨌든 나름의 느낌으로 읽은 적이 있는지라 나는 저자가 어떻게 그 오의(奧義)를 풀어내는지, 그 깨달음의 경지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저자는 다양한 종교의 경전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의 바탕을 다지는 일이요, 나아가 '참된 나'를 체득하는 뛰어난 방편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이 나온 것이고... 사실 '내 경전'만 챙기는 종교적 편협성이나 극단주의는 갈등의 심화 또는 전쟁 등의 고통으로 이어져 온 것이 역사 아닌가. 독선은 편견과 무지를 낳고 이는 '너의 것만 아니라 나의 것'조차 올바르게 알 수 없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눈 감은 신앙으로는 경전에 숨은 속뜻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개념이 곧 내 마음이다. 저자는 그래서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도록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고 묵상해 보자는 의도에서 2013년 늦가을 '종교 너머, 아하! 경계 너머, 아하!'를 지향하는 '일요경모임'이란 지식협동조합을 설립하였는가 본데, 이 책은 그 결과물인 듯하다. 경을 소리 내어 읽고, 가다듬고, 잠시 명상을 통해 이들이 얻은 '황홀한 기쁨, 은혜와 가피'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단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한번 들어보시라', '냄새라도 맡아보시라'고 권하는 생각 밥상이요 마음 밥상이라는 의미에서 책의 제목을 <경전 7첩 반상>이라고 했다한다.(그런데 난 경전을 음식에 빗대는 타이틀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구먼)

 

처음에 소개되는 경전이 <도마복음>이다. 1945년에 발견된 이 도마 복음서는 4복음서의 형식과 달리 예수의 일생에 대한 전기적 내용 보다는 예수의 어록을 주로 담고 있다. 신성을 중시하는 기독인들은 이단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나, 정신과 영혼을 탐구하는 이에겐 참으로 경이롭고 놀라운 경서다.(나는 오강남 교수 책과 도올 선생 책을 읽었다.)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는 여러 기적이나 부활, 재림, 최후 심판 등등 유일신을 향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진면목 즉, 자아를 찾는 '깨달음'을 강조하니 어찌 놀랍다 하지 않겠는가. "나를 추종하지 말고 나처럼 되라.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무지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는 말은 정말 지금의 성경과는 많이 다르다. 도마복음은 "이 말씀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비밀의 문을 연다. 달마의 가르침인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은가. 결국 마음속에 있는 신성(神性, 하느님)을 깨닫고 그것이 인성(人性) 그 자체가 될 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로 이해하고 만다. 한마디로 불이(不二)다.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가 완전히 다른 것 같으나 그 사이에 도마복음을 놓으면 서로가 통하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느낌을 들더라.

 

저자가 일곱 경전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홀로 있음'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자는 거다. 그래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으로 나아가자는 거지. 도마 복음의 67절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를 보면 어째 섬뜩하다. 이건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과 통할 뿐 아니라, 도덕경의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自知者明)과 통하고 중용의 신독(愼獨)과도 통하며, 법구경의 무소의 뿔과도 연결되고 바가바드기타의 지혜의 요가와도 그 깨달음이 하나가 된다. 한마디로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는 너 자신을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일곱 경전의 전반을 관통한다. 행복은 자신의 깨달음 즉, 자아를 찾아 다시 시작점으로 회귀하였을 때 시작되는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끝이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는 "시작을 찾았는가?"라고 되묻는다. 나는 여기서 본성을 찾는 단계를 소 찾는 것에 비유한 심우도(尋牛圖)가 떠오르더라. 도마복음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작에 서 있는 사람이며,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이며, 가난한 사람이고, 홀로 있는 사람이고, 박해받는 사람, 길 잃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어째 고(苦)의 향기가 나지 않는가! 결국 '삶의 답'은 자신을 어떻게 알고 구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일곱 경전 중 내가 정식으로 읽은 적이 없는 경전은 <바가바드기타>와 <동경대전>이었다. 힌두교의 <우파니샤드>는 어찌어찌 요가 아사나를 배우면서 읽었는데 바가바드기타는 처음으로 간략 내용을 알게 되었다. <동경대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움(?)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더라. 동학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고, 인내천이나 21자의 주문(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만세불망만사지) 염송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그 근본을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동경대전이나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경전이 오늘날에는 그저 '열린 보물창고'처럼 언제든지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는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다. 마음 한 자락만 열면 편협에서 벗어나 다른 종교의 진수를 수용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종교적 경계의 걸림에서 벗어나 그 종교가 가진 '황금 지혜'를 슬기롭게 받아들인다면,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보다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즈음에서 생각의 흐름이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로 이어지더라. ‘참된 나’로 맞이하는 삶은 그저 행복이란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걸까? 진리로 통하는 비밀의 문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않나싶다. 내가 어리석어 이 책에서 특별한 견성(見性)의 경지를 엿보지는 못했지만, 제법 읽을 만 했다는 건 알겠다. 나름 괜찮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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