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 경이로운 생명의 나비효과
박재용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은 참으로 놀랍다. 정밀과학 개념이 없던 시절에 고대인들은 자연의 흐름을 관찰하여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생상극으로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풀이한다. 하늘(양)과 땅(음)은 서로 대등하게 대립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태극으로 발현한다. 태극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원형의 구조인데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이다. 여기에 '무위자연'이나 '태허귀원 만류귀종 대도무형 현현무종(太虛歸元萬流歸宗大道無形玄玄無終)'의 생각을 더하면 무한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영특함이 느껴진다.

 

자연 속에서 독야청청이란 건 없을 거다.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유명한 '마오쩌둥과 참새'의 일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마오쩌둥이 참새들이 벼를 쪼아 먹는걸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지적한 후, 참새 박멸운동이 벌어진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참새 씨가 마르자 해충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큰 흉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아로 4,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죽었다고 하니, 모든 만물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서로 떼어 낼 수 없다는 태극과 무극의 사상이 무색하기만 하다.

 

잡설이 길었는데,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 경이로운 생명의 나비효과>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어봤을 뿐이다. 공진화란 함께 진화한다는 말이다. 생태계의 어는 한 곳에서 시작된 진화는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생물들에게 연달아 진화를 요구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진화는 한 생물에겐 결과이지만 동시에 관련 있는 다른 생물에겐 진화의 시작인 것이다. 마치 북경 나비가 너풀거리는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우를 불러온다는 말처럼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는 거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서로 균형을 잡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동적 평행일 뿐이다. 알고 보면 수시로 이 균형은 깨지고 변태와 노화를 통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잎꾼개미와 4자 동맹이 흥미로웠는데,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라는 잎꾼개미(가위개미)는 나뭇잎을 수집해 쌓은 뒤 주름버섯균으로 버섯을 재배해서 먹는다. 그러데 싱싱한 잎은 분해가 잘 안되므로 식물의 뿌리나 토양에 있는 제 3의 협업자 '질소고정세균'이 등장한다. 버섯은 이들에게 당분을 주고, 이들은 버섯에게 질산염을 제공한다. 이 때 개미는 버섯에 기생하는 곰팡이 균을 막기 위해 항생제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를 키워 이들을 보호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생태계는 서로 얽히고설키는 공진화의 관계라는 것이다.

 

진딧물이 개미가 사육하는 젖소라면, 부전나비 애벌레와 개미는 마약으로 경비를 서게 만드는 마녀와 경비병의 관계와 흡사하다. 182쪽


이 책의 키워드는 '공진화'이지만, 읽다보면 이 출판사의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의 모든 것을 '관계 속에서의 진화'로 녹여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세균부터 동식물 및 기생 생물에 이르기까지 포식과 피식 및 경쟁, 기생과 공생 등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이 서로 공진화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맞춘다는 거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인간의 길을 쫒아간다. 최고 포식자가 된 인간의 눈부신 진화에 뒤쳐진 다른 생물들의 현실을 지적하는데, '인간과 경쟁하면 모두 멸종'하는 위기 앞에 공진화란 어림도 없다는 거다. 과연 인간만 남은 생태계가 존속할 수 있을까? 이즈음에서 조화에 바탕을 둔 동양사상이 다시 와 닿는다.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여섯 번째 대멸종기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11-0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점이 가위개미의 지하 둥지가 농작물에 위협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지역은 가위개미를 해충으로 인식해요. ^^

표맥(漂麥) 2017-11-07 22:47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도 공진화가 좋은 관계로만 되지 않는다는걸 많이 언급하더군요. 그리고 위에 문맥상 안적은 내용이 있는데요. 저자의 글맵씨가 예사 매끄러운게 아니더군요.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듯 공을 들였더군요. 하지만 너무 매끄러워서 임팩트가 어딘지, 흔히 말하는 높낮이가 잘 안잡혀서 별 4개를 주었더랬습니다. 기존 서적에 나오는 평범한 이야기였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책 리뷰 올라온 분들의 별점이 모두 5개라서 내심 당황 하였습니다... 후기로 덧붙일까~ 했던 내용을 이렇게 살짝 얹어서 이야기 해 봅니다....^^
 
관계의 비결 - 사기, 성공하는 관계를 말하다
박영규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과 인간. 같은 말이지만 느낌이 조금 다르게 와 닿는다. 사람의 발음은 '삶'의 연장선에서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삶은 사는 일이다.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즉 개인의 삶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할 때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그래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관계(關係)라 한다면 이게 쉽지 않다. 마음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엮어가기도 하지만, 자칫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만남 자체가 개인의 악몽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까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일생동안 경영하는 일의 70%가 사람과의 일이라던데, 어떻게 그 관계를 일구어야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는 고르디우스 매듭과 유사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 순간의 감정이 한 순간에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응어리로 남아 애증이 되고 원수가 된다. 누군가처럼 단칼에 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완벽한 지혜가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선인들도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하여 옛것을 빌어 현재를 풀어나가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번에 읽은 <관계의 비결 - 사기, 성공하는 관계를 말하다>도 그런 책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등장하는 선하고, 악하고, 의롭고, 간사하고, 복수열전, 쾌락탐구 등등 오만 인간 군상을 '관계'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독서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본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개념으로 풍성하게 서술한다는 것은 저자가 아주 많이 생각하고 준비했다는 것이라 느껴졌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고자 하였고, 저자는 이러한 사기에 담긴 수많은 역사적 인물 이야기를 11개의 테마로 나누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민거리인 '관계'를 우회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1장 '천하를 얻은 관계의 달인'은 모든 환경과 조건이 불리했던 유방이 항우를 꺾고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프레임 이슈와, 장량·소하 등의 인재 활용 및 한신·팽월 등의 토사구팽도 모두 관계 설정의 문제로 풀어나간다. 이 외에도 성공한 2인자와 실패한 2인자, 득이 되거나 독이 되는 관계, 관계의 명암을 만드는 차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관계의 기술,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관계의 힘, 관계를 결정짓는 세 얼굴, 돌고 도는 관계의 비밀, 크게 얻는 관계의 기술, 미숙한 관계의 비극, 관계를 회복시키는 기술 등등을 서술하고 있다.

 

나의 삶과 견주어서 고개를 끄덕인 대목은 '받고자 하면 먼저 주어라',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아라', '가치 있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해라', '튀는 사람을 따돌리지 마라' 등등 이었다. 그런데 관계에도 기술이 필요할까? 저자는 관계를 만들고, 지속시키고, 끊고 하는 일련의 행위들에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며, 그 기술의 핵심은 관심과 배려, 정의로움이다.”라고 한다. 이 말을 뭉텅 거리면 관계의 기술이란 결국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안목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절제된 처신을 하자는 건데... 안목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생겨나면 얼마나 좋겠냐만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고 했다. 그저 열린 사고와 여유로 이런 고전의 향기가 몸에 배이고 내 것이 되도록 안목을 키워보는 거다.

 

관심이 없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배려가 없으면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 나만 알고 내 실속만 차리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익을 앞세워 관계를 맺고 끊으면 반드시 뒤탈이 생긴다. 관계를 맺고 끊는 기준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로움이어야 한다. (6쪽)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고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높다. 그러나 이런 자존감이 모든 인간에서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근거 없는 자존감은 허영심만 잔뜩 키워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한다. (80쪽)

 

황제의 비위만 맞추고 아첨하다가 황제를 옳지 못한 곳으로 빠트려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국가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 자기 한 몸만을 아끼고 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조정대사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아닌가? (140쪽)

 

법이란 천자와 천하 사람들에게 함께 적용되는 것입니다. 정위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법의 생명은 공평무사함에 있습니다. 제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판결하면 천하에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모두 임의로 그 경중을 따질 것이므로 백성들이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145쪽)

 


[오기]

89쪽 하단 : 유방의 결단을 ==> 한신의 결단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03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5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 - 자본주의가 앓는 정신병을 진단하다
토마스 세들라체크.올리버 탄처 지음, 배명자 옮김 / 세종서적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는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다. 실험에 의하거나 학문적인 통찰에 의한 보편적인 경제학 접근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신화와 경제의 접목이다. 그냥 연결시켰다면 별로일 터인데, 마치 수능 문제처럼 이중적 물음으로 읽는 이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일단 신화에 투영된 인간의 원초적(원형적) 심리를 프로이드나 칼 융, 또는 프롬의 이론으로 짚어본 후, 그 인간성의 발현으로써 경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시스템 해석도구로써 보편적 인지분석이 아닌, '신화'를 통해 설명해 내는 그 발상과 논리가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책의 원제가 '릴리스와 자본의 악마 Lilith und die Damonen des Kapitals'이다. 릴리스는 아담의 첫 아내였다고 한다. 하와(이브)가 아닌... 그녀는 아담과 동등함을 주장하다가 에덴동산(완벽함의 상징)을 자발적으로 떠난다. '억압의 시스템'이 없는 낙원에서 릴리스가 억압을 느꼈다는 것, 즉 "억압을 느끼는 것은 억압하는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억압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자 '인간의 조건'에 속한다(46쪽)."라고 저자는 피력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개인의 억압' 아닌가. 릴리스는 이렇게 자본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의 은유로 등장한다. 그런데 출판사는 왜 제목을 <프로이트의 소파에 누운 경제>라고 바꾸었을까?

 

서문을 읽어보니... 정신분석의 전형적인 모습이 '소파에 누워 이야기하는 환자'라네. "경제를 소파에 눕혀놓고 그것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한다. 경제는 무슨 말을 할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합리화할까? 무엇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주제를 터부시할까? ... 어떤 신화와 선입견이 경제의 (합리적) 사고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궁금증의 원천은 '경제는 확실히 메시아 콤플렉스가 동반된 나르시시즘 징후 같은 몇몇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및 경제시스템의 정신적 장애를 확실히 찾아낼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장애일까? 경제는 얼마나 사회적 장애를 앓고 있는가? 무엇이 장애를 강화하고 또 완화하는가?(13쪽)”하는 의문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금의 경제시스템 덕분에 큰 진보와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체계적으로 관찰해 보면 사디즘, 나르시시즘, 사도마조히즘의 병증이 감지된단다.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경제에 스며든 다섯 가지 장애를 찾아내냈었는데 현실인식장애, 공포증, 정서장애, 충동조절장애, 성격장애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 시대의 장애와 고대 신화를 연결하여 인류 존재 자체에 가해졌던 비판과 현대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드(신화를 질병의 시각화와 환자 분류에 이용)와 융(신화를 통해 인간 경험의 원형과 집단무의식을 감지)의 이론이 경제를 위한 치료 방법 모색의 주요 도구로 활용된다.

 

"경쟁의 토대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더는 자유로운 거래를 누릴 수 없고, 경쟁시스템에 동참하지 못하는 순간 경제적으로 죽게 된다. 그러므로 이른바 경쟁의 자유는 경쟁의 강요다(118쪽)."

 

예를 들어보자. 슘페터의 '창조적 혁신(파괴)'에 대한 기본 생각은 기업인이란 그들의 수익만 유일한 진보라고 여기고 합리화와 긴축 압박으로 점점 더 시스템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쾌락적이고 정적인 경제'의 보증인이라고 보았는데, 저자는 여기서 프로이드의 논문 <두려운 낯섦>을 연결시킨다. 시장경제와 그 공격적인 시스템에 대한 접근은 아킬레우스의 '도구적 공격' 즉 도구화된 경제로 풀어낸다. 자신의 부를 확대하기 위해 공격한다는 거지. 서구문명은 이런 공격성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역동적인 사회인데, '쾌락을 주는 공격'이 가장 위험하단다. 과도한 경쟁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쾌락을 주는 공격과 강하게 일치한다는 말이 왠지 설득력이 있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두려움 콤플렉스는 또 어떤가.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으로 불안의 구조에 접근해 보면 공포와 근심은 '자아'에게 너무 불편하기에 기꺼이 억눌리고 무의식 안에 머문다. 이런 억눌린 충동은 강박적 신경증으로 이어져 더욱 위험해지고 통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패닉에 빠진 시장)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 패닉을 설명하면서 신화 속의 판(목축의 신)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신화 - 인간의 원형적 본성 - 경제 현상을 연결하여 원천적인 차원에서 경제를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즉, 저자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야기하고 있는 '정신적 실존적 파멸의 길'의 현주소를 보여줌으로써 신 또는 운명이 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의심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상가들이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모순과 역설에 대해 말한다. 당대의 철학자 슬라예보 지젝 또한 라캉의 '상징-실제-상상' 개념을 차용하여 '자본주의의 과잉'을 설명하더만... 그런데 이런 문제가 인간의 본성과 존재 자체에서 비롯한 원천적 모순이요 역설이라면? '에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싶다가도 이세돌과 겨룬 알파고를 떠올리면 우리가 아는 상식이 정답이 아닐 때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경제의 정신을 분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테마지만, 여기에 신화를 대입하니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하여 이 책이 자본주의가 내포한 '함정'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기존 경제 분석 책에서 약간 벗어난 이런 책, 나름 읽을 만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소설보다는 경제나 과학 서적에 더 끌리다보니 제 때 챙겨 읽질 못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이 소설이 왜 큰 상을 수상했는지 생각해 본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낯선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끝까지 끌어당긴 글빨이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현란한 미문도 없었고 그 줄거리 또한 뻔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구닥다리 신파 또는 말도 안 되는 전설 같은 구라를 풀어놓는다. '이게 뭐냐~'는 의혹이 일어날 때 작가는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는 이화접목의 공능을 툭! 던지면서 질타를 간단히 비껴나가네. 대단한 반탄지기... 그러면서 그 다음 스토리를 궁금케 하는 변주곡이 난무하니 그것은 진정한 글쟁이의 법칙 아니겠는가.^^

 

금복! 소설 전체의 아우라를 유지하게 하는 핵심 캐릭터인 이 여인은 제법 반반하면서도 뭇 사내를 끌어당기는 육체적 매력(페르몬?)과 경제 수완을 타고 났네. 가난한 산골의 삶이 싫어 열네 살 때 생선장수를 따라 남쪽 바닷가(고래가 등장하니 포항이나 울산 정도로 보면 될 듯)로 탈출한 여인이다. 생선장수와 같이 살면서 타고난 사업 수완과 함께 관능과 열정이 서서히 깨어나는데... 봉변을 당할 뻔한 자신을 구해 준 장골의 사내 걱정, 영화쟁이 깡패 칼자국, 벽돌쟁이 문(文) 등 수없는 남정네를 거쳐 가면서 굴곡 많은 삶을 살아가는 이 여인의 로망은 다름 아닌 고래... 그녀는 평대에 '마치 커다란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막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극장을 직접 설계하기도 한다. 물론 허망한 결론으로 이어지지만...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해안엔 희미한 달빛 아래가 파도에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래밭에 쭈그리고 앉아 해수면 위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바다 한복판에서 갑자기 집채만한 물고기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목격했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丈)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멍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분수처럼 뿜어올려진 물은 달빛 속에서 은빛으로 눈부시게 흩어졌다. 그녀의 배 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거대한 감동이었다.

 

금복은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빈 덕에 걸어놓고 알몸으로 물 속을 향해 걸어갔다. 밤새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차가운 파도가 휘감았다. 그녀는 파랗게 빛나는 고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래는 거대한 유선형의 몸체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꼬리를 철썩거리다 이따금씩 힘찬 분기(噴氣)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매끄러운 거죽이 손에 잡힐 듯 코앞에서 번들거렸지만 고래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래는 다시 한번 크게 물을 뿜어낸 후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깊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허탈해진 그녀는 지칠 때까지 물 속에서 나오지 않고 다시 고래가 솟아오르길 기다렸지만 끝내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완전히 기진해서 그녀가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바다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등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게 했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제 그녀를 다시 어디론가 데려갈 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바람을 불렀을지도...(65쪽)

 

금복에게 고래는? 그건 순수에의 갈망 즉, 자신의 고된 역정에 대한 순수에의 동경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금복의 엄마는 동생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고만다. "그날 이후 금복을 지배한 건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인생의 절대 목표는 바로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다. 그 좁은 산골마을을 떠난 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그리고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을 지은 것도, 모두가 어릴 때 겪은 엄마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고래에게 매료된 것은 단지 그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잰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271쪽)"


춘희! 금복의 딸인데, 심상치 않은 탄생의 설화 속에서 전반부와 후반부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생선장수, 걱정, 칼자국을 모두 거치면서도 한 번도 애가 서지 않았던 금복이 전쟁의 와중에서 애를 낳았는데... 이 애가 걱정을 완전히 빼어닮았다나뭐나... 걱정이 죽은 지 이미 4년이나 흘렀는데 말이다. 임신기간이 4년? 고래로 변해 바다로 간 걱정의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참 어렵다. 이럴 땐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라고 그냥 넘겨야 하겠지... 어쨌거나 금복이 거대한 고래에 매료된 것처럼 남성성을 우러러 보다가 허망하게 화재로 자멸하는 모습이라면 춘희는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코끼리와 대화를 나누는 등 내면의 순수성으로 붉은 벽돌을 만들어 내고, 이 벽돌은 남산 중앙국립극장이라 여겨지는 대극장의 자재로 사용됨으로써 금복의 고래극장 대비되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렇게 이 소설은 망아의 상태에서 허랑한 시간들을 흘러 보낸다.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소설이란 느낌 속에서 틀에 박힌, 흔히 보는 정형화(?)된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가치이다. 바둑계를 뒤흔든 ‘알파고’처럼 말도 되지 않는 착점이라 생각했더니 그걸로 전체를 엮어가서 속절없이 항복하게 만드는 그런 능력을 보여주는 소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멋진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듯한 저자의 마무리가 소설의 전체를 아우르는 백미이다.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멋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경 아웃룩 2017 대예측 - 2017년 경영계획 수립의 필독서
매경이코노미 엮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란스럽다. 위태롭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요즈음 한국의 제반 사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안으로는 순실의 시대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경제면에서도 "꼼짝없는 저성장 국면에 '투자·소비, 좋은 게 하나 없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밖으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목을 조여 오는 형국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전부 강골들만 보인다. 미국의 트럼프는 예측불가의 언행으로 우릴 두렵게 하고, 중국의 시진핑도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평가 받고 있다. 푸틴도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추구하는 독재자 스타일이고 아베는 언급하기도 싫은 극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핵무기 협박질의 북한도 만만찮다.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도 우려스럽지만 트럼프의 자국 우선 보호무역주의도 걱정거리다. 트럼프의 행정 명령을 보면 지금까지의 천조국이란 미국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쇠락하는 명가의 몸부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게다가 요 며칠 동안 위안화, 유로화,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환율조작' 공격의 다음 칼날이 한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균형 환율이 아니라 대미 흑자가 큰 나라들이 알아서 기라는 거 아니겠나. 미국의 기준금리인상과 맞물린 달러 강세가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원화강세 = 달러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달러로 결제를 해야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당혹! 그 자체다.

 

언젠가부터 새해의 우리 경제 진단 예측이 항상 부정적이었지만 올해는 어떤 보고서를 봐도 그 정도가 정말 우려스럽다. 그래도 이런 사실을 알고 때론 조심스럽게 때론 도전적으로 나아가면 길이 보일 터, 물론 그러자고 이런 <2017 대예측 매경아웃룩 - 2017년 경영계획 수립의 필독서> 같은 책을 읽는 거지만 조금은 아찔하기도 하다. 이 책은 약간의 짜증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느 진단예측서 보다도 유용하다. _단점이란 이 책의 앞부분 10장과 뒷부분 2장이 일반 서적에서 볼 수 없는,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올 칼라 광고로 채워져 있다는 거다. 그러고도 책값은 20,000원. 광고를 이 정도 실었으면 보다 싸게 보급하여 널리 읽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닌가?_

 

하지만 내용면에선 매우 알찬 구성이었다. 'Ⅰ부. 경제 확대경'에서 다루는 '2017년 10대 트렌드'는 김난도의 <트렌드 코리아>처럼 예측 트렌드의 키워드 첫 글자를 재조합하여 'HIDDEN CARD', 즉 한국 경제에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숨겨진 해법'을 찾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Hyper connection 초연결(사물인터넷), Instauration 혁신((4차 산업혁명, AR 증강현실, VR 가상현실, AI 인공지능), Depression 불경기·불황, Debt economy 부채 경제, Election 선거, New normal 비혼족·혼밥·혼술, Cashless 현금 없는 사회, Aging society 초고령사회, Restructuring 구조조정, Dutch pay 각자내기 이렇게 10가지인데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더라.


'Ⅱ. 2017 7大 이슈'도 아주 맥을 잘 짚었다. 1997년·2008년 이어 10년 주기 위기설 불안감이라든지, 바이오·스마트카·전기차·AI 등 차세대 성장동력 문제, 북한 핵위협과 남북관계 전망, 조선·철강·해운 퇴출 위기로 읽어내는 주요 산업 구조조정, 차이나 리스크, 19대 대선 전망, 심화되는 미국의 자국우선 보호주의 등은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하는 큰 난제들이기에 집중하여 읽었다.
'Ⅲ. 지표로 보는 한국 경제'편도 아주 읽을 만했다. 전체를 통찰해 보면 '2%대 경제성장률과 1%대 중반 소비자물가 상승률'... 올해 한국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라 하겠다.  대량실업·가계부채 등의 악재로 소비 침체가 한층 심화될 것이며, 나랏빚이 GDP의 40% 돌파하여 복지구조조정·증세는 불가피하고, 미국의 고립주의·중국의 추격 등으로 흑자 규모는 대폭 감소할 거란 전망이다. 우울하네...


 2017년을 예측하는 여러 책을 읽어본 결과 올해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과 저성장'으로 귀착되더라. 글로벌 변동성이 커진다면 당연히 그 방향성을 잘 읽어야 살아남는다. 이 <매경 아웃룩>은 이런 인식을 공유하기에 적절한 책이라고 느꼈다. 대중성(일반 트렌드 책)과 전문성(경제 연구소 보고서)을 겸비하여 일반인이 읽어도 어렵지 않도록 잘 전개하였네. 사실 이런 정도의 자료들은 온라인에서 난무하다시피 하지만, 이를 일관성 있고 믿을 수 있는 정보로 가공하는 것은 매경 집필진의 깊은 내공과 능력이 잘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칭찬할만한 책이었다. 대신 내년에는 쓸데없는(?) 잡지형 광고를 빼고 출판하거나, 지금처럼 광고를 실을 거면 반에 반값 정도에 출판되길 기대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7-02-0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점에도 불구하고 읽어볼가치가 있는책이네요. 책 소개 감사합니다^^

표맥(漂麥) 2017-02-06 09:02   좋아요 0 | URL
수치가 나오면 좀 건조하긴 하지만... 잘 정리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