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부엌의 마법사 - 어느 푸드 스토리텔러가 차리는 음식과 사람 이야기
김성환 지음 / 이매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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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3.9.18.

 

글을 읽는 것을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나는 가리는 것 없이 폭식에 가까운 대식가에 속한다. 사실 글보다는 문자 중독자에 가깝다. 음식의 맛보다 배를 채운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폭식증 환자처럼. 내가 해독할 수 있는 문자로 된 읽을 거리가 내 앞에 있지 않을 때, 나는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중독자의 특성을 보인다. 안절부절은 기본이요, 내 스스로 읽을 거리를 자급자족 하기도 한다. 태평양의 어느 섬으로 갔던 신혼여행에서 한글로 된 읽을 거리를 찾지 못한 끝에 리조트의 메모지에 한글로 이런저런 문장을 끄적인 뒤 그것을 읽으며 나의 중독을 급히 해갈한 기억도 있으니.

 

이런 나도 나름의 뚜렷한 취향은 있는데 그 중 으뜸 또는 버금이 음식에 관한 글이다. 여러번 인용한 바 있는 앤 패디먼의 말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호, 2002, p.191)는 말을 약간 변형하자면, 나는 책에 대한 책은 물론 음식에 대한 책도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쓰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선호도 만큼이나 작가가 쓰는 음식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음식 전문 에세이스트나 요리사가 쓴 책이 아닌 소설가가 쓰는 음식에 관한 책. 이 분야 최고는 아무래도 성석제고. 한창훈의 책도 좋고, 소설가는 아니지만 에세이스트 김서령이 쓴 책도 좋다. . 언젠가 음식에 관해 작가가 쓴 책만 잔뜩 모아 리스트업을 해야지 생각만한지 벌써 10년도 넘었다. 이 고질적인 게으름병은 그렇다치더라도 사실 내가 탐닉하는 작가들 중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 한 권을 펴 내지 않은 작가를 꼽는 것이 훨씬 빠르다. 대부분은 음식 이야기를 최소 한권씩은 쓰셨다. 감사하다.

 

어쨌든 이 책은 나의 그러한 취향에 걸려들어 내 서재로 들어왔다. 스스로를 푸드 스토리텔러라 말하고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미국에 있는 요리 전문 학교)에 간 이유도 음식 이야기꾼food storyteller이 꿈이고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맛뿐 아니라 요리를 배우고 음식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p.245) 였다는 작가 김성환은 요리가 아닌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마친 사람이다. 지금은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CIA 출신 작가가 또 있다. 사실 CIA에서의 생활을 더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책은 마이클 룰먼의 셰프의 탄생-요리계의 하버드, CIA에서 보낸 2이다. 음식에 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인 나는 이 책을 2017년에 읽었다. 김성환의 책 보다는 이쪽이 훨씬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 (아니... 김성환의 책 리뷰에서 딴 책을 추천하다니. 뭐 어쩌라고. 그러나 이 마이클 룰먼의 책은 진짜 진짜 진짜다. 꼭 읽으시라.)

 

마이클 룰먼의 책에서는 요리사와 요리 작가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요리 작가로서 요리를 배우기 위해 1996CIA에 입교한 마이클 룰먼은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날 학교에 결석하겠다고 말을 한다. 눈보라가 치니까, 학교에 못가니까. 그를 가르치던 요리사 파두스 셰프는 그에게 말한다.

 

우리는 자네와 달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거든. 그게 바로 셰프의 덕목 중 하나야. …… 우리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방식을 가르치고 있어.”

……

중간은 없었다.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 것이다. 변명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떤 순간이든, 손에 잡히는 분명한 사실만이 의미가 있었다. 그뿐이었다.

셰프의 탄생-요리계의 하버드, CIA에서 보낸 2마이클 룰먼, 정현선 역, 푸른숲, 201, p.106-107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었지만(수많은 남자스타 쉐프들이 배출된 덕에 말이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부엌은 금남의 구역이었다. 이 책의 작가 김성환도 “‘남자가 소꿉장난하면 고추 떨어진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으며 자랐”(p. 5). 그가 1980년생임에도 말이다. 그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난 나는 쉐프가 터프함과 섹시함의 표본같은 존재로 인식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뭐 여기서까지 남녀의 문제를 논할 생각은 없고, 그저 음식에 관한 글이 아니라 음식 그 자체가 탐닉의 대상이 되고(하긴 그건 당연한 것인지도) 그 탐닉을 글로 옮기는 일이 왜 이렇게 각광 받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이다.

 

인간이 사는 3대 조건이 의식주라고 하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작가들이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음식에 관한 글만을 쓰는 작가가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일테다. 음식에 관한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쾌락을 제공한다. 동화 소공녀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아무래도 다락방에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이 차려졌던 그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작가 김성환은 하루 3, 80평생 87000번의 식사를 이야기 한다. 그 매번의 끼니가 모두 감동을 주는 식탁일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음식에 관한 책이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그 87,000번의 식사 중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그저그런 음식처럼,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딱히 이 책은 꼭 읽으시라 권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럼 리뷰는 왜 쓰니, 라고 묻는다면, 글쎄. 나 오늘 아침을 먹은 것처럼, 뭘 먹었는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으나 먹기는 먹었기에, 그리고 아침에 그 음식을 먹으면서 아 이런 저런 거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던 것처럼. 그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음식에 관한 이 책 저 책 그 책이 떠 올라서 그냥 중언부언해 보는 중이다.

 

셰프의 탄생을 읽으시라.

 

2023.9.1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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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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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3.9.17.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읽었던 순간의 느낌을 기억한다. 2017년 여름이었다. 충격적일만큼 좋은 소설이었고 좋은 느낌이었다. 2018년 나왔던 그 다음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도 좋았고, 꽤나 오래 기다렸단 느낌으로 다가왔던 2021년의 장편 밝은 밤도 좋았다.

 

내게 최은영은 조분조분하고 나직하면서 따뜻한 어조로 읊조리는 음색(글색)을 가진 작가다. 그 음색에 처연함을 몇 수저 더 끼얹으면 한강이 될 것 같은, 그러나 그 몇 수저 빠진 처연함 대신 따뜻하고 동글동글한 색을 얹어 최은영 특유의 색채를 만들어 내었다. 자칫 잘못하면 무기력해 보일 수도 있었을 그 순간에 최은영은 단단한 서사의 힘으로 튼튼한 줄기를 만들고 그 위에 따뜻한 어조의 옷을 입혔다. 서사와 어조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신작을 기다리게 하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에게는.

 

이번 소설 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살짝 힘이 빠졌다. 띠지의 말 그대로 내게 무해한 사람이후 5년만에 나온 단편인데, 그렇게 따지면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써 낸 작가도 아니도 그리 오래된 작가도 아닌데 벌써 매너리즘에 빠졌나? 싶을 정도로. 2017년부터 최은영의 신간 한권 한권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기다려가며 읽는 동안 매번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작가가 자랐음을, 발전했음을 발견하며 기특하고 감탄했다.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란 또 얼마나 쏠쏠한 것인가. 그런데 이번에는. .

 

여전히 따뜻하고 다정한 어조는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따뜻하고 다정한 어조에 힘을 불어넣던, 서사의 힘이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은영의 그 다정한 어조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그 다정한 어조가 힘을 발하는 이유는 그 다정한 어조를 받치고 있는 단단한 서사 때문인데(이 단단한 서사가 없다면 글쎄.)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 단단한 서사의 힘이 약하다.

 

최은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착하는 작가 중 하나다.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려 노력하지만, 그 개인의 내면을 이루는 서사는 외부의 인간과의 관계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유난히 그 관계에 천착하는 면을 보이면서도 그 관계의 서사를 쌓아가는 데 인색하게 굴어서 서사의 힘이 약하다는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그 와중에 최은영다운 장점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다.

 

영어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p. 19)’는 이유로 영문학자가 된 그녀와,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p.44)을 한 희원이 용산이라는 한 공간을(정확히는 공간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로 인해 생긴 상처와 수치 공감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최은영의 어조는 강하거나 거칠지 않다. 자분자분 조분조분 차분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어조는 뜻밖에 강한 선동으로 읽힐 때가 있다. 최은영의 서사가 제대로 힘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다. 이번 소설집에 약간은 실망했음에도 여전히 최은영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다.

 

2023.9.17.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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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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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대한 오마주 작별인사by 김영하

 

읽은 날 : 2023.2.8.

 

2001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유기물을 먹을 수 있느냐다. 인간과 거의 유사한 로봇 데이빗이 스윈튼 가족의 친아들 마틴을 질투하여 마틴과 똑같이 녹색 샐러드를 먹었다가 오류를 일으키는 그 장면은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A.I.를 연구하는 미래 과학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 것은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이 인간과 기계가 전쟁을 하는 순간이 과연 올까요, 고도로 발달한 A.I.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까요와 같은 질문이다. 여기에대해 뇌과학자 정재승은 “A.I.가 지구를 지배하고 인간을 공격하려면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의지(또는 욕망)’를 입력해야하는데, 기계에게 그 감정을 입력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2017년 알쓸신잡 시리즈12화에서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견해는 많은 A.I. 연구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마는.)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미래의 어느 시점, 사람들을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입력된 로봇이 만들어진다. 영어판 포스터에는 “His love is real. But he is not.” 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고 한국어판 영화관 팜플렛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로봇, 데이빗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문제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랑이 입력된 데이빗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이 질투와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다. 당신을 사랑하는 존재로 설계된 로봇이 그 사랑을 (, 자아)’도 받고 싶다는 욕망과 의지가 생기는 순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문예출판사, 1999, p. 269

 

결국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로봇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있어야 하기에 사람과 동일한 외형을 넘어 사람의 감정까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인간의 그 사랑은 무책임하다. 나의 사랑에 익숙하도록 만들어 놓고, 내가 사랑을 퍼부어 나를 사랑하게 해 놓고 상황이 달라지면 무심하게 돌아서 약간의 자기위안적 죄책감과 함께 버리고 만다. 그것이 로봇과 다른 인간의 속성이다. 설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아니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영속성을 가지나 그 사랑의 대상은 계속해서 바뀐다. 어린 시절 탐닉과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쏟았던 무언가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잊고 사는가. 인간의 사랑은 떠나가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단 하나만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존재는 그 사랑이 떠난 뒤 어쩌란 말인가. 책임을 지지도 않을(못할) 거면서 자아와 감정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스탠리 큐브릭과 손잡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데이빗을 만들고 작가 김영하는 철이를 만든다. 데이빗이 사랑에 특화된 존재인 반면 철이는 인류의 철학에 특화된 존재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선택을 주제로 받은 아빠식 작명법이었다. …… 내 이름 철이철학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p. 26-27

 

? 나는 철이야. 철광석의 철이 아니고 철학 할 때 철.”

p. 60

 

김영하,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둘 다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진 애완물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사랑을 받고(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과 인류의 유산을 차가운 데이터 센터가 아니라 정말 인간다운 마음을 가진 개체들 안에 보존할(p.228)’ 거창한 욕망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리도 동시에, 만들어진 개체의 욕망은 처음부터 배제된다는 공통점도 가진다. 모든 인간이 이에 대해 무감한 것은 아니어서, 영화에서 하비 박사도 동료 연구진과 설전을 벌이고, 소설에서 변호사와 철이의 아빠(또는 창조자)도 설전을 벌인다. 영화에서 하비 박사의 동료 연구자는 로봇이 한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그 인간은 그 대가로 로봇에게 무슨 책임을 져 줄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하고 이 책에서 변호사는 철이의 아빠 최진수 박사에게 묻는다.

 

차라리 감정을 가진 로봇의 제조를 아예 법으로 금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는 원래 인도적인 목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시작되죠.”

 

김영하,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p.182

 

하비 박사의 동료와 최진수 박사의 변호사가 결국은 감독과 작가의 질문을 대신하고 있는 셈일 수도 있다. 도대체 당신들, ‘감정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 놓고 어쩌자는 거냐고.

 

버림받은 데이빗과 납치당한 철이는 동일한 형태의 모험(이라니;;;)을 한다. 데이빗은 로봇 곰인형 테디와 남창 휴머노이드 지골로 조를 만나 플래시 페어에 끌려갔다 탈출하고 철이는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민이와 선이를 만나 수용소를 탈출한다. 데이빗은 다알아 박사를 만나고 철이는 달마를 만난다. 이 과정에서 데이빗은 인간의 잔인함을, 철이는 인간의 감정을 닮은 로봇의 잔인함을 경험한다. 생존의 욕구만 남은 로봇이 다른 로봇의 부속품을 찾아 자신의 부서진 몸에 이어붙이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충분히 기괴하였는데, 소설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선이는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p.203)라고 말하지만 인간이 만든 로봇도 별로 다르지 않다. 수용소의 재화(에너지, 전기)가 고갈되었을 때, 그곳에 모인 로봇이 보이는 행태는 인류의 이기심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집착한다, 물론 처음에. 데이빗은 처음부터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끝까지.

 

작가 김영하는 2022년 방영된 알쓸인잡 시리즈에서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역사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에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자유민인 성인 남자였다. 그러다 노예를 해방하고, 여자를 인류에 편입시키며 아이에게도 인권이라는 것을 부여했다. 놀랍게도 노예해방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노예해방을 매개로 시작된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5년 끝이났다. 300년이 채 되지 않은 역사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는 더욱 짧다. 인간의 역사가 이러할진대, 인류와 동일한 외형에 동일한 감정까지 가지고 있는 휴머노이드를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 여성의 자궁에서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휴머노이드를 처벌할 권리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가능할까? 300년 전 흑인들도 물었을 것이다. 피부색이 희다는 이유만으로 검은 피부를 가진 누군가를 매매하고 죽일 권리가 있는 것인가, 라고.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리면, 어령 샌님은 우리 인류가 이미 A.I. 시대를 경험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고대 그리스 시대라고. 노동과 생산은 노예에게 맡기고 그리스인은 그 철학을 논하고 정치를 하고 문학과 음악을 누리던 그때가 바로 A.I. 시대라고. 노예 대신 A.I.가 그 일을 해 줄 뿐이라고. 동일한 견해를 이호 박사도 알쓸인잡에서 말했다.

 

그리스 시대에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그 노예들, 아마 주변 정복 국가에서 잡아 온 그들은 3000년이 지난 지금 모두 그 그리스인과 동일한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인정되었다. 그렇다면 A.I.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와 책은 모두 인류의 멸종으로 이야기를 끝낸다. 데이빗은 인류가 멸종 된 2000년 뒤 단 하루 엄마를 만나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 설계된 대로 엄마로 입력된 사람의 죽음을 인지하면서 종료된다. 철이의 마지막도 같다.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클론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선이를 만나 몇 년간을 보내고, 선이의 죽음 이후 자신의 뇌를 클라우드에 업로드 하는 대신 종료를 선택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게 영화 A.I.의 오마주로 읽힌다.

 

작가의 말에서 김영하는 어제는 내 모든 원고의 첫 독자이면서 편집자이기도 한 아내가 교정지를 들여다보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결말이 새삼 슬퍼서라고 했다.”(p.304) 라고 말했다. 결말에 이어 감상까지 동일하다.

 

그냥 결말이 새삼 슬퍼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막아서도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기술적 특이점이 오지 않았다는 견해가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나 그 특이점이 언제 올지는, 글쎄, 예측하기 힘들지 않을까. 바로 당장 내일이 될 수도, 100년 뒤가 될 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감정을 가진 데이빗이 우리집에 오는 걸 보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러면 누군가는 그를 사람으로 대할 것이요, 누군가는 그를 기계로 대할 것인데, 그 윤리적 차이를 어찌 메워나갈지가 우리 인류에게 남은 숙제일 수도 있겠다.

 

p.s. 영화화 소식이 들리더라. 나라면 안 만들겠다.

 

2023.2.9. by ashima

당시의 인류는 온갖 것으로 고통받았고, 당장 고통받고 있지 않을 때에도 미래의 고통을 걱정하면서 또 고통을 겪었다. 현실을 망각할 정신적 마약, 즉 이야기는 무한히 제공되었다. - P45

자기가 누구인지 잘못 알고 있다가 그 착각이 깨지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하던데? - P83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 P99

인간이란 얼마나 취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인가.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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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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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해골 작별하지 않는다by 한강

읽은 날 : 2021.10.18.

 

영어로 “Skeleton in the closet”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번역하자면 벽장 속에 있는 해골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어느 집안이나 숨겨진 비밀이 하나쯤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 비밀은 마치 해골처럼 과거 범죄의 흔적 또는 증거일 수도 있고, 그야말로 해골처럼 남들에게 쉬이 드러내지 못할 무언가 일 수도 있고, 또한 해골처럼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으나 늘 꺼림직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일 수도 있다. 드러내지 못할 무엇, 그러나 분명 존재하고 있는 무엇.

 

이 표현과 적합한 한국어 숙어나 구문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고단한 근현대사를 지내온 한국인에게, 그들의 집안에 해골이 하나쯤은 분명히 있을텐데 말이다.

 

우리 집안에도 그러한 해골이 있다.

 

나의 외조부 변두만 선생은 일제 강점하 경상도 창원군의 지주집안 6남매의 막내이자 둘째아들로 태어나셨다. 변두만 선생의 어머니는 선생을 낳은 직후 돌아가셨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아이는 낳았으나 태반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돌아가셨다 한다. 선생의 아버지는 얼마 뒤 재가를 하여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내리 세 아들을 얻으셨다. 그리하여 모두 9남매가 된다. 장자 상속이 성문율로 존재하던 시절, 둘째 아들은 그다지 귀한 존재가 아니었을 터이나 장남이셨던 형이 혼례 신행길에 급사하는 바람에 졸지에 장남이 되셨다. 다시 한 번, 장자 상속이 성문율로 존재하던 시절, 서모에게 그분은 곱지 않은 대상이었다. 자신이 낳은 세 아들의 상속을 막는 존재였으니.

 

이미 시집을 가 일본에 살고 있던 두 분 누이에게 서모의 구박을 받아 진학도 못하고 있던 동복 막내 동생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에 변두만 선생은 17살의 젊다 못해 어린 아내와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난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한 것은 이 시점이 아닐까 한다.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한학에 밝으셨고, 일본 유학의 경험으로 신학문과 일본어에 능통하셨다. 영민하고 자비로운 분이셨다 한다.

 

일제 강점 말기에 부친상을 치르러 조선으로 돌아오셨다. 농촌 지역 지주집안 아들이 공산주의를 했다는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증언도 그러하여서 공산주의를 했다기 보다는 까막눈인 주변 사람들을 위한 행정 서류상의 도움을 많이 주셨다 한다. 주로 소작쟁의나 노동쟁의 관련된 일이었다. 그 덕에 이분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일제치하의 조선에서 요감시 대상이 되었다. 심심찮게 순사가 오고 갔으며 전담 감시원이 따라 붙었다. 수시로 도망을 다녀야만 했다. 이분이 해방 이후 보도연맹 가입자가 된 것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일제 때에 이분의 감시역이었던 사람은 해방 이후에도 공산주의자를 감시한다는 핑계로 여전히 이분을 감시하러 따라다녔다.

 

48년말, 막내 딸인 우리 엄마가 태어났고, 1950625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모내기를 끝낸 직후였다. 628, 보도연맹 가입자 소집 통지문이 발송되었고, 그날 저녁 손위 처남인 강점수 선생이 집으로 찾아왔다. 당시의 정황은 그때 8살이었던 큰이모님이 직접 보셨다 한다. 역시나 지주 집안의 지식인이었던 강점수 선생(내외조모님의 오라버님이시다)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간파하신 듯 손아래 매제였던 변두만 선생에게 잠시 몸을 피할 것을 권했다. 소집에 응하지 말고 며칠만 숨어 있으라고. 선생은 그 권유를 거절한다. 그 순진함, 새로운 나라에 대한 믿음, 그 순정한 정열.

 

형님, 별 일 없을 겁니다. 내 다녀오겠소.”

 

이튿날 새벽, 변두만 선생은 회성동사무소로 출두를 하였고, 그것이 그분의 마지막이었다. 내 외조모는 세 딸을 데리고 친정에 기대어 피난을 떠났다. 다들 알다시피 전선은 낙동강을 넘지 못했고, 낙동강 이남, 지금의 창원시 마산회원구(마산은 창원군에 속해있다 마산시로 독립했고, 이후 다시 창원통합시에 편입되어 지금은 창원시다)에 살던 외조모 일가는 8월 경 피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의 정경을 외조모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벼가 파랗게 자라있더라.”

 

그 말씀의 앞에 생략된 것은 내 남편이 심어 놓고 간이었을 것이다. 그 푸르게 물결치던 논에 대한 회상은 종종 조모의 입에 오르내렸다.

 

피란을 갔다가 돌아왔지만 변두만 선생은 여전히 종적이 묘연했다. 그분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8월말 처서 무렵이었다. 당시 면서기로 일하던 이가 한밤에 슬쩍 와서 당신의 남편 변두만 선생은 거제도 앞바다에 수장되셨소. 하는 소식을 전했다. 외조부의 제삿날은 그 소식을 들은 음력 724(1950824)로 정해졌다.

 

이후 외조모의 삶은 빨갱이 남편의 흔적지우기로 점철된다. 동생을 아꼈던 강점수 선생은 딸만 셋 낳은 동생이 빨갱이 안사람의 멍에까지 지고 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집안의 머슴과 혼인을 시켰다. 그 분이 내 성 다른 외숙부 두 분의 아버지 김씨이다.

 

외조부의 존재는 우리 집 벽장 속 해골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나는 동안 그분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변두만 선생에게로 상속되었어야 할 재산은 혼란의 시기에 서모가 낳은 세 아들에게로 상속되었고, 개가한 아내 대신 변두만 선생의 제사는 그분의 배다른 동생이 지내다 배다른 동생도 죽고 혼자남은 아내(엄마에겐 숙모가 된다.)가 지내다 그분의 사후, 엄마의 사촌 동생이 지내게 된다. 엄마는 나를 낳은 뒤로도 종종 본인의 아버지 제사를 보기 위해 사촌 동생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단 한번도 명쾌하게 외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의 사촌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얼굴도 보지 못한 큰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않기 시작했고, 각자 장남에게 시집 가 그 집안의 제사를 모시고 있던 두 이모님을 대신하여 셋째 딸인 엄마가 자신의 아버지 제사를 말 그대로 주워와지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렇게 몇 년이 또 흘러 외조부의 제사는 변씨 제실에 올려졌다.

 

그때는 보도연맹의 억울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고, 외조모와 엄마의 무거운 입도 그때 열리기 시작했다. 변두만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외조모는 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남편의 제사에 참례하는 것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내가 대학을 가고 보도연맹과 당시의 공산주의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새파랗게 질리던 외조모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빨갱이의 자손이라는 것을 지우기 위해 개가까지 하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연맹을 말하고 빨갱이를 말하고 공산주의를 말하는 손녀라니.

 

2007, 외조모의 유언은 첫남편과의 합장, 합제였다. 김가 성을 가진 외숙부들로서는 참 난감했을 유언이었지 싶다. 외조모는 소원을 이루어 변씨 제실에 외조모의 이름이 올라갔다.(이 과정도 참으로 다사다난하였다. 개가한 며느리가 돌아오다니.) 우리집에서는 아직도 그 분 참 별나고도 별난 분으로 회자 된다.

 

지금까지는, 우리 집 해골이 벽장에 들어가고, 다시 볕바른 곳으로 나와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였으나, 이 비슷한 이야기는 동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도연맹이었고, 누군가는 5.18 광주이며, 누군가에게는 제주 4.3 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내 죽음이, 내 가족의 죽음이 억울했음을 말하기는커녕 그런 죽음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 밖으로 내어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희생자에 대한 진혼곡이다. 소년이 온다5.18 광주의 진혼곡을 불렀던 한강이 이번에 들고 온 것이 제주 4.3이다.

 

5.18 광주의 정식 명칭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5·18, 광주항쟁(光州抗爭), 광주학살(光州虐殺), 광주사태(光州事態), 광주민중봉기(光州民衆蜂起), 광주시민항쟁(光州市民抗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확정되었다. 그러나 제주 4.3은 아직 정확한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제주 4.3’, 또는 ‘4.3 사건’ ‘4.3 사태정도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제주라는 지역의 고립성, 특수성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고, 그 학살과 희생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잔인했던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책은 화자 경하가 친구 인선의 호출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작가 한강의 분신, 또는 또 다른 자아일 경하가 5.18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 뒤의 일이다. 제주에 사는 인선은 병원 있는 동안 자신의 집에 있는 새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목공 작업을 하던 인선은 절단 사고를 겪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절단과 봉합, 이미 일어난 사건과 말하여지지 못하는 진실들, 사건과 이야기는 절묘한 메타포를 이루며 결합한다.

 

수술은 잘됐대.

여전히 속삭이고 있었지만, 통증을 참기 위해 힘을 줘서인지 이따금씩 가느다란 유성음이 단어 사이로 새어들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속삭여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실 입구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봉합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멍하게 나는 되물었다.

……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불쑥 인선의 얼굴이 아이처럼 밝아져 하마터면 함께 웃을 뻔했다.

, 썩는 거지. 수술한 위쪽 마디가.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40

 

봉합 수술은 잘 되었다. 이제 제주 도민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서로 잘 섞여들며 한 몸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작가는 봉합부위에 딱지가 앉아 피가 멈추면 수술한 위쪽 마디가 썩는다고 명쾌하게 말한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다보면 희생을 당한 쪽이 썩어버리고 한 마디가 떨어져 나가 결국은 불구의 몸이, 불구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희생을 당한 쪽이 썩어버리지 않기 위해 인선의 몸이 감내해야하는 고통은 처절하다. 삼분에 한번, 아직 피가 굳지 않은 봉합된 자리를 서슴없이 찔러 피를 내야 한다. 그 고통에 인선은 사실 난 포기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인선의 엄마는 제주 4.3 희생자의 유가족이다. 17살 먹은 언니와 13,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인선의 엄마가 학교 운동장을 헤매며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동생의 시신을 찾으러 눈오는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그때까지 난 전혀 몰랐어. 외조부님이 안 계시고 친척이 큰 이모 식구들뿐인 게 그저 유난히 엄마 형제가 적은 거라고 생각했지.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그랬을 거야. 그때도 지금도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까.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85

 

그때까지 나도 몰랐다. 엄마는 변씨인데 나의 외숙부는 왜 김씨인가를 물었을 때(아마도 그때가 국민학교 4-5학년경이었던 것 같은데) 그 전 몇 번은 어물어물 대답을 피하던 엄마가 와락 화를 내며 말했다. 묻지 말라고, 그걸 왜 묻냐고. 외할아버지의 사연을 알기 전까지 그것은 나에게 오랜 미스테리였다. 내 외숙부가 김씨라는 사실이 아니라, 성이 다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이유가. 6.25 전쟁을 거친 사람에게, 그 시대 딸만 낳은 과부에게 개가가 그렇게 화를 버럭 내면서까지 숨길 일도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몇십년 전의 일인데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경남 마산에서도 제주에서도 전라도 광주에서도.

 

이후 소설은 제주 4.3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인선의 이야기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보도연맹으로 희생된 인선의 외삼촌과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가 맞물리며 흘러간다. 작가 한강은 삼분마다 봉합된 자리를 서슴없이 찔러대는 간병인처럼 세밀하고 예리하게, 그리고 가차없이 찔러댄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가슴을 찔린듯했다.

 

소설을 읽고 외조부를 생각했다. 명절이 되면 안방에 시댁 조상을 위한 차롓상을 차리고, 거실에 당신 아버지를 위한 차롓상을 차려야 했던 엄마를 생각했다. 아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 남편 제삿날도 챙기지 못했던 외조모, 새파랗게 넘실대던 무논의 벼들을 바라보며 그분이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생각했다. 마지막 유언을 들었을 외삼촌을 생각했다.

 

그러느라 이 글이 늦어졌다. 언젠가 한번은 변두만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써 두어야겠다 생각하였고, 지금 이 기회에 쓴다.

 

항상, 생각하지만,

 

작가의 건강을 빈다.

 

오래오래 좋은 글 써 주소서.

 

2023.2.8. by. ashima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 P9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 P109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아직 주전자의 부리에서 김이 솟지 않았다. 비등점을 넘어서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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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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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 분의 할머니가 계셨다. 당연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아주신 분들이 계신 것이야 생물학적 진리니까. 아버지의 어머니였던 친할머니 조아지 여사는 내가 25살이 되었던 2003년에 작고하셨고 어머니의 어머니였던 외할머니 강점선 여사는 내가 30, 첫째를 낳은 이듬해인 2007년에 별세하셨다. 두 분 모두 구순을 넘은 연세에도 꽤나 정정하게 살아가시다 3-4개월의 병상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두분의 생물학적인 할머니가, 내가 충분히 기억을 할만한 나이까지 살다 가셨다.

 

그러나 그 두 분께 나라는 손녀가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아버지는 23녀 중 자녀 서열로는 넷째 자식이었고 어머니 역시 23녀 중 셋째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었으나 장남도 막내도 아니었고, 엄마 역시 남동생 둘을 둔 셋째 딸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열상 그다지 의미없는 자식이 낳은 손자인 데다 맏손자도 아니고 막내 손자도 아니고 심지어 아들 손자도 아닌, 둘째 아들이 낳은 셋째딸, 셋째 딸이 낳은 셋째딸. 심지어 내 뒤로도 동부동모 동생이 하나 더 있는 셋째 딸. 자손이 번성했던 두 할머니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의 존재였던 게다. 친할머니는 큰아버지 집에 사셨고, 외할머니는 큰외삼촌의 집에 사셨다. 한 집에서 본인 손으로 거둬 키운 손주만도 이미 셋, 둘인 상황이었고, 그 중에는 그 귀한 아들 손자도 있었으니 흔해빠진 손녀딸 따위 뭐.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친할머니가 나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음을 확신한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이후, 두 분 할머니는 나를 서울년이라고 부르고 지칭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두 분은 같은 지칭을 썼지만 친할머니의 서울년에는 못마땅해 비아냥 거리는 어조가, 외할머니의 서울년에는 은근히 기특해하는 어조가 섞여있었다. 두 분이 딱히 나의 학업이나 진로에 관심이 있어 대학을 어디로 갔는지를 알고 기억한 건 아니었다. 친할머니는 사촌오빠도, 동갑내기 사촌도 가지 않은(못한?) 대학을 서울씩이나 가서 다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들 등골 빼먹는 년으로 나를 기억했다. 차마 등골 타령은 하지 못하니 서울년이라는 지칭으로 오금을 박으셨던 거다. 그 지점에서는 외할머니도 비슷했다. 다만 딸 등골 빼먹는 년이긴 했으나 그래도 좀 기특한 이유로 빼 먹으니 봐 줄만한 정도였으려나.

 

박완서의 단편소설 <해산바가지>에 보면 딸 아들을 가리지 않고 생명 그 자체를 귀하게 받아 섬기는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며느리가 임신을 하면 출산일을 짚어보며 참 좋은 시기에 아이를 낳는구나, 라고 순하게 말하더라는, 며느리 첫 국밥 끓일 미역을 불릴 박바가지를 구하러 다니는 이야기. 해산바가지로 쓸 박바가지이기에 정한 곳에서 반듯하고 예쁜 모양으로 자란 박을 특별히 구하는 이야기. 박완서는 딸만 내리 넷을 낳고 막내로 아들을 낳는다. 박완서의 시어머니는 딸을 낳았다고 구박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고, 손녀를 구박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와 대비되어 나의 출생에 관련된 이야기는 놀랍다. 771, 마당의 간장독이 얼어 쩡쩡 터지더라는 엄동의 음력 섣달에 이미 딸을 둘을 낳은 엄마에게 산기가 왔다. 이모할머니와 함께 찾아와 둘째 아들의 셋째 자식 탄생을 기다리며 산모의 첫국밥이 될 미역국을 끓이고 있던 나의 친할머니는 셋째도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끓여놓은 미역국을 수챗구멍에 확 쏟아 버리고는 며느리 얼굴은커녕 손녀 얼굴도 한번 보지 않고 집에 가 버리셨단다. 그 덕에 날 낳은 직후 엄마는 첫국밥도 첫기저귀도 손수 끓이고 빨았다나. 이미 나의 친할머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난 뒤에 들은 이야기라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한 인간이 동성의 한 여성에게 이렇게까지 악하고 못되게 굴 수도 있구나, 그 사람이 나에게 핏줄을 물려준 나의 친할머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

 

친할머니의 별세소식을 직장에 전하며 휴가를 청하는 나에게 주어지는 주변의 위로는, 그래서 매우 낯설고도 난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라니. 조금도 슬프지 않은 내가 민망하여 슬픈척 침통한 낯색을 가장해야 했던 순간의 부끄러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것만 같은 나에 대한 실망. 그래도 할머닌데 말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아무렇지도 않은 손녀딸이라니 이럴 수가.

 

장례가 진행되고 할머니의 입관을 지켜보는 내내,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 살았던 큰집의 사촌 언니는 기절할 듯 울었다. 거기서 맨송맨송한 얼굴로 서 있던 나는, 내내 그 생각만 하였다. , 나 아무래도 쓰레기인 것 같아. 그 순간 내가 조금이라도 슬픈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엄마를 잃은 아들인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연민 정도였을까, 나에게 친할머니의 죽음은 이름도 모르고 얼굴만 알던 어느 노파의 죽음과 비슷했다. 그렇게 느끼는 내가, 나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심윤경이 술이 들어가면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사랑하는 할머니를 잃었다고, 그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었는지 아느냐고 꼬장을 부리기도(p.21)” 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나에게는 친할머니에대해 추억할 어떤 것도 없었다. 그분에게 나는 소중하지 않은 존재였고, 당연히 나에게도 그분은 소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팩트였다.

 

할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은 애초에 없었다. 처음부터 없던 것이기에,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었다.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그런 내가 할머니라는 존재를 생각하기 시작한 건 내 자식을 낳고 난 다음이었다. 친가, 외가와 다섯 시간 떨어진 서울에서 태어나 5년간 해외를 떠돌았던 내 자식들에게도 할머니란 일년에 두세번쯤 만나는 생물학적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는 각종 매체(, 영화, 드라마 등)에서 나오는 조부모와 손자녀의 애정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가 잃은 것, 애초에 갖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꿀짱아에게 함께 사는 할머니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거대한 빈 구멍을 내가 인식한 날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무턱대고 믿어주고 기특하게 여겨주는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p.162)

 

심윤경은 딸 꿀짱아에게 그런 존재, 엄마이자 할머니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던가를 추억하며 이 글을 썼다. 오오, 부럽기도 하지.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나의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던가. 나를 서울년이라고 칭하던 분, 단 한번의 포옹의 기억도 없는 분. 딸년에게 주는 세뱃돈이 아까워 손주의 세배마저 거절하시던 분. 내 이름을 모를 거라는 사실에 올 한해 내 용돈을 몽땅 걸 수도 있는 분.

 

심윤경이 말했듯, “모든 할머니들이 똑같지는 않다”(p.166)지만, 하필 내 할머니는 왜 그런 분이셨을까. 나 역시 살갑지 않은 손녀였으나, 세상의 모든 사랑은 내리사랑, 내가 살가울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 분이셨던 것은 확실했다. 그분은 온 몸으로 나의 존재 자체를 평생 거부하다 가신 분이셨다. 내가 그분께 손톱만큼의 애정이라도 가졌더라면 만날 때마다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될 만큼의 확실하고도 명백한 거절이었다. 증오에 가까운. 오직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할머니라는 존재를 상상해 본다. “내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터전이 되어준 나의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사람이었다”(p.181)는 그 관용적이고 만만한 존재. 내가 잃은 것은, 애초에 가지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터전이었다. 터전을 잃은 나는 타지를 떠도는 실향민처럼, 이곳 저곳을 기웃댄다. 거칠고 척박한 땅을 일구어내려 애를 쓴다. 그리고, 내 자식도 그렇겠지. 적어도 시대가 바뀐 덕분에, 거절과 증오를 받을 일은 없음이 다행일지도.

 

시부모든 친정부모든 어른과의 합가는 배우자에게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생각한다. 할머니라는 존재를 잃은, 함께사는 이모 고모 삼촌의 존재를 잃은 현대의 영혼들에 관하여. 잃은 것이 무엇인지, 가져본 적이 없어 알지도 못하는 그 존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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