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와 마녀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날 : 2024.11.10.

 

이 글은 박경리 선생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자 여성 월간지 여원19601년간 연재된 소설이다. 첫 번째 장편 소설은 <민주신보>라는 부산의 지역신문(이긴 하였으나 6.25때 부산이 피난수도 역할을 하며 1958년 당시에는 전국 규모의 신문이었다고.)에 연재되었고 두 번째 장편소설 표류도가 문학잡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

 

사실 첫 장편 애가를 읽고 두 번째 장편 표류도를 읽었을 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었다. “아니 선생님, 아무리 선생님이 박경리지만, 어라, 어떻게 1년 만에 글이 이렇게 좋아지세요? 세상에나 세상에나, 어떻게 이 두 작품이 같은 작가가 1년 상간에 쓴 글이라고 하겠어요, 대단하세요!” 그만큼 표류도가 좋았다. 표류도는 제2회 내성문학상(추리소설가 김내성을 기리기 위해 <경향신문>에서 만든 문학상. 1회는 정한숙이, 2회는 박경리가 받은 것으로 사라지고, 현재는 내성추리문학상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을 받을 만했다. 글치 문학상을 아무 작품에나 주겠느냐고.

 

그런데 세 번째 작품인 이 작품과 전작 표류도는 그 낙차가 너무 커서 어질어질하다. 애가를 쓰고, 표류도를 쓰시더니 다시 애가 시절로 돌아가신 건가 싶을 정도로. 인물들은 설익었고, 사건은 과장되었고, 배경과 유리되어 따로 놀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섬세하게 반영해주고 있던 표류도(책 출간을 위한 종이를 구하기 힘들 정도의 빈곤, 각종 브로커가 판을 치고, 뇌물이 일상화 되어있던 전쟁직후 혼란상을 잘 반영한 소설이다.)를 쓰셨던 양반이 이 소설에서는 왜이렇게까지 현실과 따로노나, 생각해 보니, , 발표 지면이 여성지다. 당시 소설은 신문연재, 문학잡지 연재, 여성지 연재가 각각 성격이 다 달랐다. 서열은 말하지 않겠다.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작품이 박완서 선생의 욕망의 응달이다. 막장스런 스토리에 추리소설을 어설프게 뒤섞은 이 작품은 여성동아1978-1979까지 1년간 연재되었고,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이야긴데 말이다, 세계사에서 처음 발간하는 박완서 전집에는 5번으로 포함이 된다. 실제 박완서의 장편 소설 발표 순서로 다섯 번째니까. 그런데 박완서는 죽기 전 자신의 전집 결정판을 다시 내기로 결정하면서 딱 한 작품, 욕망의 응달은 전집에서 빼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박완서 전집 세계사 결정판에는 이 책이 빠진다. 정말이지 박완서스러운 작품인 동시에 박완서스럽지 않은 작품이기는 했다. 박완서의 소설은 1. 전쟁경험 2. 도시중산층 소시민의 위선 3. 여성주의 이렇게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소설에 따라 발표 지면을 바꾸고 있다. 정확히는 발표 지면의 요구에 따른 작품을 썼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와 같은 작품은 <여성신문>에서 연재되었고, 도시 중산층의 위선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 휘청거리는 오후<동아일보>에 연재되는 식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여성잡지 여원에 연재된 소설이다. . 그렇구나, 싶다. 박경리의 발표 순서로 보면 세 번째 쓰여진 소설임에도 그간 각종 전집 출간 때 외면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마로니에 북스의 장편소설세트를 낼 때도 거의 마지막인 2019년에 초판을 찍었다. 그 이전엔 인디북이라는 출판사에서 소리소문없이 나오긴 했다만. 박완서 샘이 죽기 전 유언으로 욕망의 응달을 지워달라 하셨듯, 박경리 샘도 비슷한 유언을 하셨다한들 별로 신기하지 않은 그런 음. (그러나 다산북스에서도 또 나왔다.)

 

박경리 도장깨기를 하느라 힘들게 읽었다.

, 도장깨기 성실하게 하고 있다 자랑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딱히 권하고 싶지 않은.

 

2024.11.10.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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