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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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래도 박학다식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동서고금의 인문학적 지식에 능통하고 자신의 논리에 맞는 인용구를 능숙하게 끌어올 줄 알고(비록 그것이 곡학아세가 될 지라도.), 지식의 힘에서만 가능한 세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사람들.

미셸 트루니에는 (스스로 말하기를)졸라의 제자이고 실제로 가스통 바슐라르의 제자이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공쿠르의 종신회원이며 데뷰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수상한 뛰어난 소설가이고.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80대의 남자.

김훈이나 한강 처럼 스스로의 내면에 천착하며 그것에 침잠해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 영혼을 외부로 펼쳐 외부의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

이 책에서 트루니에는 EXtime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외면의 일기, 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일기는 어떤 사물에서 자신이 느끼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을 중심으로 기록하지만 이 책은 트루니에가 관찰한 모든 것-기상현상, 이웃, 책, 자연, 나무 등-에 대한 짤막짤막한 메모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핍진한 관찰력이 그대로 묻어나고 그 갈피갈피에 그 특유의 박학다식함이 살아 있는 책.

미셸 트루니에, 김화영, 최근 날 열광하게 만드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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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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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심윤경의 두번째 소설이다. 70년대 생이고 자연과학을 전공한 작가 치고는 놀라운 작가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제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녀의 문체는 섬세하고 미려하다. 그녀의 사유는 깊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 역시 또래 작가들에 비해 훨씬 넓다. 싸구려 감정놀음의 소설을 읽다가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종가집 종손으로 태어났지만 서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상룡을 '나'라는 화자로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한 인간의 내면 탐구에 성공하고 있다. 삶을 '가문'에 헌납한 할아버지와 '사랑'에 헌납한 아버지를 가진 나의 고뇌는 깊다. 나를 이렇게 고통스러운 서자로 만들어 버린 아버지를 인정할 수도 없고, 할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것은 벅차다. 할아버지는 무섭고 아버지는 싫다.

소설은, 가문에 천착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가문의 뿌리가 되는 10대조 조모의 편지를 해독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조모의 편지를 해독해 갈수록 할아버지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문이란 결국 가짜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바람에는 결코 부합하지 못할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데 집안까지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나에게 할아버지는 너를 종손으로 맞아 들인것이 잘못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가문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위대한 가문이란.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심어주는 것임과 동시에 나를 그 가문의 격식에 맞추어 살 수 밖에 없도록 억누르는 이중적 존재인 가문. 삶의 전체를 그 가문에 맡겨 가문과 나의 생사를 하나로 보는 할아버지는 속이 텅 빈 사람이다. 그 빈 속에 가문을 집어넣고 그 가문의 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가문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또한 고통일 것이요, 자신이 가진 것을 가문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것도 고통일 것이다.

의고체의 아름다운 문체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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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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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썼지만, 난 김형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 스타일이랄까 문체 같은 것은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고 그녀의 사유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음. 솔직하게 말해서 난 그녀가 글을 잘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글은 잘 쓰지만 어떤 소설적 재능이 넘치는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욱 정확하겠다.

그렇지만 그녀, 참 열심히 쓴다. 성실한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원래 머리가 좋아서 공부 잘하는 놈도 1등,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 잘하는 놈도 1등이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2004년 동인 문학상이 김영하의 『검은 꽃』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뭐 이건 당연한 거다.) 알기 전부터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도 동인 문학상 후보 작품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 둔 책을 늦게사 읽었다.

형식이나 문체, 시점이 새로운 소설을 '실험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분명 새로운 실험소설이다. 김형경은 나무, 바람, 박새, 청설모 등 자연을 화자로 선택하여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보는 실험소설을 써 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화두인 성과 사랑, 삶과 유토피아등에 대한 탐구를 자연물을 화두로 써 냈다는 점도 새롭고, 2중 구조도 흥미롭다. 각각 연인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연희와 세중)가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 두 남녀가 낯선 산장에서 세 남녀(남자, 사내,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자연물(즉 세 남녀를 지켜본)의 입을 빌어 진행되는 남자, 여자, 사내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단순한 액자식 구조라고 말을 할 수는 없겠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우리 전래 설화의 무릉도원 이야기와 비슷하다. 무릉도원 이야기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람이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복숭아 꽃잎을 따라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더니 무릉도원을 만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무릉도원에서 며칠을 살다 다시 속세로 내려왔더니 100년쯤의 세월이 흘러 그 남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 남자가 다시 그 무릉도원을 찾아 산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남자와 여자, 사내가 어울려 성과 생활을 나누며 살아갔던 그곳은 분명 유토피아다. 평화로운 곳. 그곳을 찾아갔던 연희와 세중이 그곳에서 내려왔을 때, 세상은 변함이 없었지만 연희와 세중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고,(사실 연희의 삶은 변했다.) 다시 연희가 그곳을 찾아 가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무릉도원 설화의 끝이 쓸쓸하듯 이 이야기의 끝도 쓸쓸하다.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찾아 헤메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끝내 유토피아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토피아는 스스로 만드는 거라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환상이고, 그 환상이 깨어졌을 때, 인간이 얼마나 참혹해 지는가에 대한 쓸쓸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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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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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매우, 매우 독특하다.

스토리 라인은 심플하다못해 심심하다. 곤충 채집을 하러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갔던 어느 남자가 그 모래사장을 둥그렇게 파고 들어간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집들 중의 하나에 감금당하여 모래를 퍼 내는 강제적 노역에 묶여 그 집에 사는 여자와 살아가는 이야기. 이게 끝이다.

이 스토리라인의 심플함이 내용의 엽기성으로 이 소설을 매우 독특한 소설로 바꾸어 놓는다. 모레를 파 낸다는 아무런 의미없-어보이-는 행위에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남자가 매달려야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그 일에 관해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끊임 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럼 강제적 노역을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 폭력이 따라야 할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는 폭력을 행하는 입장과 당하는 입장이 전혀 반대다.

과부가 된 여자가 혼자서 모래를 파 내고 있는 구덩이로 떨어지게 된 남자는, 과부와의 관계에 있어 언제나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 이 여자는 이 남자에게 끝도 없이 고분고분하며,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이해하지 못해 하는 만큼이나 이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한다. 그럼에도 그저 그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고, 참을성있게 설명하고,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모래가 서걱이듯 건조한 문체가 소설 전체와 맞물려 들어가면서 매우 독창적이고 우아한 소설 한 편을 만들어 낸다.

강추 품목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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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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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영화로까지 제작되면서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얻었던게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싶은데, 사 놓고 한참을 박아두었다가 며칠동안 가즈키의 소설 네편을 몰아서 읽었다.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원제 : 네이티브 스피커)』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일종의 애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민족이 이민 갔을 때와는 달리 한국인은 유별나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의식하고 사는데, 그 '의식'한다는 데서 오는 '다름'의 인식, 그 '다름'의 인식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쓸쓸함. 이런 것들은 해외동포 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에 놓여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창래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문인중의 하나에 속하고, 가즈키는 스스로 "한국계 일본인"이라 칭할만큼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지만. 박경리 식의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가 깔려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건 나의 착각일까.

그래서 이 산뜻한 고등학생들의 발랄한 러브스토리는 단순하게 가볍지 않다.

작가의 실화가 아닐까 싶을만큼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생동감 넘친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소설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연애 장면은 사실적이다. 만약 이게 픽션일 뿐이라면 이 작가, 정말 대단한거구. 그렇다면 존경할테다. 정말로. 그리고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해줄테다. 이 책을 메뉴얼 삼아서 따라가라고.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 남녀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이처럼 매력적으로 나와있는 책은 드문 법이니까 말이다.

가즈키는 소설적인 재능이 매우 넘친다. 그는 아주 길게 설명해야 할 말을 몇마디의 대사에 담아 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말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자친구 사쿠라이 츠바키(잘은 모르지만 정말 일본적인 이름이란다.)양과 헤어진 주인공 스기하라군은 고통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 낸다. "언젠가는 반드시 국경을 없애버리겠어."(p. 218)라고. 사실은 뭐, 여자친구에 대한 마음 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반. 그렇지만. 그 한마디에서 "난 국적 따위 신경쓰지 않아."라고 외치며 살아왔던 한 소년의 내면이 살짝 보이는 것이다. 아주 살짝. 그리고 그걸로 모든 것은 충분해졌다.

아참. 어머니의 존재가 매우 희미하고 아버지의 존재가 이토록 강렬한 것 또한, 한국 문학과는 다른 일본문학의 특징인 것 같다. 언젠가 했던 말이지만. 한국문학에서는 아버지가 부재하는 데, 일본 문학에서는 언제나 어머니가 부재(不在)다. 가즈키의 소설 네권이 모두 그렇다. 재미있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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