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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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다. 구성이 뛰어나게 잘 되었다든지(이인화), 독특한 문체의 아름다움 이라든지(김훈), 천재적인 발상이라든지(로저 젤라즈니,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런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각각의 소설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분명 소설의 본령은 서사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요소들을 벗어나 재미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 소설은 소설로서의 가장 큰 매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 가발다의 이 첫 장편소설은 매력적이다. 특별히 뛰어난 문체도 구성도- 실제 구성은 좀, 엉성한 편이다- 아닌 이 소설의 매력은 그 서사에서 나온다.

이 소설은 아내를 버리고 떠나는 남자와, ‘버림받은 아내’를 위로해 주는 ‘아내를 버리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다. 일종의 액자소설적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외형적 틀은 일단, 버림받은 아내인 나, 클로에의 이야기다. 남편 아드리앵은 새로운 여자와 바람이 나 딸 둘이 있는 클로에를 버린다.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 다는 사실을 알게”(p.42)된 클로에는 충격으로 멍해져 있고, 그녀를 잠시나마 쉬게 해 주기 위해 클로에의 시아버지인 피에르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시골집’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그 시골집에서 머무는 동안 클로에는 시어머니 쉬잔을 버리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 마틸다를 버려야 했던 시아버지 피에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설의 중심 서사는 피에르와 마틸다의 사랑이야기다. 그러니까 제목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서 ‘나’는 피에르이고, ‘그녀’는 마틸다인 셈이다.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클로에와 아내를 버리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버려야 했던 피에르는 처음, 전혀 반대의 위치에서 대치하게 되지만, 클로에는 시어머니 쉬잔과의 동일시에서 점점 벗어나 마틸다에게서 일치감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남편 아드리앵에게서 버림받은 일의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간다. 물론, 그 전까지 몹시 서먹하였던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됨은 물론.

작가 안나 가발다는 비교적 균형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를 버린 아드리앵의 손을 들어주지도, 가정을 지킨 피에르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그저, 그녀가 말하는 것은, 사랑의 방식에 관한 것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피에르의 입을 빌어 작가가 하고 있는 마지막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 고집스런 딸아이는 좀더 행복한 아빠랑 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행복의 요소가 빠지고 의무와 책임만이 남은 사랑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그런 형태로라도 사랑을 쟁취? 또는 지킨 피에르의 아내 쉬잔은 행복하였을까.

그런 면에서 안나 가발다가 클로에의 시선을 취한 것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었다. 버림 받은 것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을 화자로 삼음으로해서 피에르와 마틸다에게 가는 일방적인 동정여론을 차단했고, 그 차단을 통하여 균형잡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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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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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우울하고 감수성 짙은 소설을 기대했었다. 열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앞부분 1/3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저 그것만 가지고는 로맹 가리를 세계적 작가라고 칭하기에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우울하고 감수성 짙은, 그런 수식어에 로맹 가리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반전이라는. 첫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만으로는- 흠, 좀 놀라운 결말이군, 정도 였다가 두 번째 《어떤 휴머니스트》의 반전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다. 알라딘의 서평에서는 "오 헨리 혹은 서머셋 몸 풍의 반전"에 강한 작가라는 말을 해 놓기는 했었지만 그것이 이런 것을 뜻할 줄이야.

로맹 가리의 소설집을 읽다보면, 단순한 반전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래, 이게 원래의 인생이지, 인생은 이런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 단편마다 들어있는 마지막의 반전에서는 '헉!'하고 놀라기보다는 '피식-' 하고 웃게 되거나 낮게 한숨을 쉬게 된다. 로맹 가리풍의 반전의 묘미는 그런데 있다. 그러니까, 뒷통수를 치게 되는 반전이라기보다는, 설마, 설마, 설마, 하다가 역시나 그랬군, 하는 반전이랄까. 또한 그것이 이 소설집의 가치를 조금쯤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음, 이 작가는 이런 식의 반전을 써먹는 작가였지, 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그 다음 번의 반전부터는 별로 놀라게 되지 않는다. 반전이 반전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고 할까. 한데 모이는 것에 따르는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소설집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로맹 가리를 통째로 만나는 기쁨"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나로써는, 또는 로맹 가리 본인으로써는 글쎄, 라고 고개를 내젓게 되는 초이스였다. 내가 편집자라면 이런식으로는 책을 만들지 않았을지도. 그래도 역시나 《류트》의 반전은 놀라웠다. 《가짜》의 반전이, 너무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던 것이어서 맥빠졌던 것에 반해.

삶에 대한 로맹 가리의 시선은 차갑고 회의적이다. 그에게 비치는 세상의 색깔은 흐린 잿빛, 안개 낀 바다의 흐릿함.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회의를 로맹 가리는 담담하고도 냉철한 문장으로 엮어 나간다. 소설의 분위기도, 스토리도, 문체마저도 회색. 그러므로 자살로 생의 결말을 맞는 그의 생은 오히려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괜찮은,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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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왕후 김문희 - 상
김지수 지음 / 삼진기획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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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을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 덕에 다시 꺼내 읽었다.  

널널하게 읽을 수 있어 좋은 책.

김문희는 김유신 장군의 막내 누이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딸이며 아버지 김서현은 금관가야의 왕족이었다. 둘은 결혼해서 김유신, 김흠순, 김정희, 김보희, 김문희- 다섯 자식을 두었는데 김문희가 막내다.

재미있는 것은.

김유신의 첫사랑은 잘 알려진 바, 천관이라는 기생이다. 그 천관에게서 김유신은 아들을 얻는다. 김유신의 둘째 부인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여자고, 그녀에게서 아들하나 딸하나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김유신의 세번째 부인은 김문희의 막내 딸이자 김유신의 조카딸인 지소공주(지소부인)인데 둘이 결혼할때 김유신은 50대, 지소부인은 10대였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유치진의 희곡으로 유명해진 원술랑이다.

김춘추는 본래 미실궁주의 손녀딸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가 죽고 문희와 결혼을 했다. 자손을 불리기 위하여 첩을 두었는데 그 첩이 문희의 언니 보희였다. 보희는 아들 둘을 낳았다.

뭐.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공주의 동생이 선화공주였다. 서동요의 그 선화공주. ("선화공주님은 남 그스지 얼워두고 맛둥바올 밤에 몰 안고 가다.) 하기야. 선화공주도 진평왕의 딸이고 선덕여왕도 진평왕의 딸이고 보면. 뭐.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언니의 아들이니까 조카인 셈인데 김춘추의 아버지는 진평왕의 의붓 형제였다.

문희에겐 딸이 둘 있었는데 첫째가 요석공주 아유타였고 둘째가 지소공주였는데, 지소공주는 김유신에게 시집갔고 요석공주는 원효와 정을 통해 설총을 낳은 그 요석공주였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근친상간 연대기를 본 기분이다. 따로 따로 알고 있던 설화들이 한데 묶여들어가서 재미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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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2-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딸이 아니라 조카일 거예요. 진흥왕 동생의 딸로 알고 있는데...
진평왕과 춘추 아버지가 의붓형제예요? 사촌이 아니라요?

아시마 2009-12-03 09:11   좋아요 0 | URL
신라의 가계도는, 음, 사촌하고 결혼하기도하고, 이모랑도 결혼하고, 조카하고 결혼하고... 막 이러다보니까 사촌이자 의붓형제고... 이런것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없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기록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도있고...
여튼 이 책에서는 그렇게 써 놨더군요. ^^ 사서가 아닌 소설이니까.
 
商道 - 전5권 세트 상도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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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소설가 '나'는 바퀴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자동차 업계의 제왕 김기섭 회장과 10년지기의 친분을 나누어 오던 사이다. 그러던 중 1999년 세밑, 김기섭회장은 신차 '이카로스'를 타고 독일의 아우토반을 질주하다 교통사고로 절명하게 되고, 나는 김기섭 회장의 수행비서였던 한기철을 만나 그의 유품을 접하게 된다.

그의 유품이었던 지갑속의 숨겨진 공간에는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말이 쓰여진 쪽지가 들어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김기섭 회장이 평생 사숙했던 조선말의 의주상인 임상옥의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임상옥은 3대째 의주상인인 임봉핵의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난다. 아버지 임봉핵은 평생 역관이 되고자 노력하였으나 되지 못하고 엄청난 빚을 남기고 죽는다. 그러자 임상옥은 아비에게 빚을 준 홍득주의 집에 들어가 머슴을 살기 시작한다. 임상옥의 상재를 알아본 홍득주는 데리고 있은지 3년만에 임상옥을 연경으로 홍삼장사를 하러 보내고, 그곳의 기루에서 임상옥은 절세미녀 장미령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임상옥은 자신의 돈 은자 250냥 외에 공금 250냥을 횡령하여 그녀의 몸을 사 그녀를 자유몸으로 해 준다.

의주로 돌아온 임상옥은 자신의 돈은 물론 공금까지 횡령하여 여자의 몸을 산 것이 홍득주의 미움을 받게 되어 의주의 상계에서 파문당하고 만다. (딸만 있었던 홍득주는 임상옥을 자신의 데릴사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미워하게 된다. 허나 결국 홍득주는 임상옥의 장인이 된다.) 2년간 장똘뱅이로 떠돌던 임상옥은 두 동생이 돌림병으로 죽는 것을 목격하고 세상에 뜻을 잃어 출가하고 만다.

다시 3년 뒤, 박종일이라는 개성 상인이 임상옥을 찾아오게 되고, 임상옥은 그와 함께 다시 중국 연경으로 넘어가 장미령을 만난다. 임상옥의 은덕으로 몸을 구한 장미령은 광록대부 주병성의 아들을 낳아 그의 정처가 되어 은덕을 갚고자 임상옥에게 5,000냥의 거금을 내어주고 연경의 상권을 보장해 준다.

이어, 다시 개성과 의주지역의 상인이 된 임상옥은 당시 조선의 권력자였던 박종경의 힘을 빌어 인삼독점권을 가지게 되어 조선 제일의 거부가 된다. 그 후, 그는 연경 상인들의 인삼 불매 운동을 스승 석숭스님의 첫번째 경구 "死"로 헤쳐나가고, 홍경래가 자신의 정변에 그를 끌어 들이려 하는 것을 두번째 경구 "鼎"으로 헤쳐나간다. 또한 세번째, 평생 사랑했던 여인 송이와의 염정과 부에의 집착이 가져온 세번째 위기를 "계영배(가득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의 지혜로 헤쳐나간다.

또한, 추사 김정희와 평생의 지기가 되어 교분을 나누며, 김정희는 세번의 위기때마다 임상옥이 석숭스님의 경구를 풀이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마지막 "계영배"의 지혜를 깨우쳤을때, 임상옥은 56세였고, 모든 사업을 동지 박종일에게 물려준 채, 은거한다. 송이와도 이별한다.

77세가 되었을 때, 송골매가 자신의 닭을 채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쌓아온 부를 흐트러트려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 임상옥은 부채를 모두 탕감해주고, 창고에 쌓였던 재물을 모두 나누어 준 뒤, 재물을 국가에 귀속시킨다. 그해 여름, 천주교도였던 송이가 순교하고, 그해 가을 임상옥도 죽는다.

소설가 "나"가 임상옥의 모든 인생을 추적한 뒤, 김기섭회장의 기념관인 "여수기념관"이 문을 열게 된다.

 


소설가 최인호의 글솜씨가 물이 올랐다는 느낌이다. 워낙에 문장력이 탄탄하여 신문연재소설을 써도 살아남는 작가이기는 하지만-물론, 상도는 신문 연재소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인상을 조금쯤 찌푸리게 했다-이 소설은 특히 더 그러하다. 현재의 소설가 "나"와 김기섭 회장의 이야기를 스타트로 하여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한 것도 특이하고 부분부분 등장하는 사기를 비롯한 유교경전과 불경등의 구절, 유명한 유학자들의 일화등을 통하여 최인호의 박식함을 엿보았다.

MBC TV에서 만든 드라마 [상도]를 아직 한편도 보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싶다. 연기자의 얼굴이 소설위로 겹쳐 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소설을 읽은 것이 먼저여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 물론 임상옥 역할을 이재룡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소설을 읽는동안 한번도 이재룡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좋았다. 사실 소설 외의 다른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흡입력이 꽤나 대단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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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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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습관이랄지- 사고 방식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호에 관한 문제다. 음식, 이라든가하는 형이하학적인 것에서, 음악이나 문학같은 형이상학적인 것까지, 나의 그러한 습관은 늘 이어진다.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좋으냐, 싫으냐 구분을 짓게된다.

편협한 부분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도 끝도 없이 편협한지라 한번 싫다고 마음 먹은 것은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또한 귀가 얇은 나는, 내가 싫다고 젖혀놓은 것을 누가-특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걱정이 중첩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젖혀놓았던 것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내가 혹시 놓친것이 있지나 않나 꼼꼼히 살피면서.

나에게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그런 작가였다. 처음으로 읽었던 신경숙의 작품 "외딴방",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대학 동기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풍금이 있던 자리", 어느해였던가 히트를 쳤기에 읽었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그러한 소설들을 거쳐 다가간 "깊은 슬픔".  깊은 슬픔을 읽고나서 나는 신경숙을 내 마음속에서 젖혀 놓았다.

별로 재미도 없고 취향에 맞지 않아도 꿋꿋히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나는(실제로, 일종의 네임 벨류랄까, 그런 것을 가지게 되는 작가들은 최소한 "읽을 수 있는"글을 써낸다는 것만은 사실이므로 그것을 별로 능력이라고 칭할만한 것도 못되지만) 그 당시까지 나온 신경숙의 작품 거의 전부를 읽었던 셈이었으니 나의 판단이 섣부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경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은, 웹상에서 만난 누군가였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으면서, 신경숙에 대해 조금쯤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보통, 소설 한편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끽해야 3-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나는 누워서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는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리 습관을 들였던 탓인지도 모른다- 마음먹고 집중하면 두어시간만에도 한권을 읽어치운다. 아주 재미없는 소설이거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소설, 새로운 사상이나 설정때문에 천천히 곱씹어야 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보통의 경우 그러하다.

나를 바이올렛 앞으로 끌어들인 것은 내가 몹시도 사랑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안내문 때문이었다.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중략)---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첫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마지막 문장은 바이올렛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식물이 주는 위안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이 얼마만한 위안인지도 알고있다. 그러한 식물이 주는 위안과 같은 것을 주는 소설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바이올렛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합해 다섯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꼼꼼히 읽었으니 대충 따지면 그쯤되겠다.(참고로, 나는 잠들기 전에는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예 밤을 샐 마음으로 잡지 않는다면. 보통 소설을 잡으면 밤을 새게된다.) 신경숙류의 문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좀 더 스피디하고, 명확한 문체가 좋다. 그러나 맛난 음식을 먹듯 꼼꼼 아껴 읽었다.

재미의 면에서 이야기 하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에 가까운 배경의 설정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원동력처럼 느껴졌을 정도라면.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 이어 "바이올렛"에도 등장한 서울시 종로구.

이곳은 내가 살았던 곳이다. 평창동, 세검정, 광화문, 종로, 제일은행 본점과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 삼성병원. 삼청공원, 총리공관. 이런곳들. 나 역시 늘상 이곳들을 헤메며 산다. 나는 이 지역의 고즈넉함과 고색창연함을 사랑하고, 강남과는 다른 이곳의 공기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곳을, 이 작가 역시 이만큼이나 사랑하는 구나 싶어, 신선했다.

글을 읽으며, 아아. 이 작가는 참 열심히 쓰는 구나. 싶었다. 오래 오래 생각하고 꼼꼼히 조사해서 참 열심히 쓰는구나. 자신의 주변을 참 많이 사랑하는 구나. 싶었다.

여전히,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사랑하지는 않으나-

오산이, 라는 그녀, 잘려버린 혀를 가진 그녀, 늘 관음의 대상이 되는 그녀.

인간이 이렇게까지 외로워할 수가 있을까 싶어, 읽는 내내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마는, 어찌 이리도 외로워 하나 싶어.

그러므로 결말 역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외로움에 관하여, 끝도 없이 생각하게 만들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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