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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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매우, 매우 독특하다.

스토리 라인은 심플하다못해 심심하다. 곤충 채집을 하러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갔던 어느 남자가 그 모래사장을 둥그렇게 파고 들어간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집들 중의 하나에 감금당하여 모래를 퍼 내는 강제적 노역에 묶여 그 집에 사는 여자와 살아가는 이야기. 이게 끝이다.

이 스토리라인의 심플함이 내용의 엽기성으로 이 소설을 매우 독특한 소설로 바꾸어 놓는다. 모레를 파 낸다는 아무런 의미없-어보이-는 행위에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남자가 매달려야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그 일에 관해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끊임 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럼 강제적 노역을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 폭력이 따라야 할 것 같은데 이 소설에서는 폭력을 행하는 입장과 당하는 입장이 전혀 반대다.

과부가 된 여자가 혼자서 모래를 파 내고 있는 구덩이로 떨어지게 된 남자는, 과부와의 관계에 있어 언제나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 이 여자는 이 남자에게 끝도 없이 고분고분하며,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이해하지 못해 하는 만큼이나 이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한다. 그럼에도 그저 그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고, 참을성있게 설명하고,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모래가 서걱이듯 건조한 문체가 소설 전체와 맞물려 들어가면서 매우 독창적이고 우아한 소설 한 편을 만들어 낸다.

강추 품목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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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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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영화로까지 제작되면서 국내에서 한참 인기를 얻었던게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싶은데, 사 놓고 한참을 박아두었다가 며칠동안 가즈키의 소설 네편을 몰아서 읽었다.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원제 : 네이티브 스피커)』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일종의 애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민족이 이민 갔을 때와는 달리 한국인은 유별나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의식하고 사는데, 그 '의식'한다는 데서 오는 '다름'의 인식, 그 '다름'의 인식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쓸쓸함. 이런 것들은 해외동포 문학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에 놓여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창래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문인중의 하나에 속하고, 가즈키는 스스로 "한국계 일본인"이라 칭할만큼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지만. 박경리 식의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가 깔려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건 나의 착각일까.

그래서 이 산뜻한 고등학생들의 발랄한 러브스토리는 단순하게 가볍지 않다.

작가의 실화가 아닐까 싶을만큼 이 소설의 이야기들은 생동감 넘친다.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이 소설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연애 장면은 사실적이다. 만약 이게 픽션일 뿐이라면 이 작가, 정말 대단한거구. 그렇다면 존경할테다. 정말로. 그리고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해줄테다. 이 책을 메뉴얼 삼아서 따라가라고.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 남녀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이처럼 매력적으로 나와있는 책은 드문 법이니까 말이다.

가즈키는 소설적인 재능이 매우 넘친다. 그는 아주 길게 설명해야 할 말을 몇마디의 대사에 담아 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말이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자친구 사쿠라이 츠바키(잘은 모르지만 정말 일본적인 이름이란다.)양과 헤어진 주인공 스기하라군은 고통을 단 한마디로 표현해 낸다. "언젠가는 반드시 국경을 없애버리겠어."(p. 218)라고. 사실은 뭐, 여자친구에 대한 마음 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반. 그렇지만. 그 한마디에서 "난 국적 따위 신경쓰지 않아."라고 외치며 살아왔던 한 소년의 내면이 살짝 보이는 것이다. 아주 살짝. 그리고 그걸로 모든 것은 충분해졌다.

아참. 어머니의 존재가 매우 희미하고 아버지의 존재가 이토록 강렬한 것 또한, 한국 문학과는 다른 일본문학의 특징인 것 같다. 언젠가 했던 말이지만. 한국문학에서는 아버지가 부재하는 데, 일본 문학에서는 언제나 어머니가 부재(不在)다. 가즈키의 소설 네권이 모두 그렇다. 재미있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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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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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과 더블 리뷰.  

자전거 여행 2는 김훈의 세번째 기행 산문집이다. 첫번째 기행 산문집의 제목은 『풍경과 상처』다. 그 글에서 김훈은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 1994, 서문)라고 말한다. 하여 김훈은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같은 책)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김훈의 모든 기행 산문은 마침내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迷妄)속에서 한 줄 한 줄"(같은 책) 씌어진 것이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기행 산문집에서 김훈은 사진작가 이강빈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산하를 누비며 조선 선비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가망없는 희망과 (아마도 소설 『칼의 노래』를 쓰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충무공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에게 풍경은 풍경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의 내면에 담긴 숱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은 캔버스였을 것이다. 그의 기행문에서는 염전에서 소금을 캐는(말리는? 만드는?) 노동자의 이야기와 (어쩌면 황희 정승의 일화와도 닮아보이는) 소를 키워 농사짓는 농부, 김용택 시인의 마암분교 아이들을 만난다. 그에게 풍경은, 아름다운 산세나 맑고 깨끗한 물이 아닌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상처로 옹이진 사람들의 이야기.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다. 그는 풍경을 바라보며 "맑고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곽재구, 『포구기행』, 열림원, 2002, p89)라고 말한다. 그에게 풍경은 "서울살이에 지치고 지쳤을 때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을 찾아가 창문을 다 열어 젖히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고 나면 다시 서울로 회귀할 힘이 생긴다"(같은 책, p.95)는 그런 것이다. 그의 기행문에도 김훈의 기행문에서처럼 갯벌에서 조개를 잡고, 소리를 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이 나오고 조선시대 기생 월섬과 제주도의 이중섭이 나오지만 김훈의 사람들과 다르다. 김훈의 사람들이 김훈의 풍경을 완성하는 풍경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곽재구의 사람들은 곽재구가 보고 있는 풍경속에 살아가는, 풍경과는 따로이 떨어진 존재들이다.

하여 김훈의 풍경이 김훈만의 캔버스가 된다면, 그래서 김훈의 기행문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이야기가 된다면 곽재구의 풍경은 완성된 풍경이다. 그래서 곽재구의 기행문은 그림에 대한 감상문이 된다.

두 사람의 여행지는 우연히도 겹치는 곳이 많다. 같은 염전과, 같은 산과, 같은 바다를 보아도 한 사람은 '상처'를 보고 한 사람은 '큰 기쁨'을 본다.

하여, 모든 풍경은 아름답고, 모든 글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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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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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을 했었다는, 노동운동을 했었다는 알 수 없는 근거에서 나오는 이상한 으스댐을 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그녀의 초기 소설들은 나를 몹시 짜증나게 했다. 게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류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설익고 유치한 페미니즘은, 그 소설을 읽었을 때 고작 고2였던 나를 질리게 만들었었다. 그야말로, 아유, 잘난척은. 잘난 것도 하나 없는 게. 라고 중얼거리게 했달까. 나에게 공지영은 싸구려였다.

그녀가 역시나 싸구려에 불과했던 『착한 여자』이후 더이상의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도 아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러고 보면 난 또 이렇게 싫어하면서도 그녀의 소설은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음. 라면에는 라면의 맛이 있는 법이고, 난 라면을 좋아하지만, 라면이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이 책을 읽은 건, 김훈의 책에서 이 책의 부분을 발췌해 놓은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고아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안아주는 이야기. 보모가, 그 아이들을 안아 주지 말라고 말리는 그 이야기를 읽었던 탓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애원을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을 죽여달라고.

어쩔수 없이. 인정해야 할까보다.
그녀. 글 참 잘 쓴다.
누군가의 글쓰는 재능을 인정하며 고까워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에잇 짜증나지만, 너 글 참 잘쓴다, 라고 인정한다.

끝내, 라면도 맛은 있지. 라고 사족을 붙이고 마는. 나의 인색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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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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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광고가 알라딘에 떴을 때, 나는 아주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눈을 반짝거렸다. '섹스'라는 어감만으로도 모자라서 '미들'의 섹스라니! 게다가 카피는 더욱 기가 막혔다. 양성인간이 나오는 '미들 섹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니 뭔가 아주 우아하고 품격높으면서도 감각높은 에로티시즘의 문학을 기대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나중에 역자 후기에서 역자가 말했던 "'미들 섹스'라는 제목과 양성인간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함정"에 나 역시 풍덩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기묘한 느낌에 빠졌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그리고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보았던 기억들이 기묘하게 얽혀들면서, 어쩌면 현대의 미국이 사랑하는 몇가지는 이 소설에 녹아들어있는 앞서 나열한 몇가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퍼 리의 소설은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퓰리처상 수상작이고, 샐린저의 소설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중의 한편임이 분명할 테니까.

이 소설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는 어떤 상황들을 한편으론 객관화 시키고 한편으로는 주관화 시켜 자신의 내면을 말하고 있음에도 남의 말 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샐린저와 닮았다. 칼리오페(또는 칼)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택하고 있지만 실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칼리오페를 만들어 낸 변종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있게한 주변의 환경들이다. 이 소설은 양성인간이 태어나게 만드는 유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소설이라해도 괜찮다.

엄격한 족외혼의 전통이 동성동본 불혼이라는 관습으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칼리오페의 존재는 엄청난 충격이다. 형제간에 태어난 자녀로도 모자라서 그 혈족(육촌)들이 다시 결합한다는 과정은 충격을 넘어서는, 아니, 충격이 과다하다보니 이제는 충격이랄 것 조차 없는 무엇인가가 된다. 게다가 서술자의 그 담담함이라니. 내 상식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해 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황당함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이 담담해져 버린달까.

할아버지 세대의 그리스 이민 초기의 사회상과 영화 언터처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던 금주법과 비밀 술집등 미국 개척기의 이야기, 포드 자동차와 디트로이트의 풍경,『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보여주던 고급학교의 어떤 모습과 그 사회와 문화, 당시 미국 10대들의 생활들이 잘 묘사되어 있는 책이다.

읽다보면 내내, 현대의 미국은 이런 것을 사랑하는(또는 그리워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랑하는 것에 상을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이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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