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습관이랄지- 사고 방식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호에 관한 문제다. 음식, 이라든가하는 형이하학적인 것에서, 음악이나 문학같은 형이상학적인 것까지, 나의 그러한 습관은 늘 이어진다.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좋으냐, 싫으냐 구분을 짓게된다.

편협한 부분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는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도 끝도 없이 편협한지라 한번 싫다고 마음 먹은 것은 두번다시 돌아보지 않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또한 귀가 얇은 나는, 내가 싫다고 젖혀놓은 것을 누가-특히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걱정이 중첩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젖혀놓았던 것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내가 혹시 놓친것이 있지나 않나 꼼꼼히 살피면서.

나에게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그런 작가였다. 처음으로 읽었던 신경숙의 작품 "외딴방",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대학 동기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풍금이 있던 자리", 어느해였던가 히트를 쳤기에 읽었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그러한 소설들을 거쳐 다가간 "깊은 슬픔".  깊은 슬픔을 읽고나서 나는 신경숙을 내 마음속에서 젖혀 놓았다.

별로 재미도 없고 취향에 맞지 않아도 꿋꿋히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나는(실제로, 일종의 네임 벨류랄까, 그런 것을 가지게 되는 작가들은 최소한 "읽을 수 있는"글을 써낸다는 것만은 사실이므로 그것을 별로 능력이라고 칭할만한 것도 못되지만) 그 당시까지 나온 신경숙의 작품 거의 전부를 읽었던 셈이었으니 나의 판단이 섣부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경숙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것은, 웹상에서 만난 누군가였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으면서, 신경숙에 대해 조금쯤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보통, 소설 한편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끽해야 3-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나는 누워서 책을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책상에 앉아서는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리 습관을 들였던 탓인지도 모른다- 마음먹고 집중하면 두어시간만에도 한권을 읽어치운다. 아주 재미없는 소설이거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소설, 새로운 사상이나 설정때문에 천천히 곱씹어야 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보통의 경우 그러하다.

나를 바이올렛 앞으로 끌어들인 것은 내가 몹시도 사랑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의 안내문 때문이었다.

"신경숙의 소설에선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거나 도중에서 독자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나 잔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중략)--- 나에게 신경숙 문학의 매력은 식물이 주는 위안과도 같다."


첫 문장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마지막 문장은 바이올렛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식물이 주는 위안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이 얼마만한 위안인지도 알고있다. 그러한 식물이 주는 위안과 같은 것을 주는 소설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바이올렛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모두 합해 다섯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꼼꼼히 읽었으니 대충 따지면 그쯤되겠다.(참고로, 나는 잠들기 전에는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예 밤을 샐 마음으로 잡지 않는다면. 보통 소설을 잡으면 밤을 새게된다.) 신경숙류의 문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좀 더 스피디하고, 명확한 문체가 좋다. 그러나 맛난 음식을 먹듯 꼼꼼 아껴 읽었다.

재미의 면에서 이야기 하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에 가까운 배경의 설정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원동력처럼 느껴졌을 정도라면.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 이어 "바이올렛"에도 등장한 서울시 종로구.

이곳은 내가 살았던 곳이다. 평창동, 세검정, 광화문, 종로, 제일은행 본점과 교보문고, 세종문화회관, 삼성병원. 삼청공원, 총리공관. 이런곳들. 나 역시 늘상 이곳들을 헤메며 산다. 나는 이 지역의 고즈넉함과 고색창연함을 사랑하고, 강남과는 다른 이곳의 공기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곳을, 이 작가 역시 이만큼이나 사랑하는 구나 싶어, 신선했다.

글을 읽으며, 아아. 이 작가는 참 열심히 쓰는 구나. 싶었다. 오래 오래 생각하고 꼼꼼히 조사해서 참 열심히 쓰는구나. 자신의 주변을 참 많이 사랑하는 구나. 싶었다.

여전히,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사랑하지는 않으나-

오산이, 라는 그녀, 잘려버린 혀를 가진 그녀, 늘 관음의 대상이 되는 그녀.

인간이 이렇게까지 외로워할 수가 있을까 싶어, 읽는 내내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마는, 어찌 이리도 외로워 하나 싶어.

그러므로 결말 역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외로움에 관하여, 끝도 없이 생각하게 만들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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