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엔 그저, 우울하고 감수성 짙은 소설을 기대했었다. 열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단편집의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앞부분 1/3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저 그것만 가지고는 로맹 가리를 세계적 작가라고 칭하기에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우울하고 감수성 짙은, 그런 수식어에 로맹 가리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반전이라는. 첫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만으로는- 흠, 좀 놀라운 결말이군, 정도 였다가 두 번째 《어떤 휴머니스트》의 반전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다. 알라딘의 서평에서는 "오 헨리 혹은 서머셋 몸 풍의 반전"에 강한 작가라는 말을 해 놓기는 했었지만 그것이 이런 것을 뜻할 줄이야.

로맹 가리의 소설집을 읽다보면, 단순한 반전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래, 이게 원래의 인생이지, 인생은 이런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 단편마다 들어있는 마지막의 반전에서는 '헉!'하고 놀라기보다는 '피식-' 하고 웃게 되거나 낮게 한숨을 쉬게 된다. 로맹 가리풍의 반전의 묘미는 그런데 있다. 그러니까, 뒷통수를 치게 되는 반전이라기보다는, 설마, 설마, 설마, 하다가 역시나 그랬군, 하는 반전이랄까. 또한 그것이 이 소설집의 가치를 조금쯤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음, 이 작가는 이런 식의 반전을 써먹는 작가였지, 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그 다음 번의 반전부터는 별로 놀라게 되지 않는다. 반전이 반전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고 할까. 한데 모이는 것에 따르는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소설집이다. 소설가 김인숙은 "로맹 가리를 통째로 만나는 기쁨"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나로써는, 또는 로맹 가리 본인으로써는 글쎄, 라고 고개를 내젓게 되는 초이스였다. 내가 편집자라면 이런식으로는 책을 만들지 않았을지도. 그래도 역시나 《류트》의 반전은 놀라웠다. 《가짜》의 반전이, 너무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던 것이어서 맥빠졌던 것에 반해.

삶에 대한 로맹 가리의 시선은 차갑고 회의적이다. 그에게 비치는 세상의 색깔은 흐린 잿빛, 안개 낀 바다의 흐릿함. 그런 것들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회의를 로맹 가리는 담담하고도 냉철한 문장으로 엮어 나간다. 소설의 분위기도, 스토리도, 문체마저도 회색. 그러므로 자살로 생의 결말을 맞는 그의 생은 오히려 당연해 보이는 것이다.

괜찮은,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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