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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번째 노래는 스무살.
처음 음반을 들었을 땐, 그리 빼어난 곡도 아니고 (오히려 약간 촌스럽기까지), 그리 기억에 남는 목소리도 아니어서 대강 넘어갔던 곡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이장혁을 보곤 몸이 굳어버리는 줄 았았다.
온통 시꺼멓던 작은 라이브클럽에 큰 기타를 안고 웅크려 앉아 있던 이장혁은,
첫입을 떼는 순간부터 무시무시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공기의 흐름이 멈춰진 듯한 음악.
첫곡이 끝났을 땐 목이 뻣뻣하게 아파올 지경이었다. 고개를 세운채 너무 열심히 들어서.  
눈을 깜빡이면 한 순간을 놓치는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부릅뜨고 있었다.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 공연은 처음.

공연으로 듣는 것보다 울림 좋은 스피커로 정제된 음악 듣는 걸 훨씬 좋아한다.
그치만, 이장혁은 예외.
돌아와 다시 들으니 역시 음반으로 듣는 건 그저 그렇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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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을 하룻동안 쥐고 있으면서 내내 손이 저릿저릿했다. 활자를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처럼 눈이 아릿한 일인지 처음 알았네. 소설 속 죽음이라거나 살인에 대해 무덤덤한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도, 아, 이건 아슬아슬하게 임계점을 건드리고 있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라는 빨간 테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애들 자율학습할 때 읽었는데, 애들이 자꾸 물어보는 통에 식은땀 좀 흘렸다.

그냥 잔혹한 이야기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렇게 뻔뻔하게 즐기듯 끔찍한 이야긴 참 힘들다. 그러나 그래도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건, 이런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10년도 전 책을) 새삼스레 출판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열심히 따라가, 결국 나도 허걱 하고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아연해졌던 머리가 좀 식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라고. 서술트릭, 그래서 어쨌다고.

서술트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완전 속아넘어 갔다는 아쉬움 섞인 짜증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서술트릭을 쓰는 사람 입장에선,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막힌 게임을 해보겠다는 심산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장르소설의 테두리 안에선 충분히 매력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두뇌게임같은 이런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독자층도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이건 취향의 문제이니 가타부타 뭐라 보탤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맥락은 잘 지켜주란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아직도 주인공이 왜 네크로필리아, 이상성애자가 됐는지 공감할 수 없다. 아, 얼추 얼개는 보여주었으니 의도는 알겠다. 마더컴플렉스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거야 너무 뻔한 설정이지 않나. 문제는 거기에 어떤 맥락적 살을 붙여 구체화시키느냐인데, 그게 부족하다보니 쉽사리 공감되지 않는다. 이해와 공감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을...
트릭도 중요하지만, 트릭만으로 미스터리 소설을 완성되지 않는다. 왜냐. 미스터리도 중요하지만 소설도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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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가을날은 이런 느닷없는 음악도 제법 잘 어울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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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도코노의 아이들이 돌아왔다. 어디선가에서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살아가겠다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범상치 않은 능력 만큼이나 범상치 않았던 역사와 삶의 무게는 그들을 여기저기 파이고 다치게 했다. 그들은 도코노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온전할 수 없었다. 인어공주처럼 그들도 그들의 능력과 무언가는 바꿔버린 것일까. 진심으로 그들이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를 기도했지만, <민들레 공책>과 <엔드 게임>에서 연이어 만난 그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민들레 공책>의 첫 장은 아련한 옛 시절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어린 시절의 꿈빛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사토코 아가씨. 믿음직한 마을의 어르신 마키무라가의 당주. 악동이지만 애틋했던 히로타카 님.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 넘치던 그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식구가 나타난다...  라.
의아스럽게도 이야기하는 사람은 도코노 일족인 히로타 가족이 아닌 미네코라는 꼬마 아가씨이다. 히로타 가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테지. 그러나 실은 도코노 일족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 입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살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 몸으로 기록하고 담아낼 뿐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불안한 시대, 안전하지 않은 삶이다. 말도 안되는 대의 명분으로 힘 없는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던 시대.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증오와 원한만이 깊어져 자기 삶마저 망쳐 버리던 시대. 아귀같은 시대에서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시대.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붙잡을 풀 한 포기 찾지 못하고 떠밀려 가는 사람들. 그들이 주인공이다. 침대켠에서 책을 읽다가 스러져 가는 사토코를 보면서 기어이는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던 건, 비단 사토코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정처없이 끌려가버린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쌍해서였다. 이 모든 상황이 그렇게 끝맺을 수 밖에 없었음을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이 측은하고 또 측은하여 통곡을 했다.
"이 나라는 내일도 계속되는 걸까요. 이제부터는 새로운, 훌륭한 나라가 되는 걸까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터였던 나라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미쓰히코를 만나고 싶어 못 배기겠습니다. 그때 미쓰히코가 저에게 했던 질문을 이번에는 그에게 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이제부터 이 나라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절망감을 어찌할까. 그리고 책 너머에서 숙명처럼 이 절망감을 온전하게 몸에 다 담아내야 했던 하루타 일가를 어찌할까. 그들의 서랍에 이 인생들을 담아내는 동안 솜털까지 파르르 떨리며 절망스럽지 않았을까.

전쟁 같던 시대를 살아간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가 <민들레 공책>이었다면, <엔드 게임>은 삶 자체가 전쟁이던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뒤집히지 않기 위해선 '그것'들을 뒤집어야 할 뿐이다. '그것'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사력을 다해 뒤집히지 않기 위해 뒤집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오셀로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흑과 백의 말 중 어느 하나일 테고, 같은 편으로 주르륵 둘러싸면 휘리릭 하고 뒤집혀 버리는 게임처럼 언젠가는 모두 하나의 색깔이 될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뒤집혀 다른 색깔의 말이 되어 버리는 거라고.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이것은 오셀로 게임이 아니다. 늘 쫓겨다니는 고통의 삶은 그들에게서 게임의 방법과 규칙을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건 그저 뒤집는다는 행위 뿐. 그 색깔이 흑이든 백이든 상관없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계속해서 뒤집고 뒤집고 뒤집는다. 오셀로 게임이라는 것도 모두 다 허상. 삶의 의미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의 마지막 도착지.
모든 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또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도코노 일족의 운명이라면, 그것도 희망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

밝게 시작했던 <민들레 공책>의 이야기는 진한 서글픔을 남기고 끝났다. 시작부터 무기질적이고 건조했던 <엔드 게임>은 '끝을 위한 게임'처럼 축축하기 그지 없었다. 저어기 멀리 다루마 산에서 함께 만날 도코노 족을 상상했던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장미빛 꿈일 뿐이었다고 비웃는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삶은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비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믿고 싶다. 그들의 다리 쭉 펴고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만나 작은 축제를 벌일 날이 올 거라고. 흐믓하게 서있는 두루미 선생 앞에서 미사키가 피리를 불면 모두 흥겨워 웃고마는 그런 축제 말이다.
그들의 약속대로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살아갈 날이 올 거라고. 그렇게 도코노 일족은 계속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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