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은 책을 하룻동안 쥐고 있으면서 내내 손이 저릿저릿했다. 활자를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처럼 눈이 아릿한 일인지 처음 알았네. 소설 속 죽음이라거나 살인에 대해 무덤덤한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도, 아, 이건 아슬아슬하게 임계점을 건드리고 있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라는 빨간 테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애들 자율학습할 때 읽었는데, 애들이 자꾸 물어보는 통에 식은땀 좀 흘렸다.
그냥 잔혹한 이야기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이렇게 뻔뻔하게 즐기듯 끔찍한 이야긴 참 힘들다. 그러나 그래도 이 책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건, 이런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10년도 전 책을) 새삼스레 출판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끝까지 열심히 따라가, 결국 나도 허걱 하고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아연해졌던 머리가 좀 식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쩌라고. 서술트릭, 그래서 어쨌다고.
서술트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완전 속아넘어 갔다는 아쉬움 섞인 짜증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서술트릭을 쓰는 사람 입장에선,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막힌 게임을 해보겠다는 심산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장르소설의 테두리 안에선 충분히 매력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 두뇌게임같은 이런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독자층도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이건 취향의 문제이니 가타부타 뭐라 보탤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맥락은 잘 지켜주란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아직도 주인공이 왜 네크로필리아, 이상성애자가 됐는지 공감할 수 없다. 아, 얼추 얼개는 보여주었으니 의도는 알겠다. 마더컴플렉스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거야 너무 뻔한 설정이지 않나. 문제는 거기에 어떤 맥락적 살을 붙여 구체화시키느냐인데, 그게 부족하다보니 쉽사리 공감되지 않는다. 이해와 공감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을...
트릭도 중요하지만, 트릭만으로 미스터리 소설을 완성되지 않는다. 왜냐. 미스터리도 중요하지만 소설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