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남자, 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그러면서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버리질 못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선배 작가를 조소하면서도 어느새 자신이 모습이 그와 닮아 있음을 너무나 냉철하게 깨닫고 있다. 차라리 단순하게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정하고 살든지. 여기 한발 저기 한발, 그렇다고 선한 척 옳은 척 하는 것도 아니면서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는 거. 싫다.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진짜 인간적인 걸. 그렇게 후회하고 또 실수하며 다시 후회하고 다시 실수하는 것을. 그러니 그에게 이 인생의 비밀스런 사건들이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사체가 아니라 사진을 찍은 사람이므로, <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속 사진들을 쳐다보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보이겠지. 그와 똑같이 실수하고 후회하는 한 인간이.
요네하라 마리의 경쾌하고 간결한 문장은 호흡이 무척 좋다. 시원하면서도 가볍지 않아 에세이에 딱 어울린다. 인간을 한 인간으로 규정짓는 많은 테두리와 경계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러시아의 일본인은 러시아적일까 일본적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공간적일까. 그럼 우린 어디까지 그들을 이해하고 어디부터는 이해할 수 없을까. 한국에도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사람들이 한국이 아닌 공간에서 비슷하게 묶여지는 왜일까. 그런데 왜 우린 여기에선 이렇게 다를까.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 일반론만 경계한다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추천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