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나와 다시 일을 시작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을 시간이 좀더 생기고 있다. ^^
그간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다시 책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써야겠다.
처음 읽는 김애란은, 좋았다. 단편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일하는 짬짬이 보기에는 단편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뭔가 명확하게 구분지으려는 듯이, 나의 세대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작은 '방'에서 무던히도 벗어나고 싶어했던 이십대의 내가 떠올라 쓴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이미 모두 지난 일이라는 안도감이 더 강했다.
삶의 지향점으로 보였던 서울, 하지만 언제나 낯선 그곳에 대한 그녀의 글이 참 좋았다.
가령 이런 것.
노선표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 위로 종착역까지는 녹색 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 불이 켜졌다. 도시의 이름을 가진 점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 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 말로 된 성좌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어제 막 끝낸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두둑한 두께만큼이나, 강렬했다. 그 두꺼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탄할만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정말 이런 범죄들이 있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많은 불륜이 있는 걸까, 이렇게 욕망 때문에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는 일들이 많은 걸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가장 큰 즐거움은, (아, 즐겁다고 말하긴 좀 그런가??) 해리 홀레 라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알콜중독자에, 지독히도 외로우며, 너무나 가까운 죽음들 틈에서 피를 토하며 살 길을 찾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어디 한두명이겠냐마는. 그래도 역시 그들의 존재가 질리지 않는 것은, 아니, 오히려 살이 에도록 안타깝고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너무나 살고 싶어한다는 것.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때문이었다.
잠든 요나스의 얼굴을 보며 해리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순간, 나는 그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해리 홀레의 이야기도 기다려 보련다.
아,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는다.
아. 하는 탄식이 붙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나는 감히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마주할 말이 지금으로서는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
게다가 지금 서경식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 담담하게.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겠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는 그런 죽음들에 대해서. 아. 이런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