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영원히 밤이었으면 좋겠다. 월요일 아침 같은 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초등학생 같은 투정이지만, 정말 그랬음 좋겠다.

 

아침부터 일이 있어 은행에 다녀왔는데, 분주하게 은행은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띵동하는 소리가 그렇게 생경할 수 없었다. 저기 저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속품들처럼 정해진 방향으로 의심없이 흘러가는 듯 했다.

내 앞의 공기만 멈춘 것 같았지만, 52번 손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나도 의심없이 스르륵 앞으로 나갔다. 싫.었.다.

차를 몰고 직장으로 돌아오니, 지난 주 내내 골치를 썩혔던 보험회사와의 민원 문제가 잘 접수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기저기서 또 띵동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로 했는데,

권순관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깊은 밤이죠--'

'이밤은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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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에 듣기는 뭐하다만, 그래도 쏜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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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잔뜩 기다리고 있는 월요일 아침.

차근차근 하나씩 내딛으면 어느새 해결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 그 첫발 내딛기가 싫으네.

알면서도 싫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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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레지스탕스 - 야만의 시대와 맞선 근대 지식인의 비밀결사와 결전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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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달성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자유.

- 김산 (8)

 

그렇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유였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고 불렀고, 그들의 활동을 민족해방운동이라 부르며 국사 시간에, 교과서로, 수업으로 배우고 익혔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독립운동을 배워왔건만, 그들의 애국과 그들의 희생과 그들의 열망을 가리려는 자들이 있다. 자신들의 매국과 자신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비열함을 숨기기 위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레지스탕스'라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열찬 인생을 더욱 부각시키고, 비루한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제목이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을.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를 가르치면서 내가 수업 이면으로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그들의 고민과 노력과 희생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그들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번민하는 평범한 인생이었다는 것. 그 무수한 번민과 고민의 인생이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이라는 것.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치열하고 명랑하게 저항했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민하고 방황하며 실수하고 넘어졌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있다.

예컨대, 4장 의열단의 이야기에는,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며 제비까지 뽑았던 사람, 한번 만나면 모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카리스마의 사나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친일 경찰,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독립운동가가 된 밀정, 작전 중임을 알면서도 공적을 가로채려 작전을 무산시킨 지방 경찰, 밀정의 존재를 부인해야 하는 중앙 경찰,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는 데 힘썼던 일본 변호사 등등 다양한 인생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도 다양한 인간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저마다 다른 이상을 꿈꾸며 저마다 다른 고민을 했던 셈이다. 

7장 조국광복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민생단 사건이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 아프게 그려졌던 것처럼, 각 장의 모든 이야기가 모두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독립의 큰 그림을 그렸던 신민회, 순진한 정도로 열망에 넘쳤던 대한 광복회, 일제의 교육 아래 자란 새로운 운동의 씨앗 성진회.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넘기는 손가락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은, 그들 인생의 아픈 결들이 손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글쓰기를 꿈꾸는 남편의 첫 결과물이다. 방을 거대한 벌집처럼 만들어버린 자료들 사이에, 구부정하게 앉아 작은 고민과 결정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던 남편의 둥그런 등과 같은 책. 소년처럼 눈을 빛내며 들려주던 이야기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아파하던 탄식이 페이지마다 묻어있다. 우리 함께 역사를 공부하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를 행복해하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리뷰이되 리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이런 옛글들을 찾아내며 매우 감동하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또한 감동하곤 했다.

 

오늘 동지를 만주로 전송하노니

의를 행할 칼 가는 곳 가을 물에 밝게 그 마음을 비치도다.

뭇 정성 합친 곳에 능히 대업을 이루리

서로 이겨 만날 때 반드시 큰 외침 있으리라.

- 김한종의 전별시.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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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3-05-2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 축하드립니다. 이런 좋은 책은 널리 홍보해야 하는데 말이죠~~^^

애쉬 2013-05-22 15: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쑥스러워 하지 말고 제가 더 홍보를 해야 하는데, 참,, ^^;
좋은 책이니, 스스로 제 갈 길을...
 

직장에 나와 다시 일을 시작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을 시간이 좀더 생기고 있다. ^^

그간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다시 책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써야겠다.

 

처음 읽는 김애란은, 좋았다. 단편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일하는 짬짬이 보기에는 단편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뭔가 명확하게 구분지으려는 듯이, 나의 세대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작은 '방'에서 무던히도 벗어나고 싶어했던 이십대의 내가 떠올라 쓴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이미 모두 지난 일이라는 안도감이 더 강했다.

삶의 지향점으로 보였던 서울, 하지만 언제나 낯선 그곳에 대한 그녀의 글이 참 좋았다.

가령 이런 것.

노선표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 위로 종착역까지는 녹색 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 불이 켜졌다. 도시의 이름을 가진 점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 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 말로 된 성좌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땅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 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어제 막 끝낸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두둑한 두께만큼이나, 강렬했다. 그 두꺼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탄할만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정말 이런 범죄들이 있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많은 불륜이 있는 걸까, 이렇게 욕망 때문에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는 일들이 많은 걸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가장 큰 즐거움은, (아, 즐겁다고 말하긴 좀 그런가??) 해리 홀레 라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알콜중독자에, 지독히도 외로우며, 너무나 가까운 죽음들 틈에서 피를 토하며 살 길을 찾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어디 한두명이겠냐마는. 그래도 역시 그들의 존재가 질리지 않는 것은, 아니, 오히려 살이 에도록 안타깝고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너무나 살고 싶어한다는 것.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때문이었다.

잠든 요나스의 얼굴을 보며 해리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순간, 나는 그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해리 홀레의 이야기도 기다려 보련다.

 

아,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는다.

아. 하는 탄식이 붙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나는 감히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마주할 말이 지금으로서는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

게다가 지금 서경식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 담담하게.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겠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는 그런 죽음들에 대해서. 아. 이런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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