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레지스탕스 - 야만의 시대와 맞선 근대 지식인의 비밀결사와 결전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록 달성하려는 방법은 달랐지만, 모든 조선인들은 오로지 두 가지를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자유.

- 김산 (8)

 

그렇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유였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고 불렀고, 그들의 활동을 민족해방운동이라 부르며 국사 시간에, 교과서로, 수업으로 배우고 익혔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독립운동을 배워왔건만, 그들의 애국과 그들의 희생과 그들의 열망을 가리려는 자들이 있다. 자신들의 매국과 자신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비열함을 숨기기 위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레지스탕스'라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국의 레지스탕스'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열찬 인생을 더욱 부각시키고, 비루한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제목이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을.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를 가르치면서 내가 수업 이면으로 꼭 가르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그들의 고민과 노력과 희생이 바탕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그들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번민하는 평범한 인생이었다는 것. 그 무수한 번민과 고민의 인생이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이라는 것.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치열하고 명랑하게 저항했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고민하고 방황하며 실수하고 넘어졌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있다.

예컨대, 4장 의열단의 이야기에는, 먼저 목숨을 내놓겠다며 제비까지 뽑았던 사람, 한번 만나면 모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카리스마의 사나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친일 경찰,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독립운동가가 된 밀정, 작전 중임을 알면서도 공적을 가로채려 작전을 무산시킨 지방 경찰, 밀정의 존재를 부인해야 하는 중앙 경찰,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는 데 힘썼던 일본 변호사 등등 다양한 인생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도 다양한 인간들이 저마다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저마다 다른 이상을 꿈꾸며 저마다 다른 고민을 했던 셈이다. 

7장 조국광복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민생단 사건이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에서 아프게 그려졌던 것처럼, 각 장의 모든 이야기가 모두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독립의 큰 그림을 그렸던 신민회, 순진한 정도로 열망에 넘쳤던 대한 광복회, 일제의 교육 아래 자란 새로운 운동의 씨앗 성진회.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넘기는 손가락이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것은, 그들 인생의 아픈 결들이 손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적인 역사 글쓰기를 꿈꾸는 남편의 첫 결과물이다. 방을 거대한 벌집처럼 만들어버린 자료들 사이에, 구부정하게 앉아 작은 고민과 결정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던 남편의 둥그런 등과 같은 책. 소년처럼 눈을 빛내며 들려주던 이야기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아파하던 탄식이 페이지마다 묻어있다. 우리 함께 역사를 공부하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를 행복해하던 순간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리뷰이되 리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은 이런 옛글들을 찾아내며 매우 감동하곤 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또한 감동하곤 했다.

 

오늘 동지를 만주로 전송하노니

의를 행할 칼 가는 곳 가을 물에 밝게 그 마음을 비치도다.

뭇 정성 합친 곳에 능히 대업을 이루리

서로 이겨 만날 때 반드시 큰 외침 있으리라.

- 김한종의 전별시. (6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큐리 2013-05-2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 축하드립니다. 이런 좋은 책은 널리 홍보해야 하는데 말이죠~~^^

애쉬 2013-05-22 15: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쑥스러워 하지 말고 제가 더 홍보를 해야 하는데, 참,, ^^;
좋은 책이니, 스스로 제 갈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