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에이미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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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법에 걸리는 위험한 일을 생업으로 하다보면, ‘귀를 의심하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게 되다’ 같은 관용어에는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게 된다. 범죄라는 외줄타기를 할 때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신의 오감밖에 없다. 그러나 이 건에 관한 한 내 귀의 감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19)

그는 학부모회에 나오라는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는데, 나는 이 책을 보는 내내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술술 흘러가는 이야기들의 물결 속에서 혼자 이따금 멈춰 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곤 책장을 덮고 책등에 써있는 작가 이름을 확인했다. 그 이름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미야베 미유키였다. 어째서 이 이름이 이사카 코타로나 오쿠다 히데오가 아닌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장으로 돌아왔다가 이내 다시 책장을 덮고 작가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미심쩍음을 해소할 길이 없어 이 글을 먼저 쓴다. 그래서 이글은 독후감이 아니라 독중감이다.

“아버지는 우유 같은 전직 변호사야.”
“무슨 뜻”
“썩어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야.” (156)


이런 대화를 <인생은 훔친 여자(원제:화차)>나 <이유> 같은 작품에서 어떻게 찾아보겠냔 말이다. 흔히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그녀가 이런 글을 천연덕스럽게 쓸 수 있다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다. 물론 그간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과는 완연히 다른 판타지 소설을 여러번 쓰기도 했다지만, 이건 장르의 차이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야베 월드의 구축은 필연적인 구석이 있다고 하겠다. 글의 소재와 분위기가 이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의 세계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더 많은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어야 한다. 더 많이 놀라고 더 많이 감동할 수 있도록. 다행히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본격적인 미야베 월드의 첫 포문으로 <마술을 속삭인다>를 10월 중에 낸다고 하니, 격려의 정을 가지고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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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진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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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헌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5
존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서 나오게 된 건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좋은 책 한권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마음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긴 하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이라는 스릴러 ‘소설’ 전문 시리즈의 하나라는 것.
물론 모중석 스릴러 클럽이 소설만을 대상으로 삼는다고 천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간의 행보로 나는 당연히 이 책이 ‘픽션’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논픽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미스터리 장르에 관한 한 읽기 전까지는 사전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에 너무 철저했었던 건지 멍청하도록 눈치가 없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정말로 몰랐다. 그래서 책의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모든 놀라움의 원인은 이 책에 나오는 온갖 무서운 사건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 ‘논픽션’의 힘이란 놀라운 것이었다. 허구라는 안도감을 가로챘고, 책장을 덮거나 TV를 꺼버리면 쉽게 도망갈 수 있던 도피처를 부셔 버렸다. 나는 내가 이렇게 논픽션에 취약한 지 몰랐다. 그동안 거의 매일 사람이 죽는 이야기를 읽어왔는데도 그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독서행태라는 걸 몰랐다.
강간과 고문, 살인, 시체 훼손 등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범죄들을 먼 나라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머릿속으로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사건들은 의외로 많더라. 더욱 나를 두렵게 했던 건, 존 더글라스의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들어맞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죄가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얘기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 점점 더 많은 범죄가 ‘낯선 사람’에 의해 혹은 ‘낯선 사람’을 상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건의 경우 특별한 범행 동기가 없으며 그 결과 명확하거나 ‘논리적’인 동기를 찾아낼 수가 없다. (35)

이 구절을 읽을 때의 오싹함은 그 어떤 호러 소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나는 더욱 이 책과 거리를 두려 했다. 일종의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논픽션’이지만 ‘픽션’처럼 읽어야 했다. 실존인물 존 더글라스는 종종 <미스터리 극장 에지>의 프로파일러 시마 형사나 <크리미널 마인드>의 등장인물들로 대체되곤 했다. 그래야 덜 끔찍하고 덜 슬플 것 같았다. 특히 17세 샤리 스미스의 마지막 편지를 읽을 때에는 절대로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라면 그녀가 그토록 부르짖던 신은 존재하지 말아야 했다.
이렇게 거리를 두며 읽는 데에는 이 책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다섯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중석의 이전 책들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보려 했고, 특히나 덱스터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 잠시 ‘논픽션’이라는 것 잊을 수 있을까 하고.

존 더글라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파일링 기법이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수사기법임을 설파했지만 때로 그것은 너무나 심령술 같아 보였다. 프로파일링 기법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100% 이상 공감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수사를 지원해주는 부서 혹은 수사관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끔찍하고 흉악한 범죄가 더욱 늘어난 후일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마지막으로 안심할 수 있는 건, 존 더글라스가 수십년의 범죄수사 끝에 내렸던 결론을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율을 낮추는 지름길은 국민 모두가 그들의 가정, 친구, 친지 사이에 범죄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고 저항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이것이 미국보다 범죄율이 낮은 나라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이다. 내가 볼 때 이러한 풀뿌리 해결 방안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지속적이다. 범죄는 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에 도덕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54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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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2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애쉬 2006-10-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며칠 지났는데도 계속 생각나요. 논픽션의 힘인가 봐요.
 

날이 쌀쌀해지니, 자꾸 이런 노래만 떠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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