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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2 - 완결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메이코는 스스로를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24살의 그녀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정확히 알고 그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한다면,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어른을 구분한다. 자고로 어른들이란 ‘아무렴 어떠냐’의 덩어리다(13) 라거나 젠장, 어른들은 더러워(101)하면서. 그건 다네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앞길이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무엇이 옳은지 말할 수 없는 나날들. 그 속에서 언젠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희뿌옇게 떠다닐 뿐이다.

나는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른이라는 자각을 할 때는 명절 때 정도. 부모님 용돈 챙기고 동생들 용돈 챙기고, 우리집이며 시댁이며 여기저기 인사 다니고 할 때에는 아~ 어른노릇은 어려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
스무살 파릇파릇한 젊은이도 아니고 나름 안정적인 직업도 가진 삼십대의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메이코의 말이, 다네다의 말이 모두 내 얘기 같았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우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만히 둘러보면 어른이 아니고 싶어하는 사람들 참 많다. 어느 정도의 피터팬 콤플렉스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사회생활과는 맞지 않는 인간이야(16) 하면서 모두들 살아간다. 아, 물론 혀를 내두를만큼 사회생활에 적응 잘하고 똑똑하게 이재를 잘 살피며 사는 사람 있는 건 사실이다. 재테크니 펀드니 하면서 알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얘기하면서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는 걸 보면 ‘아이같다’ 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도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땐 스무살이 되면 그럴 줄 알았다. 몸 어딘가에 어른이 되는 스위치가 붙어있기라도(2권,15) 할 줄 알았다. 인생의 골목길에 가로등이 짠~하고 밝혀져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환하게 알 수 있게 되고, 자신감있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말할 수 있게 되는지 알았다. 스무살이 한참 지나고도 그럴 기미가 조금도 없길래 서른이 되면 그런가보다 했다. 결혼도 했고 사회인도 되었으니 빼도박도 못하고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불확실하고 여전히 자신없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척하고 자신있는 척하고 모든 걸 아는 척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진다는 거, 그런 걸 내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거, 그 뿐.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살아가다보니, 요즘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조금씩 옅어지고 있어 기쁘다. 어른은 이렇고 이렇고 이런 거야 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니, 조금은 덜 불안하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지만 설레는 순간들을 조금씩 만들어가며 그렇게 나이들고 있다.

메이코도 그럴 게다. 그녀는 또다시 도쿄의 평범한 OL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난 사회생활과 맞지 않는 인간이야’를 다시 외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녀는 설레는 순간들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알았으니, 반짝이는 눈빛들이 어떤 빛인지 알았으니, 더 이상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치며 살지는 않겠지.

덧붙임) 놀랍도록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80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사려깊은 시선. 게다가 남자 작가.
디테일 하면 <사랑의 카운슬러>의 강유미 만한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호~ 강유미 이상이다.

(그림 출처 : 쇼가구칸小学館 영선데이 http://www.youngsun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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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팬으로서 내가 겪는 가장 큰 딜레마는 트릭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트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추리소설을 '추리'하지 않으며 읽기 때문이다.
내가 추리소설을 위시한 미스터리 소설과 SF, 환상소설 등 이른바 장르소설이라 불리는 소설군을 좋아하는 것은,
장르적 요소들로 짜여진 거대한 체계에 내던져진 인간들이 고민하고 상상하며 방황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선 쉽게 잊고 살던 것들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비일상적 경험을 통해 새삼 바라보게 된다 는 설정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선과 악에 대해, 우연과 필연에 대해, 평범과 비범에 대해, 사랑과 증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장르적 특징에 기대는 것은 나름대로 손쉬운 방법이니까.

그런데, 장르 소설들의 장르적 요소라는 것은 문학 속에서, 인간 속에서 용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격과 특징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 그 요소들 자체가 어떤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구성되는 순간 그 구성되어진 인과관계와 동의상황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걷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장르적 특징들에 천착하는 장르소설들이 출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러한 점에 끌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장르소설과 순수소설 간의 경계가 그다지 의미있지 않다고 보는 나로서는 장르적 특징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소설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그 중에서도 추리소설의 트릭은 좀 유별나게 경계하는 편.
트릭을 위한 트릭, 그거 참 별로다.

물론, 추리소설에선 트릭이나 일정한 설정이 소설 구상 단계의 첫걸음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첫걸음일 뿐이며, 그 트릭을 어떻게 구현해내느냐, 어떻게 살을 잘 붙혀서 인간적인 숨을 쉬게 하느냐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슷한 의미에서 '반전'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도 상당히 크다...)
가끔은 '이런 건 예상 못하겠지?', '이렇게 허를 찌를 줄은 몰랐을 거야', ' 모두들 속아넘어 가겠지' 하며 킥킥 거리고 있을 모습만 잔뜩 떠오르는 소설들이 있다. 작가의 예상대로 깜빡 속아넘어가 대단하다며 감탄하게 되는 경우라면 대성공이겠지만, 간혹은 짜증날 때가 있기도 한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계속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고 방황해주었던 그 모든 문제들이 뒤에 밝혀질 깜짝 트릭을 받쳐주기 위한 위장이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기라고 하면, 좀 화나지..
그러니 대단한 트릭이나 깜짝놀랄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라면 세심하게 신경써 주시길. 속았다는 느낌에서 끝나면 또 모르지만, 사기당했다는 허망함이 들면 큰일이니까.

<미륵의 손바닥>은 어떤 경우였느냐 하면... 좀 짜증난 경우다. 이 책이 종종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비교되곤 하는데, 그래도 그 책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갔을 인물 설정의 문제에 허점을 찔러놓고 나머지 사건 진행 상황은 정직하게 그렸다. 하지만 <미륵의 손바닥>은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사건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생략했다. 수상한 신흥종교쪽으로 관심을 몰아가는 건 좋았지만,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보이는 주인공들의 활동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쏙쏙 지워버린 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지 수긍할 수 없는 반칙.

사실, 아직까지 화가 다 안 풀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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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고 싶다.

이제 13일 남았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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