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군, 831일째.
책읽는 루나.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도 따라 들을 줄 알아서, 혼자서도 한 페이지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끈기있게 끝까지 이야기를 다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내용이 긴 책들은 나이에 맞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집에다 쟁여두고 있었는데,
아이는 화려한 색감과 각종 사물들만으로도 즐겁게 책을 본다.
요즘 루나군이 보고 있는 책들은,
1. 안나 클라라 티돌름, <두드려 보아요>
색색으로 나오는 문들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아주 좋아한다.
문이 나오면 노크를 하고 손잡이를 찰칵 하고 돌리는 시늉을 한다. 요즘은 아파트 현관처럼, 번호키를 띡띡띡 하고 누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혼자서 배꼽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조우진입니다' 하고 외친다.
방에 있는 여러 사물들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특히, 냄비, 가스렌지, 세탁기 등등) 오래오래 볼 것이 많다.
2. 크리스 호튼, <엄마를 잠깐 잃어버렸어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아기 부엉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루나는 같이 소리를 지른다.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에선, 루나도 신나서 저기 있다고 외치고, 엄마를 만나면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물론 다시 꾸벅꾸벅 조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찌나 아쉬워 하는지.
3. 리처드 파울러, <너무너무 졸려!>
눈이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운 루나.
졸려서 눈이 돌아가는 걸 표현한 책이지만, 전혀 내용은 볼 생각을 안한다.
외국책이라 등장인물도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고, 그림도 상당히 비호감이다. (특히, 마녀나, 죄수 모습 같은거)
그다지 교육적인 부분은 없다고 보이는데도, 눈이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
요즘은 따라서 눈을 돌려본다고 애 쓰고 있다. 내가 보기엔 입만 실룩거리고 있지만.

4. 시마다 유카, <바무와 게로의 하늘 여행>
좀 어려울 것 같아 안보여주고 있었는데, 처음 보자마자 루나가 너무 좋아한 책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자체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데다가, 할아버지의 생일이라는 것, 특히 생일 케이크가 나오기 때문에 이야기도 조금씩은 따라갈 줄 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사물들이 엄청나게 나와서, 책 한 장 넘기기가 쉽지가 않다.
자기가 아는 거 다 꼽아보느라고.

5. 알로나 프랑켈, <똥이 풍덩>
배변교육을 위해 예전에 사준 책인데, 그때는 잘 안보더니만, 요즘에 간간히 보고 있다.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설명을 해주는 거지.
엄마, 할머니가 선물을 줬대, 머리에 쓰는 게 아니야, 변기에 넣고 똥아 안녕 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봐도 이게 아기 변기같이 안생겼다는 거다.
외국 책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꽃병 같은 거에 어떻게 똥을 싸라고 해야 하는지.
자기가 가진 변기와 책에 나온 변기가 달라서 그런지, 변기 부분이 나오면 책 설명도 우물쭈물이다.
이게 아가 변기야, 루나도 똥 살땐 변기에서 싸는 거야, 라고 말하면,
아니야, 나는 바지에 쌀거야 하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