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영혼의 거울 다빈치 art 18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 옮김 / 다빈치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빈치에서 출판되는 미술서들은 편집이 엉망이다. 가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지면 배치는 용서할 수 없다. (용서 안한들 뭐 어쩌겠는가!) 도판들이 있다는 걸 감안해도 기본적으로 글이 있는 책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용은..음..지은이가 고야로 되어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고야의 생애와 예술로 마가레타 아부르체세가 쓴 글. 지극히 일반론적 연대기로 어떠한 심층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게다가 조악한 편집까지.

2부. 슬픔의 끝을 보여주리라-고야의 후기작이란 제목이 붙은 올더스 헉슬리가 쓴 평론이다. 고야는 예순을 넘겨 4권의 판화집을 냈다. 판화집에 대한 간략한 평론집으로 4부 중 가장 영양가 있다.

3부.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는 제목으로 그의 4권의 판화집(<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투우>, <어리석음>혹은 <속담>) 중 <카프리초스> 판화집 화보이다.

4부. 고야가 친구 마르틴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문이다. 나는 작가가 직접 쓴 일기나 편지문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 책의 구성상 고야에 대한 어떤 심층 정보 없이 편지글을 읽으니 편지글의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지경. -.-

고야의 책을 주문한 계기는 카를로스 사우라스의 영화 <보르도의 고야>를 보고 나서 였다. 영화는 아주 매력적으로 고야의 그림들을 재현했고, 고야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다. 이 책은 고야의 정신세계를 엿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림들만은 다시 볼 수 있다. 고야가 있는 프라도에는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으려나.

 p.s. 게다가 1천원 할인 쿠폰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까워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살 때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열살이 채 안됐을 때일거다. 이 소설에 나올만한 '심토머'에 관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기를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어느날 약수물을 마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약수물에는 도마뱀 알이 있었다. 마침내 출산일이 다가왔고, 여인의 배에서는 아기가 아니라 도마뱀들이 자라고 있었고 여인을 도마뱀을 출산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나는 평소에는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 부족하던 상상력은 갑자기 샘 솟기 시작해서 머리 속에 영화처럼 영상이 쭈욱 펼쳐져 고문을 당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이런 초현실적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여러 심사위원들도 언급을 했듯이 결점이 있는 소설이지만 장점이 더 커서 결점을 덮을 수 있는 기발한 소설이다.  "곰탕 그릇에 담긴 냉면은 더 이상 냉면이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곰탕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과 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이다. 소설이란 그릇 안에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서 유사 소설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일 수도 있고, 날마다 기록한 포스트들을 잘 엮은 것 같기도하다. 곰탕 그릇에 초점을 맞출지 또는 내용물인 냉면에 초점을 맞출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나는 냉면의 맛에 반했다고나 할까.

심토머란 인물들을 통해서 유쾌하고, 무엇보다고 그럴듯하게  '구라'를 풀어내고 있는 필력의 내공이란! 서사 속에 촘촘하게 엮인 현대인의 우울, 망상, 고통, 허무 등의 심리를 느낄 수 있는 유머에 빈 방에서 혼자 깔깔 웃곤했다. 작가는 읽은 후, 책 값이 아까운 독자들 질타 당해 마땅하다고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선사받은 웃음의 댓가로 책값은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자크 아탈리 지음, 김용채 옮김 / 뷰스(Views)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미테랑 평전이라고 해서 일말의 기대심을 갖고 읽었다. 어떤 실마리나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프랑스인들의 글쓰기가 그렇듯 이런 내 기대감은 여지없이 배반을 당한다. 저널리즘 글쓰기를 주로 하는 프랑스 저자들이 쓴 책은 읽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이 결심이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다.

먼저 투덜거려보면, 평전이란 한국식 표현이다. 원제는 <미테랑은 이랬었다C'etait Francois Mitterrand>이다. 그러니까 어떤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한 책이 아니라 자크 아탈리가 60년대 미테랑을 만난 시점부터 미테랑이 죽을 때까지 지켜본 모습을 쓴 에세이이다. 감탄부호를 사용하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낯설어서 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미테랑이 실행한 국내 정책이나 외교 정책에 있어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주기보다는 저자의 관점이 부각되고, 아탈리의 행보를 읽는 듯한 착각도 든다.

 <미테랑의 말년>이란 영화를 통해 보았던 미테랑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연상되기도 한다. 사실, 미테랑에 대한 애정보다는(당연하지 않는가, 한국인인 내가 미테랑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는가) 미테랑 재임기간에 일어났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며 독서를 했지만 아탈리 특유의 초점을 흐리는 문체 때문에 필요한 부분을 뽑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탈리의 글은 매우 유려하지만 요점을 파악하는데 좋은 글은 아니다. 강유원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인문학적 글에서 지나친 형용사의 남발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진 소득이란, 재임기간 동안 일어났던 정치적 스캔들.  정리해보면,

88년 11월 페시네 사건: 미테랑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로제 파트리스 펄라가 두 회사의 합병을 누설해서 증권 시장에서 돈을 벌었다.

89년 정당의 자금 조달 스캔들

또 41년과 43년 사이에 문제가 ‰榮?비시 정권에서 대독협력에 대한 미테랑과 나눈 대화는  흥미롭다. 국가 지도자와 보좌관의 입장차이가 분명히 나타난다. 아탈리는 미테랑을 비난할 의사는 없어 보이고 이미 미테랑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입장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불명예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저지르지 않았다. 스스로의 자화상을 무너뜨리면서 나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음에도 그는 나로 하여금 아무리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한 인간의 삶은 약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글 속에 담긴 아탈리의 입장은 이 책 전반에 걸친 입장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한민국 - 변화된 미래를 위한 오래된 전통
심광현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강한 의문이 하나 제기되었다. 인문학의 목적이 무엇인가? 인문학은 분명 순수 문학과는 다르고 주관성도 객관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어떤 가설을 세우고 밑받침할 근거들을 수집하는데 물론 인용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맹목적 애정보다는 설득력 있는 애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책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산만하다. 어떤 때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또 어떤 때는 논문체이다 마지막에는 운동권적 어조로 사회를 진단한다.

오주석 선생의 책들을 읽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샘 솟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심광현 선생의 서구 학문적 개념 때문에 내 샘 솟던 관심이 움츠러드는 것 같다. 한-흥-무심이란 관점에서 한국의 건축과 그림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참신하다. 또 여러가지 서구 이론들을 전통 예술에 대입하는 응용력은 배우고 싶다. 그러나 프랙탈이란 이론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한국 문화의 가능성을 틀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예술을 바라보는데 물론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히 끌리는 관점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그닥 끌리는 관점은 아니다. 더불어 서술 방식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좋은 서술 방식에는 감정이 이입되어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좋아할 수 밖에 없지만 비호감적 서술 방식을 통해 글쓰기 방식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 편을 먼저 읽고 적잖게 실망해서 나머지 책을 밀쳐두고 있었다. 90년대에서는 인용문으로만으로는 강준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인용문이 다른 시대도 이러할진대 안 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80년대는 달랐다. 인용문이 많기는 하지만 선별적 인용으로 각주에 달린 저자와 출처를 보지 않는다면 강준만 씨의 글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목소리가 실려있다.

80년대는 내가 십대일 때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모든 사건들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비디오처럼 펼쳐졌다. 군부독재와 신군부 독재의 실체는 내게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방한이 있었고, 레이건이 탄 검은 리무진이 잠깐 지나갈 때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환영을 가장하기 위해 전교생이 동원되었다. 교실에 있어야할 시간에 어린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채 추운 발을 동동구르며 여의도 광장에서 리무진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 2년 후에 열릴 86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고교2년이 고스란히 바쳐졌다. 매스게임 행사에 착출된 학교들은 5분 내지 7분 간의 매스게임을 위해 2년을 연습했다. 물론 학사과정이 제대로 될 리 없었지만 파행적 학사일정이 뜻하는 바를 어린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종합운동장에서 착출된 학교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며 배급된 도시락을 먹으며 허비했던 시간들이 군사독재의 횡포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개인적 경험은, 80년대를 관통하는 광주학살에 비하면 오히려 행복한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학살만큼의 상처는 아닐지라도 한 개인의 성장에 있어 군사독재의 또다른 만행이 분명하다. 이렇게 크고 작은 모든 사건에 독재의 칼날이 스며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서슬퍼런 칼날에 끊임없는 저항 정신이 적어도 군부독재의 종식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의 피가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희망적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오류를 반추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역사적 오류를 낸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감정적 흥분을 한 후, 잊어버리고 전과 같이 행동한다면 이런 역사서는 아무런 의미없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2007년, 현재 당면한 문제들, 즉 계층의 고착화, 미친듯이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으로 점점 커지는 빈부의 격차는 80년대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읽고, 더 이상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는 많은 유동적이 되었다. 유권자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릇된 인물이 정권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2의 광주학살은 일어랄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노자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민들이 각자의 성향에 맞는 신문만 구독을 해도 언론은, 사회는 크게 바뀔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아직까지 부끄럽게도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이유는 귀차니즘이 전부다. 사설이나 논설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분노로 얼굴이 벌개지지만 보급소에 전화하길 번번이 미룬다. 알기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내 게으름은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_- 사소한 행동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내가 말이다.

어쨌거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 흘러간 많은 이름들과 사건들은 억압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희망적이란 생각에 무겁지 많은 않은 산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