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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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편을 먼저 읽고 적잖게 실망해서 나머지 책을 밀쳐두고 있었다. 90년대에서는 인용문으로만으로는 강준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인용문이 다른 시대도 이러할진대 안 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80년대는 달랐다. 인용문이 많기는 하지만 선별적 인용으로 각주에 달린 저자와 출처를 보지 않는다면 강준만 씨의 글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목소리가 실려있다.

80년대는 내가 십대일 때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모든 사건들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비디오처럼 펼쳐졌다. 군부독재와 신군부 독재의 실체는 내게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방한이 있었고, 레이건이 탄 검은 리무진이 잠깐 지나갈 때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환영을 가장하기 위해 전교생이 동원되었다. 교실에 있어야할 시간에 어린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채 추운 발을 동동구르며 여의도 광장에서 리무진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 2년 후에 열릴 86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고교2년이 고스란히 바쳐졌다. 매스게임 행사에 착출된 학교들은 5분 내지 7분 간의 매스게임을 위해 2년을 연습했다. 물론 학사과정이 제대로 될 리 없었지만 파행적 학사일정이 뜻하는 바를 어린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종합운동장에서 착출된 학교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며 배급된 도시락을 먹으며 허비했던 시간들이 군사독재의 횡포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개인적 경험은, 80년대를 관통하는 광주학살에 비하면 오히려 행복한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학살만큼의 상처는 아닐지라도 한 개인의 성장에 있어 군사독재의 또다른 만행이 분명하다. 이렇게 크고 작은 모든 사건에 독재의 칼날이 스며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서슬퍼런 칼날에 끊임없는 저항 정신이 적어도 군부독재의 종식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의 피가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희망적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오류를 반추하는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역사적 오류를 낸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감정적 흥분을 한 후, 잊어버리고 전과 같이 행동한다면 이런 역사서는 아무런 의미없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2007년, 현재 당면한 문제들, 즉 계층의 고착화, 미친듯이 뛰어오르는 부동산 가격으로 점점 커지는 빈부의 격차는 80년대의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읽고, 더 이상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는 많은 유동적이 되었다. 유권자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절대로 그릇된 인물이 정권을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제2의 광주학살은 일어랄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노자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민들이 각자의 성향에 맞는 신문만 구독을 해도 언론은, 사회는 크게 바뀔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아직까지 부끄럽게도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이유는 귀차니즘이 전부다. 사설이나 논설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분노로 얼굴이 벌개지지만 보급소에 전화하길 번번이 미룬다. 알기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내 게으름은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_- 사소한 행동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내가 말이다.

어쨌거나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 흘러간 많은 이름들과 사건들은 억압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희망적이란 생각에 무겁지 많은 않은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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