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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섹시해지는 추리 퀴즈 2단계 ㅣ 섹시한 두뇌계발 시리즈 3
팀 데도풀로스 지음, 박미영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호기심을 종종 억누른다. '궁금하지?'를 연발하면서 놀려먹을 작정인 친구와 실랑이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일 때도 있고, 대놓고 눈을 빛내면 무례해 보일 남의 사생활이라서 그럴 때도 있다. 그렇다고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편이 제일 빠르게 답을 알아내는 길이라서, 아무래도 좋을 남의 사생활은 알아도 곤란한 경우가 잦기 때문이라서다.
하지만 책에 한해서는 호기심을 자제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느 공포 영화처럼 뒤로 나가 확인해보려다 살해당할 일도 없이 다음 또 다음을 알아내기 위해 쭉쭉 읽어나간다. 문제는 그렇게 속도를 내다보면 세부사항은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는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추리소설에서까지 그러고 있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딱히 왓슨이나 헤이스팅스가 아니라도 물개 박수를 치게 만드는 명탐정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멋들어지게 풀어줄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뜨끔했다. 그 후로 간간이 끝까지 읽기 전에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이 책 '뇌가 섹시해지는 추리 퀴즈 2단계'가 그런 면에선 아주 적합한 책이었다. 20가지 사건은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달려가지 않는다. 배경정보가 포함된 이야기가 묘사되지만 대여섯 쪽이면 한 사건이 끝난다. 추리퀴즈를 빙자해 수학문제를 풀게 만드는 간단한 퀴즈 책보다는 훨씬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해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독자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범행을 일으켰는가. 물론 홈즈처럼 외양만 보고 이 사람이 실은 프리메이슨에 위장 잠입했다가 약혼자를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선원 일을 마다하지 않은 전직 수사관이라거나, 바짓단에 묻은 흙으로 보아 방금 부둣가 어느 술집에서 나와 어떤 길을 걸었는지 알아내라 말하는 건 아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서너 명의 용의자가 진술하는 걸 듣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짚어내기만 하면 간단한 12번까지와 보다 복잡해지지만 사건의 동기까지 생각해보도록 독려하는 13번에서 20번까지가 있다. 12번까지는 간단한 힌트를 읽고 다시 읽어보면 쉽사리 답을 알 수 있을 정도라 누가 거짓말쟁이인가를 밝히는 느낌이라면 뒤에 8문제는 사건의 숨은 이야기를 좀 더 살펴야 하는 느낌이랄까.
즉, 장례식 후 추모모임에서조차 도무지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구두쇠의 죽음이나 구두장인 쌍둥이 형제에게 닥친 비극 같은 경우엔 용의자들의 말이나 행동을 꼼꼼히 살피기만 하면 되지만 나무통에서 발견된 개발업자나 사망한 경마 기수 같은 경우엔 '누가'보다 '왜'와 '어떻게'가 중요한 느낌이었다.
어떤 이야기든 추리소설의 한 장면을 잘라낸 것 같아 흥미로웠지만 가장 마음에 든 문제는 수상쩍은 가정교사 자리에 들어간 아가씨의 이야기였다. 지나치게 후한 급료, 특정한 외모를 고집하는 고용주, 들어갈 수 없는 방, 가족들의 기묘한 행각까지 고딕 미스터리로 만들어도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언젠가 봤던 트릭마저도 명탐정에게 기대지 않고 직접 풀어보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남성 클럽 내 도난 사건에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정리할 때는 경감 옆에서 차근차근 수첩에 메모하는 순경 같은 기분도 느꼈다.
머리는 아픈 대신 이입감은 남다르고 이야기 속의 명탐정이 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까 하고 물어볼 때마다 왓슨이 되서 시험을 받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답답하지만 영감을 주는 친구에서 조금은 느리지만 그래도 추리하는 법을 익힌 친구로 승격된 느낌이라, 포아로가 '잘 했네, 내 친구'라고 말하며 격려해줄 것 같은 뿌듯함이 남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