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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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오래 동안 방문객을 받지 않았던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방문객을 공식적으로 받겠다고 공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의 호기심이란 끝이 없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보면 길을 가는 사람에게서 웃지 못 할 이야기를 지어내게 된다. 물건에게도 혼이 깃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당에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숨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이 뭐가 놀라운 일이겠는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낼 만한 초콜릿 공장이기도 했지만 은둔했던 사람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사람들의 숨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 <9월의 빛>에서도 20년간 은둔의 시간을 보낸 장난감 제작자 라자루스 얀이 등장한다. 그가 주인공인 시몬 소벨 가족과 마주하게 되는 접점은 그 집을 관리하는 일자리에서부터였다. 소설의 시작은 마치 동화처럼 전개된다. 매력적 미소를 가지고 있던 가장 아르망 소벨이 죽자 가족들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상속에 대한 한정승인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족들은 그가 남긴 빚더미 속에 파묻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어머니 시몬은 예전의 직업을 살려 선생님 일을 하려 하지만 적은 월급으로 먹고 살기도 빠듯한 판에 점잖은 말로 협박을 해대는 빚쟁이를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이레네와 도리안 남매는 무기력한 어린 아이였고 이레네가 무도장에서 아직 어린 병사들과 춤을 몇 번 춰주고 받은 돈 몇 푼으로는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이니 가족의 친구들이라고 붙어 있던 떨거지들은 전부 떨어져 나갔고 붙어 있는 것이라고는 변호사들뿐이었다. 다행히 단 한 명 진짜 친구가 있어 소벨 가족에게 살 곳을 내어준다.

그들은 일단 좁은 아파트에서 안도하지만 의외의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기댄 미스터리 소설이니 기회는 시련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시몬 소벨은 거대한 저택이 관리인이 될 기회를 얻는데 그 주인은 라자루스 얀이라는 장난감 제작자였다. 그는 20년간 은둔 생활을 했으며 자신의 일상과 도서 구입을 맡아서 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로써의 경력을 가지고 있던 시몬이 그 자리에 적합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저택을 관리하며 호젓한 집에서 살게 된 소벨 가족은 뜻밖의 행운에 감탄한다. 저택에는 약간은 섬뜩한 로봇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주인인 라자루스 얀은 더없이 호감이 가는 남자였던 것이다. 살 곳이 제공되고 월급도 후한 편이었다. 더구나 라자루스 얀은 관대한 주인이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 아이들이 대학까지 가겠다면 대학의 학비까지 대주겠다고 자청했다. 빚쟁이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벗어나 한적한 마을의 대저택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소벨 가족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모든 힌트는 이레네게 연인 이스마엘에게서 받은 알마 마티스라는 여인의 일기에 들어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는 코앞에 있었으나 가족들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고 이내 시련의 문이 열린다. 내용을 모르고 읽었을 때는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환상에 기반을 둔 환상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읽기에 따라서는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안에서 로봇이라는 과학적 산물이 돌아다닌다는 것이 오히려 환상을 강화했다. 읽기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고 동화로도 소설로도 다각도로 읽을 수 있는 터라 이 책 <9월의 빛>은 좀 묘한 맛이 남는 책이었다. 그래도 책장을 덮는 순간 안개 속을 한참 헤매다 밝은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그 안개에 빠져 볼만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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