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중학교 시절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이 청소검사를 하러 오실 것을 기다릴 때마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비현실성과 현실성이 함께 교차하는 것이 많아서 때로는 헛웃음을, 때로는 쓴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당혹스러운 이야기는 십대 이후에는 성장이 서서히 멈추고 노화가 시작된다며 그때가 되면 자살하겠다는 아이의 말이었다. 같은 나이였는데도 그 오만한 젊음에 전율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쥔 자조차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사람의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고 그 시간을 무의하게 흘려보낸다면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시체가 살아난다면 어떨까. 죽은 자가 다시 눈을 떠 말하기 시작한다면 원래의 살아있는 시체와 구분이 가기는 할까. 이 책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재미있는 발상에서 시작하고 있다. 무슨 성서 속의 종말도 아닌데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다. 산자는 그저 놀라 비명을 지르며 지켜 볼 뿐이었다.

물론 흔히 생각하는 리빙 데드, 좀비는 아니다. 좀비는 영화 속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아이티 주술사가 산 자를 약물을 통해 가사 상태에 빠뜨린 후 다시 소생시켜 노예처럼 부리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이 책 속의 '살아있는 시체들'은 말 그대로 완전히 죽은 자들이다. 죽음에서 깨어나 평소의 이지를 회복하지만 그들의 심장은 완전히 정지했고 의학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다. 심지어 부패하기까지 하니 죽음의 품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죽음의 품에 안겨 그가 보여주는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태였다.

때로 다시 깨어난 죽은 자들이 착란을 일으켜 산 자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병적 문제지 영화 속의 좀비나 구울처럼 사람의 생살을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리어 죽은 자들은 정신은 평소 같으되 서서히 부패하는 자신의 몸속에 갇혀 산 자들로부터의 소외감까지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툼스빌이라는 지명도 불길한 마을에서 마을 유지인 장의사 스마일리 발리콘이 죽어가고 있었다. 막대한 유산들을 자식들에게 남길 터라 상속 분쟁도 예상되고 있는 터였다. 그런 마당에 발리콘 가에서 연속 살인이 벌어진다.

기막힌 점은 살해당한 피해자가 계속해서 다시 살아 일어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누가 살인자이며, 고인이 되어버린 죽은 자들의 유산 상속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허나 저명한 학자이며 고문으로 있던 허스 박사는 자신이 평소 깊이 빠져 있던 사학(死學)을 풀어놓으며 흥겨워하기까지 한다. 안된 쪽은 오히려 경찰인 트레이시 경감이었다. 그는 어디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는 살인사건에서 관련자들에게 냉대와 무시를 받는다. 그리고 시체가 살아나 계속하여 사라지거나 난동을 부리니 히스테리를 일으키고 만다.

더욱이 그가 몰랐던 점은 이 소설의 탐정 역인 그린 역시 사건 초반에 이미 죽은 몸이었다는 것이다. 그린은 불의의 죽음을 맞고 할아버지 스마일리를 둘러싼 채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일본 소설가가 쓴 추리소설이 미국이 배경인데다가 죽은 자가 계속하여 다시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 곳곳에서 새어나오는 죽음에 대한 지식에 놀라운 점이 많았다. 많은 상식을 뒤집은 발상으로 전개된 이야기가 사상 최초의 좀비탐정의 손으로 풀려 나간다는 점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