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이나 클라이브 바커 등 수많은 거장이 남긴 공포소설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 한참동안 가장 두려운 책은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거대한 벌레가 되어 있었다. 그 변신에는 이유도 없고 그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그 소설이 말하고 싶은 바는 그런 것이 아니었겠지만 어린 시절 읽은 <변신>에서 느낀 바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변한다는 공포였다. 자신이 동경하는 인물로 변해도 찜찜할 판에 정체불명의 이유로 흉측한 무언가로 변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그런데 이 책 <책이 되어버린 남자>에서는 제목대로 책으로 변해버린 남자가 등장한다. 인간 가죽으로 책의 표지를 만들었다는 소름끼치는 실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인공은 책으로 변해버린다. 생명체도 아니고 자신이 품었던 욕망의 대상이었던 책으로 말이다. 주인공은 비블리라는 이름을 가진 서적수집가다. 이름조차 서적을 뜻하는 비블리니 그가 얼마나 책에 집착하는 인물인지는 이름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블리씨는 많은 서적수집가가 그렇듯 책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소유욕을 불태우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자랑스레 내세우는 바에 의하면 다른 서적수집가들과 달리 그는 자신이 모으는 모든 책을 다 읽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신간을 만나고 소유하고 읽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기본적인 욕구를 제외하고 최우선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묘하게 끌리는 책을 만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 책을 소유해야만 했다. 그 책의 주인이 막 사망한 참이라 그 책은 판매물품이 아니었으며 당장 구매가 가능한지도 불확실한 물건이라도 상관없었다. 비블리씨는 책을 훔쳐서 집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최초로 책을 훔쳤다는 죄의식도 책의 원래 주인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오직 그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책에 몰두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자 책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비블리씨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책이 사람으로 바뀌고 자신이 책으로 바뀔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수집해 온 다른 책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만다.

비블리씨는 자신의 장서를 싸게 치워버리는데 그 책만은 치울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책을 끝까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다른 장서와 함께 치워버리지도 못한다. 그 책을 더없이 두려워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책은 사라지고 그가 그 책이 되어버린다. 그때까지의 과정이 불안한 심리와 함께 전해지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도 점차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책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더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진다.

비블리씨는 책이 되어버리고 책으로써의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책이 겪게 될 고충 이상이었다. 비블리씨는 자신이 받게 된 일방적인 상황에 분노하고 책을 거쳐 가는 사람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책이 된 이후에 말이다. 그 복수가 오싹하고 기괴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마무리에 우로보로스의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듯이 순환적 구조를 보이는 결말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이 책은 제목에서 내용의 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도 사람이 책이 된다는 소름끼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더 오싹한 이야기와 마지막 결말까지 흥미롭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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