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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도둑
노어 차니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절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범죄 중에 하나다. 범죄이기는 하지만 살인이나 기타 중범죄에 비해서 가벼운 느낌이 드는 범죄기도 하다. 물론 절도라도 장발장처럼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훔친다던지 좀도둑의 경우에 한하기는 한다. 그런데 미술품 절도에 와서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타인의 물건을 훔쳐서 이익을 누리려는 행위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미술품이라는 물건 자체가 주는 느낌이 다른 것과 상이하다. 미술품의 경우에는 대체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문화 상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어마어마한 가격의 명화의 경우에는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진다. 그래서 미술품 도둑이 다른 도둑과는 다른 특수 계층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이 책 <미술품 도둑>에서는 뒤집기도 하고 유지하기도 한다. 유명 미술작품의 경우에도 다른 고액의 물건을 훔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한다. 도둑에게 있어서 유명 미술 작품도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미술품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다는 의뢰인이 있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집행인이 있는 절도라는 점만 다를 뿐이라고 한다.
미술품 도둑이 대체로 자신의 기술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은 맞지만 언제부터인가 미술품이 고액의 물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한 국제범죄조직이 중간 상인 및 집행인을 겸하게 되면서 폭력을 사용하는 일도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미술품 도둑>은 조금은 묘한 책이다. 처음 읽기는 명화의 연쇄 도난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스릴러라기보다 미술품이나 미술품 관련 범죄에 대한 강의록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등장인물이 미술품 범죄에 대한 강의를 하는 코핀 박사, 미술사 교수 배로 교수를 비롯하여 미술관 관장, 말레비치 협회 부회장 등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하는 강의가 등장한다. 코핀 박사를 만나러 간 형사는 코핀 박사의 강의를 듣게 되는데 그 강의 내용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또한 배로 교수의 경우에는 미술관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동안 의문의 남자 세 명이 접근해 오는데 그 내용도 그대로 나타난다. 덕분에 이 책 <미술품 도둑>은 도난 사건을 소재로 한 독특한 퍼즐이자 에듀테인먼트 소설이라는 말이 더없이 적합한 책이 되었다. 두 사람의 강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잃어버린 명화에 대한 설명도 좋은 편이고 배로 교수가 반 에이크의 그림 <결혼서약>을 읽어주는 것도 재미있다.
덕분에 이 책의 주인공은 명화 도난 사건이기도 하지만 도난된 미술품이나 강의 속에 등장하는 명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오히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곁가지처럼 느껴질 만큼 그림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배로 교수나 코핀 박사가 읽는 만큼 그림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부활한 예수님을 믿지 못해 창자국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 <성 토마의 불신>으로 유명한 카라바조의 <성 수태고지>가 첫 번째 도난품이자 이야기의 끝까지 중요하게 등장하는 점도 흥미를 더했다.
또한 두 번째 도난품인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의 경우에는 단순한 흰색 그림이 그렇게 대단한가하는 모든 의문을 날려버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많은 사람들의 소유욕의 대상이며 흰색이지만 그 흰색에서 화가와 그 화가가 부인했던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의 명화를 둘러싼 도난, 위작, 밀매 사건이 세밀하게 덧칠되어 있는 점도 좋았지만 미술품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명화 그 자체가 트릭의 일부분이 된다는 점, 그 점이 가장 이색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