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아내는 이야기에는 그 사람의 일부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 자라난 환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환상 세계를 그려도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의 가치관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이야기란 없다. 어딘가에는 만들어낸 사람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그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작가들에 대한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의 조각을 읽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순히 조각에 불과하더라고 그렇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을 담는다. 이 책 <영화인문학>은 그런 입장에서 영화를 읽어나간다. 27편의 한국영화가 소개되고 먼저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이후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감성을 담아내려 애썼는지를 먼저 말하는 것이다. 그 후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와 연관된 관념이 선보인다. 처음 읽을 때는 영화에 대한 소개 같기도 하지만 읽어나갈 수록 영화를 말하는 사유의 덩어리를 끊어냈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영화인문학>의 저자는 철학자다. 영화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읽는다기보다 인문학에 관한 생각들을 영화라는 주제로 묶은 것 같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읽어지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권의 말미에 이런 부분이 있다. 이 글이 연재되던 당시에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글이 어렵다고 불평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앞으로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글을 읽어나가라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부터 해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을 거듭하는 철학자다운 답변이었다. 편하게 읽어지는 책은 아니지만 그만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27편의 '한국'영화만을 다룬다. 가볍게 생각하면 철학자가 영화를 보는 독특한 관점을 읽고 그에 따라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기는 하다. 그런데 정작 읽어지는 것은 27편의 한국영화에 담긴 시대상이었다. <이어도>에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희생양이 되는 인간에 대한 것,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최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까지 지나온 혹은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를 되새기게 한다. 더구나 <달콤한 인생>에서 등장인물이 부딪히는 진짜 이유는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기 때문이며 강박적으로 이유를 찾으려 할수록 상황은 악화된다는 것처럼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게 하는 말이 많아서 하나의 영화를 말할 때마다 한 호흡씩 멈추어 서서 생각을 모으게 되었다. 봤던 영화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하고 그 안에 담겼지만 읽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골몰해보았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어렵게 느껴지는 만큼 안 본 영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그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그리 와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저자가 밝히는 사유의 덩어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는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 셈이다. 기대했던 이유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소개된 영화는 대체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만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지목하는 것이 많아서 책의 전체적 분위기도 차분한 편이었다. 결국 전부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도 삶은 왜 이렇게 복잡한 것인지,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