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에서는 보통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 역을 맡은 사람이 그 사건을 조사한 후 결론을 내리는 식으로 전개된다. 포와로도 엘러리 퀸도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결론을 내린 후 사람들 앞에서 추리 쇼를 선보이는 방식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탐정이 조사하는 사건은 진귀한 보석의 도난 같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살인이다. 누가, 어떻게, 왜 죽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추리 소설의 꽃은 살인 사건, 그것도 밀실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닫힌 공간에 사람이 죽어 있다. 그런데 그 곳에 다른 사람이 없으며 창문도 문도 없는 밀실이라면 사건은 미궁에 빠져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밀실에 사람이 죽어 있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올 여지가 없었다면 사고사나 자살 같은 살인 이외의 것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살인이라면 인간 증발의 트릭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일종의 불가능 범죄 풀이랄까. 이 책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역시 밀실 살인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시작점이 다르다. 한 남자가 방에 들어가 살인을 준비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미 밝혀져 있으니 누가 죽였는지는 의문점이 아니다. 남자는 차분하게 살인을 진행하고 다른 남자를 살해한다. 남자의 목적은 피해자가 사고사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방을 밀실로 나온 후 그 방을 빠져 나오는 살인자, 그렇게 문은 닫혀 진다. 밀실에 살해된 피해자만이 남은 상태에서 살인자가 밖으로 나온 것이다. 방은 아직도 밀실인 상태로 말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살인자도 남자가 밀실을 만들어 놓은 방법도 이미 드러나 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남자의 동기와 남자가 밀실을 만들어 놓은 목적이었다. 살인은 남자의 목적대로 풀려 가지만 이후 상황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난다. 탐정 역을 하고 있는 유카라는 여성이 뛰어난 두뇌를 발휘한 탓이었다. 살인자인 후시미와 탐정 역의 유카는 과거에 뭔가 관계가 있었다. 감정적인 선이 아직 남아 있는 두 사람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미심쩍다고 판단한 유카는 어떻게든 문을 열려 하고 살인자인 후시미는 필사적으로 그 시도를 막으려 한다. 차가운 머리, 평온한 대화 속에서 진검승부가 펼쳐진 채 심리게임이 벌어진다. 그리고 문은 아직도 닫혀 있었다. 추리 소설은 대체로 사건이 발생하면서 진행된다. 살인이 일어나고 그것이 발견된 후에 탐정이 그 사건을 풀어간다. 누가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바이가 없는지를 판단하고 모은 증거를 통해 논리의 고리를 연결해가는 것이다. 밀실 살인조차도 누군가 살해당한 것을 안 후 밀실을 깨고 들어가서 살인을 확인한다. 그 다음에야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이 책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제목 그대로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살인자와 탐정의 심리게임이 돋보인다. 아직 살인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살인자가 만든 밀실이 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가 진행되니 독특한 맛이 있었다. 더구나 탐정 역의 유카라는 여성은 평소에도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지어내는' 모든 것을 머리로 판단하는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누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생겼으니 그 끝을 알아야 하는 것뿐이었다. 살인의 동기도 동기지만 밀실의 목적과 밀실이 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되는 살인 사건이라는 점이 가장 특색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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