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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말이지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
멕 로소프 지음, 박윤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만약에 말이지'는 '내가 사는 이유'의 작가 멕 로소프의 신작 소설이다. 이 두 권으로 인해 성장소설의 여왕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두 권 다 소재가 예사롭지 않다. '내가 사는 이유'에서는 거식증에 걸려 있는 미국 소녀가 영국으로 왔다가 알 수 없는 전쟁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덕분에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소리도 들었던 책이었다. 전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멕 로소프는 이번에는 우연한 사고 후에 운명을 피하기로 결정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을 썼다. 성장소설이니 만큼 두 권의 주인공은 혼란스러운 감정을 품은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사는 이유'의 주인공이 새 엄마와 어린 동생의 탄생으로 거부감을 느꼈다면 '만약에 말이지'의 데이비드 케이스도 동생 찰리의 탄생으로 자신의 자리가 사라진 것만 같은 기분에 빠진다. 자신의 온 마음으로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나가고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마당에 동생이 태어난 것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어른들이야 그가 의젓한 형이길 기대했지만 그들은 데이비드의 마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비드가 동생 찰리를 괴롭혔다는 것은 아니다. 동생은 형 데이비드를 굉장히 잘 따랐고 데이비드도 자신을 잘 따르는 동생을 아끼고 있었다. 다만 마음이 복잡한 것은 별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우연한 사고가 끼어든다. 찰리는 아기인지라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는데 데이비드가 놀아주지 않자 혼자 할 일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이 하필 창가에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직 의사소통은 잘 안되는데 걸음마를 시작해서 행동반경만 늘어난 찰리였다. 데이비드는 그것도 모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 찰리는 창가에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1층이 아니었으니 만약 떨어진다면 무사하기 어려울 터였다. 거기에 새가 날아가자 찰리의 머릿속에는 자신도 날아보겠다는 욕심이 싹튼다. 그나마 아래에 있는 개가 쳐다보자 잠시 망설였지만 찰리의 몸은 금세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데이비드에게 어떤 직감이 든 것은 그 때였다. 데이비드는 찰리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몸을 던진다. 간신히 찰리를 붙잡아서 끌어 올린다. 아기 찰리는 자신은 날 수 있다고 항변했지만 그 목소리는 데이비드에게 들리지 않았다.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다. 놀람이 가시자 데이비드는 오싹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바뀌는 한 순간 말이다. '만약' 자신이 찰리에 대한 것을 조금만 늦게 깨달았다면 찰리는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속으로는 '동생을 죽게 방치한 아이'라고 그를 탓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제 데이비드는 선택을 해야 했다. 방금 전의 사고를 단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일상을 보내는 것과 한 순간의 차이로 피할 수 있던 운명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도전을 선택한다. 정확하게는 '도피'였다. 자신의 이름을 '저스틴 케이스'로 바꾸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었다. 자신의 불운한 운명을 피해 도망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저스틴이 된 데이비드의 운명과의 한 판 승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첫 부분을 읽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의 동생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던 사고를 두고 자신의 불운을 저주하며 운명에게서 도망치겠다고 선언하는 소년이라니 황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년을 내려다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 시각이 대체 누구인지는 의외로 쉽게 밝혀지지만 그로 인해서 소년의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스틴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면서 여태까지 알던 사람들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시작한다. 그만의 상상 속의 친구를 알아보는 피터, 불운에 집착하는 저스틴의 눈을 뜨게 하는 도로시아, 이기적이지만 그를 성장하게 하는 아그네스까지 말이다. '만약'이라는 말은 일상 속에서 흔히 하게 되는 말 중에 하나다. 자신이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는 것은 인간의 성품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만약' 운명을 피하는 것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저스틴 케이스가 실재하게 되지 않을까. 소재부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지만 전작 '내가 사는 이유'에 비해서 흡입력은 살짝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