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추적자'에서 매혹적인 활약을 선보였던 잭 리처가 돌아왔다. 전직 군수사관이며 이제는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 잭 리처가 시카고에 나타난다. 시작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 아무 관계없어 보이던 두 사건과 목발을 짚고 있던 한 아가씨가 연결되어 있었다. 전작에서는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을 지나갔기 때문에 누명을 썼고 그로 인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면 이번엔 호의에 의한 것이었다. 강인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여자가 있었고 그 여성이 세탁소를 나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고 잭 리처는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세탁물을 받아들고 목발을 들어준 것이다.

짧은 시간의 호의, 우연한 사고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인연으로 지나갔을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꼬였다. 정체모를 사내 둘이 두 사람에게 총을 겨눈다. '추적자'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작부터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방랑자가 경찰이 그를 체포하려는 와중에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간단히 그들을 해치울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도 같았다. 잭 리처는 계획은 있으되 어설픈 2인조를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옆의 아가씨가 목발을 짚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2인조는 간단히 해치울 수 있겠지만 유탄에 사람들이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납치된다.

총을 겨누고 있는 2인조 외에도 능글거리는 웃음을 짓는 운전사를 포함한 3명으로 이뤄진 납치단이었다. 대상은 분명 잭 리처가 아니었다. 그는 방랑자였고 그 자신도 그곳에 있을지 미리 예상할 수 없었다. 시카고였을 수도 있고 멤피스 였을수도 있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잭과 여자는 승용차로 납치된 후 트럭 뒤에 짐짝처럼 실린다. 그 때 도망칠 수도 있었다. 여자를 두고서라면 그랬다. 여자는 이미 다리를 심하게 다친 상태여서 목발이 없으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목발을 짚고 이동하는 것도 그리 빠르지 않았으리라. 잭은 일단 선택을 보류한다. 다만 여자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납치상태를 유지한다. 아직은 방관자였다.

어둠 속에 갇힌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교환한다. 유일한 가족조차 죽음을 맞았기에 아무도 찾을 사람이 없는 잭 리처와 FBI 신참 요원인 홀리 존슨이었다. 그런데 묘한 점이 있었다. 홀리가 뭔가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납치되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잭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이동한다. 잭은 어둠 속에서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3인조는 아마추어였고 그의 실력이라면 능히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홀리는 다쳤고 움직임이 불편하니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녀를 두고 가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은 그녀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훈련된 수사관이었고 계속하여 잭이 혼자라도 도망칠 것을 권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는 불행하게 말려든 민간인이었던 것이다. 사실 불운했던 것은 납치범 쪽인데도 말이다. 긴 시간이 흐르자 불행한 사고가 발생한다. 이제 잭 리처는 선택한다. 그들은 방관자를 적으로 돌렸다.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면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분노가 잭 리처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규칙을 지키는 사내였다.

뒷 표지에 탈주자에 대한 평으로 이런 말이 실려 있었다. '잭 리처는 위험한 여행길에 오른 여성이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라는 것이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환호했다. 실제로 잭 리처가 함께 한다면 어디든 안전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피를 보겠지만 그 대상은 잭 리처도 그 동반자도 아닐 것이 분명했다. 단지 아쉬웠던 부분은 지난 번보다 규모가 더 커지면서 잭 리처가 이야기 전체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잭 리처는 여전히 잭 리처였지만 영화 '테이큰'의 주인공에서 미국 드라마 '24'의 주인공으로 변화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전작의 여주인공은 조력자의 느낌이 강했지만 이번 여주인공은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된 요원이며 강인하기는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빠르게 움직이기는커녕 운신하기도 어려웠다. 잭 리처에게 부담만 갈 존재로 느껴지면서도 그녀의 강인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다칠까봐 걱정이 되니 읽으면서 불안함에 시달렸다. 잭 리처의 강인함이 큰 배에 탄 것 같은 안정감을 준다면 홀리의 강인함은 호감은 가되 불안했다. 그래서 감정이입은 '추적자'보다는 덜 했다. 허나 충분히 멋졌다. 잭 리처가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다시 떠나갈 방랑자의 짧은 이야기지만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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