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스피카
아키타 요시노부 지음, 오세웅 옮김 / 북애비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만큼 파괴적인 감정도 없다. 사랑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다른 사람을 바꾸려하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자신도 변화한다. 그렇기에 짝사랑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자신은 변하고 있는데 상대는 변하지 않으니 그 모든 파괴가 자신에게만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랑만큼 순수하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되고 왜곡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여기 인공위성 소년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카나, 인공위성 소년의 이름은 카나스피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공위성 소년의 카나스피카라는 명칭은 인공위성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개체 식별용 이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존재가 자기뿐이라고 하니 딱히 틀린 것 같지도 않았다. 이야기는 아주 작은 확률로 하늘을 올려다 본 소녀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소녀를 묘사하는 말이 조금 묘하다. 그 소녀 본인이 자신을 중학생이라고 소개했나본데 그는 중학생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기능제한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녀 간의 관계를 다룬 책에서 남자와 여자를 다른 별 사람이라고 비유하기는 했지만 이 책 '카나스피카'에서야 말로 소년과 소녀는 전혀 다른 존재다. 한 명은 지구인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중학생 소녀 카나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외계생명체가 만들고 쏘아 올린 인공위성 카나스피카다. 우연히 운석을 맞고 카나가 사는 동네로 떨어진 카나스피카의 원래 모습은 둥글둥글하다.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떨어진 이후였으니 카나스피카의 진짜 정체는 알 수 없는 기계인 셈이다. 대화를 나누는 카나는 그 모습에 미혹돼서 가끔 잊게 되지만 말이다.

카나는 그리 특별한 소녀는 아니었다. 물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남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한가롭게 집으로 돌아가던 카나는 길을 돌아가기 귀찮아서 아파트 담의 구멍을 통해 주차장 쪽으로 들어선다. 그 곳에는 가끔 보게 되던 고양이가 있었다. 카나가 만날 때마다 먹을 것을 주었는지 고양이는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허나 주머니에 딱히 먹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카나는 미안해져서 고양이를 쓰다듬어나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무언가를 보고 도망쳐버린다. 그 때였다. 카나가 4만7064분의 1의 확률로 하늘을 본 것은 말이다.

어느 순간 주저앉아 있던 카나는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다. 주차장의 차 위로 정체불명의 구체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차는 심지어 녹아내려 있었다. 멍하니 구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이 점차 미묘한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카나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로 변한 것이다. 순간 카나는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곧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영화에 흔히 나오는 패턴대로 결코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만 목격자가 살해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럴 때 평범에 가까운 카나가 취할 행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집으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신과 엄마의 안전을 확인한 카나는 창밖으로 주차장의 상황을 확인한다. 여전히 주차장에 주차된 차는 박살이 나 있었지만 수상한 소년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꿈이 아니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이제 카나는 다른 문제를 발견한다. 자신의 가방을 두고 온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해서 도망쳐 온 마당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카나의 집으로 누군가 찾아온다. 카나의 엄마는 사정을 모른 채 문을 열어주는데 카나의 가방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굉장히 수상한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말이다. 심지어 시청 우주인 대책실 소속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아이와 어른의 공백의 시기에 있던 카나의 일상에 일대 바람이 분다. 알 수 없는 인공위성 소년을 돕기도 하고 거리를 두었던 반 친구들과 거리를 조금 좁히기도 한다.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수상한 검은 양복을 피해 도망치게도 되는 것이다. 카나는 카나스피카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변화해간다. 그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고 위험에도 휘말린다. 어쩌겠는가. 그 과정의 중심에 있는 사랑은 파괴적은 감정인 것을.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카나는 예전의 카나가 아니다. 키는 자라지 않았지만 조금 커졌고 마음의 그릇도 넓어진다. '마술사 오펜'으로 유명한 판타지 소설 작가 아키타 요시노부가 쓴 성장소설이라니 의외인 면이 많았다. 판타지 소설 작가가 성장소설을 쓴다는 점도 그렇지만 인공위성 소년을 만나 성장해가는 소녀의 이야기라니 생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맑은 구름 아래서 흘러가고 그런 환상적인 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양복의 등장에서는 쓴 웃음을 짓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디로 흐를 지 알 수 없었던 성장소설 '카나스피카', 저런 인공위성 소년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미 공백기를 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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