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
시모나 바르톨레나 지음, 강성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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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영화에서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간여행이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은 흥미를 끄는 소재거리임은 분명하다. 얼마 전에도 만약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 하는 것으로 친구와 잡담을 나눴다. 다음 주에 당첨될 복권번호를 보는 것부터 후회스러웠던 일을 바로잡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마지막에 나온 것은 과거로 돌아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잔뜩 사가지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유명하다 못해서 그림 값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가의 그림이 되었지만 고흐가 살아있었을 때에는 그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가진 재능은 사후에나 인정받았던 것이다. 물론 과거로 가서 고흐의 그림을 사겠다는 것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헐값이었을 그림을 잔뜩 사서 큰 이득을 얻겠다는 속셈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흐의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강렬한 색채 때문일 것 같다. 그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은 그 색채에 압도된다.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부터 고전주의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한 것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화가의 이름값보다 그 전시회에서 남았던 기억은 아름다운 색채와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압도감이었다. 암굴의 성모에 이르러서는 멍하니 그림 주위를 서성거렸다. 명화라고 불리는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그런 감정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색채, 구성을 제외하고도 그림 자체에서 압도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빛과 그림자의 마술 같은 순간을 잡아낸 화면, 강렬한 색채로 인해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면이 있다.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비평가들이 기존의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를 따르지 않는 화가들의 화풍을 비아냥거리느라고 만든 말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주자 중 하나였던 모네의 그림을 비웃으면서 그와 비슷한 화풍을 가진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말이 실은 마음에 드는 화가들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비평가는 비아냥거릴 생각이었는지도 몰라도 인상주의라는 말은 그들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것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 화가들의 그림은 인상적인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그림조차도 고전이 되어 버렸다. 이 책 '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에서는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을 다루고 있다. 인상주의를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부터 다양한 그림들이 눈을 현혹한다. 그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편일 텐데 왜 인상주의가 나오게 되었는지부터 그 종말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이라지만 인상주의 화가가 한 둘이 아닌 터라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은 그리 길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 전체에 대한 이야기는 책 전체에 걸쳐져 있고 그와 관련된 그림이 적절하게 예시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다. 흔히 예술은 창의력을 중요시 여기니까 새로운 변화를 잘 받아들일 것 같지만 마네가 그림을 내려던 시기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기는 하다. 어디에나 기득권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일관된 구성, 신화의 이야기를 차용하는 비슷비슷한 소재, 사실대로 그리지 않고 미화된 신체와 부드러운 색감이 강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화가가 성공하려면 살롱전에서 입상해야 하는데 그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입선하기 어려웠다고 하니 사실상 강요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방식에 반기를 들어 사실적인 소재를 차용하고 화려한 색감을 쓰고 모델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화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당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렸으며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방식이 아니라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이뤄낸 마술적인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기존의 그림보다 붓질이 거칠게 표현되어 있었고 외곽선을 배제하기까지 하는 등 기존 그림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난이 들끓는 곳에 열광적인 찬사가 있기 마련이었고 당대의 사상가들이 그 일단의 변혁을 일으키는 화가들을 옹호했다고 한다. 그 일단의 화가들이 흔히 인상주의 화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으며 인상주의는 유행처럼 번져나갔다고 한다. 후에는 그림이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인상주의 화가들도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그 소재를 얻기도 할 정도로 상호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이다.

예술은 보통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시대상을 배제한 예술을 고집했으니 인상주의가 유행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단순히 그림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과 관련된 시대상을 읽어주는 책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그 안에 실린 수많은 그림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원작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해도 명화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19세기 후반의 미술여행, 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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