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과학과 사회 3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별 일이 아닌데도 꽤나 답답할 때가 있다.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 세부사항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그렇다. 가령 드라마에 나온 조연 배우의 얼굴을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 나지 않을 때 별 일도 아닌데 궁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반면 짜증스러운 기억은 참 오래도 간다. 창피했던 일이나 불쾌한 일은 굳이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약간의 계기만 있으면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다. 가능하면 잊어버리고 싶은데도 말이다.

더구나 공부를 하려고 들 때 어떤 부분은 그렇게도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틀리고 나면 그 부분을 다시 공부할 때마다 둘 중에 틀린 쪽을 고른 것이 계속 떠오른다. 그 순간의 감정까지 떠오르니 다시 틀릴 걱정은 없겠지만 사실 울컥하기는 하다. 이렇게 불쾌했던 감정과 함께 세밀하게 기억이 날 때마다 전체적인 기억력이 뛰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불쾌한 순간의 기억이 또렷하다면 좋을 때의 기억도, 공부한 내용도 그대로 떠올랐으면 싶은 것이다.

허나 그 바람은 바람으로 그치고 기억은 아직도 불안정하다. 감정에 흔들려서 어떤 것은 좀 더 잘 기억되기도 하고 그 감정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과학과 사회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는 바로 인간의 기억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먼저 기억에 대한 연구를 하는 역사를 살짝 훑어 내려간 이후에 기억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사람의 기억은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단기 기억은 말 그대로 방금 외운 것에 대한 것이라면 장기 기억은 좀 더 오래 보존하게 되는 기억이다. 한 예로 사람에게 20개의 단어를 기억하게 했을 때 첫 부분에 있는 단어와 끝 부분에 있는 단어를 기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첫 부분에 있는 단어를 잘 기억하게 되는 것은 장기 기억에 의한 것이고 끝 부분에 있는 단어를 잘 기억하게 되는 것은 단기 기억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휘발성 메모리 같은 단기 기억에 비해서 장기 기억에 대한 것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일회성이 아니고 끄집어내는 데에 다른 점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기억의 경우 사건과 결부되어 있는 일화적 기억과 의미적 기억으로 나뉜다고 한다. 보통 여기에 절차적 기억이 추가된다고 볼 수 있었다. 서술적 기억은 의미적 기억이나 일화적 기억을 포함한 개념이니 구분상의 개념이란 느낌이었다.

일화적 기억은 자신이 어떤 일을 했었다는 과거의 경험적 사실과 연관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안에는 자연스럽게 의미적 기억이 녹아들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라는 단편적인 사실 정보들은 사건 속에 묻혀 당연하다는 듯이 흘러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부분과 상식에 해당하는 부분 둘 다 기억의 중요 부분이지만 기억 질환이 일어난 경우 손상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허나 행동과 관련된 절차적 기억은 대부분 유지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에 읽은 기억과 관련된 책에서 어린 아이의 기억을 5분 만에 왜곡 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실험이 나왔다. 그것을 생각하면 사람의 일화적 기억은 간단히 왜곡될 수 있는 기억이었다. 하기야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더 잘 기억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는 기억이니 왜곡되는 것도 놀랍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절차적 기억의 경우에는 뇌에 손상이 가서 자신의 예전 일도 상식적인 부분도 잊어버린 사람이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보면 쉽게 잊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 환자는 의식하지 않을 때는 자연스럽게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걷기 전에 걷는 일의 순서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하자 표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걷는 동작을 하지도 못했다. 무의식 상태였을 때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기억의 분류는 물론이고 기억의 질환과 관련된 글도 있었는데 새로운 추억을 생성하지 못하는 전행성 기억상실과 예전의 경험을 잊어버린 후행성 기억상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불안정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추천글에 나온 것처럼 기억이 현재와 미래를 대비한 '경험의 질료'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기억은 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데 선택하지 않은 불행으로 인해서 많은 기억을 잃어야 한다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학이 발달해도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는 부분은 너무도 많다. 사람의 구성성분을 안다고 해도 그 재료만 가지고서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인체도 알 수 없는 데가 많은 것 중에 하나다. 그런 사람을 움직이고 그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특정 짓는 결정적인 기억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고 기억이 취사선택되거나 왜곡되는 것은 한 사람의 하루에서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현재도 특정할 수 없는데 기억만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도 무리하기는 하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잊힐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대한 생각에 잠긴 것이 유쾌했다는 것만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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