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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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보통 배고픔 같은 하위의 욕구가 자아실현 같은 상위의 욕구보다 우선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고픔이나 안전에 대한 욕구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욕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재앙일지도 모른다. 그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생명 유지에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 레온 가족은 그런 면에서 각기 다르지만 어떠한 욕구보다 우선되는 열망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 가족에게 시련이 온 것은 오스카의 외할아버지인 아벨라르가 살아 있을 때 부터였다. 영민한 머리를 가지고 있던 아벨라르는 독재 정권이 자리하고 있을 때 상류층에 속해 있었다. 이름 높은 의사이며 지식인이었던 그는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재앙이 찾아온다.

그의 장녀이며 그의 두뇌를 그대로 물려받은 재클린이 지나치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독재자는 나라 안의 여자는 전부 자기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아벨라르의 딸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면 딸이 끌려가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만약 그가 거부한다면 그의 집안이 몰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어와 함께 헤엄치며 재클린이 강간당하는 꼴을 눈앞에서 보게 될 터였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독재자에게 알아서 딸을 바쳐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아벨라르는 그것을 거부한다. 가족을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데 레온 집안의 푸쿠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저주라고 할 수 있는 푸쿠는 독재자 트루히요에게 반항하는 자에게 내려졌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아벨라르의 앞날에 어둠이 드리워진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아벨라르의 사촌인 라 잉카의 손에서 크게 된 막내 딸 벨리시아는 또 다른 열망에 시달린다.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등에 양아버지가 기름을 쏟았을 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라 잉카에 의해 구출되었을 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난 이후 그녀의 삶은 안정된다. 그런데도 그녀는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 시달린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도망치려고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도망치려 할수록 그녀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게 또 재앙을 가져왔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카에 와서는 열악한 동네지만 적어도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스카는 가족을 보호하고 싶다는 열망이나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런 열망은 이미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충족하였기에 그에게 내려오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간단한 것인데도 오스카에게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 오스카의 열망이 가장 어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모르는 타인을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간단한 조건 같지만 미칠 듯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단순히 성욕을 충족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면 쉬웠을지도 모른다. 허나 오스카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어린 시절의 오스카가 그대로 자랐다면 그런 열망을 품지 않은 보통의 도미니카 남자처럼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곱 살의 그의 황금기가 지나고 그는 지나치게 뚱뚱한 몸이 되고 만다. 더구나 여자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말을 걸지도 못하고 롤플레잉 게임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만 하였으니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오스카는 점점 주변에서 고립되어 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묵시록적인 것일 정도로 오스카의 정신도 불안정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의 가족들만이 그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주었다. 반면 그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할 생각도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스카는 자신의 상황을 체념해 버렸다. 그런 오스카에게 기회가 온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오스카를 보면 벌레 보듯 피하는 다른 여자들과도 반응이 달랐으니 희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점점 자기 자신의 속으로만 침잠하던 오스카는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단 하나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를 내던지는 데 레온 가족의 이야기는 인상적인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포기한다.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지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열망을 막는 장애물이 저주인지 그 열망 자체가 저주인지 읽어 나갈수록 알 수 없게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 같다는 비아냥거림을 못 알아듣고 '오스카 와오'라고 오스카는 반문한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그를 오스카 와오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놀리는 말을 체념하고 이름처럼 받아들였던 오스카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한 놀라운 선택과 삶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책의 내용 자체도 스티븐 킹부터 온갖 그래픽 노블의 이야기가 재기발랄하고 유쾌하게 섞여 들어가지만 오스카의 마지막 선택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푸쿠에 걸리지 않아서 그런지 오스카처럼 단 하나의 열망을 쫓을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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