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변화의 상황에서 적응을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변화의 상황이 크면 스트레스도 크다고 한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도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결혼이나 취업같은 자신의 인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면 받는 스트레스의 양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면 불안도 늘어나고 그 사실은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시작된다는 것은 최악의 변화이며 엄청난 공포인 셈이다. 설사 그 회사를 자신이 결코 좋아한 적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마다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묵묵히 참으면서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을 떠넘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 정도를 넘은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생겨난다. 집단 히스테리라고 할 지 후에 생각하면 창피할 뿐이지만 이성이 마비된 사람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 '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에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라니 별로 새로울 것도 없겠다는 섣부른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났고 이 책은 익숙한 소재를 절묘하게 비틀어서 읽는 내내 웃게 되었다. 그 웃음 뒤에 씁쓸한 느낌이 따라왔지만 이 책이 재미있다는 전체적인 감상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때 호황을 맞았을 때는 고층빌딩의 3개 층을 쓰면서 잘 나갔던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무리가 등장한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우리'라고 지칭한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말하는데 그 '우리'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자신들의 시간 때우기용 대화에 끼지 않는 조 포프와 다른 부서 사람들 그리고 회사의 공동 경영자이며 그들의 상사인 린 메이슨이었다. 그들은 회사에 다니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가장 즐기는 일은 자신들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중간 관리자인 베니나 수석 아트 디렉터인 캐런이 전해주는 회사 내 소문을 듣는 일이었다. 호황일 때는 이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는데 린이 그들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는 이상 그녀가 내주는 과제에 적절히 대응해서 광고시안을 내놓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로 창의적 의견을 만드는 '우리'는 대부분의 근무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를 고민한다. 물론 그들이 대충 때운 시간까지 포함해서 전부 광고주가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호황일 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불경기가 되자 회사가 쓰던 3개 층 중에 하나인 59층이 일단 비워진다. 거기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도 정리해고가 되는데 그 일은 일대 혼란을 몰고 온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얼굴은 보지만 이름은 모르고 알았더라도 잊어버린 사람들이 짐을 챙겨서 회사를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광고회사라서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는 그나마 정리 해고 초기 시기에는 나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일 뿐이지 회사 내 분위기는 긴장으로 가득 찬다. 베니나 캐런에게서 최신 소식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상사에게 걸리지 않도록 몸을 사리게 된 것이다. 가령 비품이나 복사에 대한 정책도 바뀌어서 행크의 경우 매일 도서관 책을 가져와서 그 책 전부를 복사하고 그것이 마치 중요 서류인 양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린의 방으로 불려 가서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고 떠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불안과 안심을 동시에 경험했다. 떠나가는 동료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도 이번에 자신이 걸리지 않았다는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다음번에 자신이 대상자가 된다면 이번에 산 새집의 대출금은 어떻게 하냐는 것부터 아이들 학비까지 온갖 문제들이 머릿속을 가득 차게 했다. 덕분에 시간은 매우 더디게 흘러갔는데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어 닥친 상황이라 그들에게는 일이 더 소중해졌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였고 그들은 해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승진된 사람이 있었는데 항상 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대화모임에 결코 나타나지 않는 조 포프였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어떠한 잡동사니도 쌓아두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에서 개인 물건이 있다면 아침에 출근할 때 타고 오는 자전거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그 자전거를 자신의 사무실에 넣고 자물쇠까지 걸어뒀다. 사실 조가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한 적도 없지만 그들의 무리에 끼지 않고 너무 유능하다는 사실에 그들은 그가 불편해졌다. 선한 얼굴에 한 점의 불안도 없는 표정으로 일의 진척 상황을 묻는 그를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하기야 조는 공동 경영자인 린과 직원인 자신들 사이의 중간 정도에 위치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을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짐을 괴롭히거나 결코 대화 모임에 끼지 않는 조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혹은 얼마 전에 복귀했으나 아직도 신경증적 이상이 있는 것 같은 재닌을 이야기 거리로 만들면서 보내기도 한다. 재닌은 딸이 납치되고 살해된 채 발견된 불행한 어머니였다. 그들은 재닌을 동정하고 있었고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불안을 없앨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녀는 이미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기에 그녀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은 이야기 거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재닌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도 그녀를 비웃을 생각도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랬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도 이미 이상행동에 접어들고 있었고 재닌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그들의 행동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런 불안 상황은 어딘지 이상한 행동을 계속 해대고 유난히 공격적으로 조를 대하던 톰과 나이가 많은 크리스가 정리 해고를 당하면서 극에 달한다. 톰은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려 하고 있었고 크리스는 자신이 해고가 되었음에도 계속 회사에 나타난다. 그가 멋진 광고시안을 짜왔다는 것을 회사 동료들이 린에게 넌지시 말해주길 바랬던 것이다. 거기에 혹시 톰이 회사로 돌아와 불미스러운 사고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까지 생긴다. 그는 총기 애호가였던 것이다. 이 생각은 임신한 앰버의 과대망상으로 치부되었지만 의외로 린은 경비를 하는 측에 톰의 사진을 전달하고 결코 들어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의 이상 행동도 불안도 극에 달하면서 이야기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평범한 사람들이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에 처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라 그 사람들에게 동정이 가기도 했다. 허나 이야기 전개가 우울하게 흘러가는 편이 아니라 대부분 웃으면서 읽게 되었다. 말 그대로 최후가 될 때까지 이야기는 흘러가는데 그게 또 나름대로 유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읽고 난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웃게 되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았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될 수 있고 그 상황에 빠진다면 그들처럼 행동하게 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의 상황에 빠져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첫 부분부터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갈등이 극에 달한 마지막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머릿속에 씁쓸함이 남지만 그 이중적인 매력에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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