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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본래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팔아 살아간다. 운이 좋아서 평생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끊임없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변해 간다. 어떤 일을 할 지 선택할 수 있고 얼마간의 시간을 일할 지도 선택할 수 있다. 실상이야 취직을 하게 된 회사의 방침에 따라 움직이게 되지만 일단 표면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노예라는 끔찍한 상황에 속한 사람은 다르다. 그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할지는 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주인에 속한 것이다. 사람의 주인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음에도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 현재 알 수 없는 어딘가에도 있을 것이다. 어제도 무심코 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노예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었다. 과거의 노예는 당나귀 3마리 정도의 값이었다고 한다.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고 그 평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한을 타인이 가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같은 인종 간에도 벌어지지만 보통은 다른 인종 간에 벌어진다. 노예제라는 것의 특성상 일단 합리화가 필요하다. 가증스럽게도 자신의 존귀함을 유지하고 말도 안 되는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는 입장이니 자신의 사악함을 드러내놓고 인정하면 될 것을 그건 싫은 것 같았다. 여기에도 노예제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옥타비안이고 성은 없었다. 후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의 성에 기트니가 쓰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옥타비안을 산 주인의 성이므로 그것을 그의 성으로 쓰는 것은 좀 부당한 느낌이었다.
옥타비안은 커다란 저택에서 왕자처럼 살아간다. 아름다운 어머니 카시오페이아 공주가 그의 곁에 있었고 아버지는 없었다. 그 집은 넓고 쾌적한 편이었으나 기이한 면이 있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으며 이름이 아닌 숫자로 서로를 지칭했다. 가령 집의 주인인 기트니씨는 03-01이었다. 숫자가 앞에 위치할수록 높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테면 왕은 01-01이었고 기트니의 연구를 후원하는 귀족은 02-01이었다. 옥타비안은 그런 기이한 집에서 자랐지만 그는 그 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므로 그 집이 무엇이 이상한지를 몰랐다. 무언가 이상하지만 무엇이 이상한지도 알 수 없는 가공된 세계 속에서 자라난 옥타비안은 자신의 처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왜 자신과 어머니만 이름으로 불리는 지도 알 수 없었고 많은 남자들이 어머니의 호감을 얻으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저택에서 도련님이라고 불리며 온갖 교육을 받았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전 분야를 망라한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음악 수업도 들어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옥타비안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집안의 학자들이 전부 주목했다. 그가 다소 불만을 품은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과 어머니가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 이야기가 좋았고 어머니가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지만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모자는 함부로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사실상의 감금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마차를 탔는데 창밖을 내다보지 않도록 주의를 들었다.
아름다운 여왕처럼 저택에서 군림하는 어머니와 학문의 바다에 빠져 사는 생활은 옥타비안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어려서는 알 수 없었지만 성장할수록 현재의 상황이 무언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후에야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매 번 식사량을 적고 배설물의 무게를 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옥타비안은 태어나서 내내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저택 내에 옥타비안이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방이 있었다. 그 방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으며 소름끼치게도 그 방의 입구에 옥타비안의 얼굴이 장식되어 있었다. 해골표시 대신에 옥타비안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 놓은 것이었는데 다른 학자들은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어린 옥타비안의 입장에서는 소름끼칠 뿐이었다.
안온한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나들이 이후의 일이었다. 항상 마차 안에 얌전히 있을 것을 요구받았었지만 그 날 기트니씨는 기분이 좋았다. 옥타비안은 그것을 기회로 마부석에 하인과 함께 앉아서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의외로 기트니씨의 선선한 허락이 떨어지고 옥타비안은 신이 나서 마부석에 앉지만 하인의 반응은 뚱한 것이었다. 옥타비안은 애써 그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은 그런 번호가 아니라며 옥타비안의 팔을 꼬집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옥타비안은 그 이후 보노라는 이름의 하인에게 정보를 얻으려 한다. 보노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를 토대로 옥타비안은 숨은 진실을 알아내기로 한다. 그리고 진실은 비밀의 방 안에 있었다. 자신이 실험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옥타비안은 절망하지만 아직 어렸기에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성격이 더 침울하고 진지해졌을 뿐이었다. 이때부터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 책 '옥타비안 낫싱'은 독특한 소설이다. 노예제가 당연시 되던 미국에서 한 소년은 실험대상으로써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점차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소년은 무력했고 상황은 점차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자신의 상황을 바꾸려 하지만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야기는 처음에는 소년의 일기를 통해서 후에는 누군가의 편지나 실험보고서를 통해서 진행된다. 두 번의 분기점이 있는데 기트니씨의 후원자가 사망해 그 상속자가 저택에 방문하게 된 때와 전쟁이 격화되면서 다른 지방으로 피하게 된 석학협회가 천연두파티를 열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의 분기에서 옥타비안의 입장은 파도에 출렁이는 것 마냥 불안정하게 변해간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란 소년이 점차 부당한 현실과 맞서는 이야기 '옥타비안 낫싱' 다음 권이 기대되는 책이었다. 더 큰 파란이 있을 것 같지만 다음을 궁금해 하게 하는 터라 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