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천재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다. 천재인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천재이길 바란다.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다. 자신의 유한한 삶 동안에 의미를 찾길 바라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보통 그것은 자신의 이름일수도 있고 역사에 남을 업적일수도 있다. 이름이든 업적이든 남기려면 누구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천재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런 면에서 아주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 부르바키로 엄청난 양의 논문을 발표하고 수학은 물론이고 다방면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부르바키는 매년 엄청난 양의 논문을 발표하면서도 그 논문의 질은 사람들을 경악시킬 만한 수준의 것을 유지했다. 그의 발표와 저작들은 프랑스 수학계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예술은 물론이고 문학 같은 관계없는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수학자이며 구조주의 자체로도 불릴 정도인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는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곳에는 비밀이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역사에 남을 정도의 업적을 이룰 만한 수학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랐으며 르네상스적 만능인에 속하는 수학자 앙드레 베유의 머릿속에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여러 명의 수학자가 모여 함께 강의계획서를 짜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뛰어난 수학자이고 수학을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베유는 친구가 매번 강의계획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비슷한 질문에 답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일률적으로 강의계획서를 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당시 프랑스 수학계에는 일정한 체계가 없었다. 양차대전이 일어나서 대변혁이 일어났던 탓도 있었지만 수학을 가르칠 때 일정한 개념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도 않았고 적절한 교습과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매번 무엇을 가르칠지 그리고 가르치지 않을지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야 학생들은 적절한 지식을 얻을 수 없었다. 수학교수들의 관심사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앙드레 베유의 계획은 많은 수학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적절한 강의계획서가 있다면 그것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면 되니 매번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학생들도 대학교 수준에 적합한 수학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우수한 수학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관심이 있는 수학자들이 모여 들고 그들은 무엇을 강의계획서에 넣고 뺄 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번진다. 적절한 수학 교재도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있는 수학 교재는 지나치게 오래된 것이라 지금 쓰기에는 무리점이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학 교수는 그 교재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교재를 통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재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인 수학자들은 그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고 있던 만큼 점차 신이 나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간다.

전쟁이라는 것은 기존의 많은 것들은 바꾼다. 그래서 많은 분야의 것들이 바뀌고 있던 때였다. 교재를 바꾼다면 수학 전반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프랑스 전체 대학에서 사용할 교재를 만든다는 점은 모인 수학자들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의 수학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바닥부터 쌓아올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 한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증명되지 않은 것은 사용할 수 없었다. 시작은 집합에서 하자는 것과 모든 개념을 확립하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모인다.

그리고 함께 일정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에 걸맞은 결론을 내려서 공동으로 출판을 하기로 한다. 그 모든 저작들은 가상의 수학자 '니콜라 부르바키'의 이름으로 출간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수학자가 한 명 탄생한 것이었는데 당시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젊은 수학자들이 의욕적으로 모인 일이었고 희생정신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 '수학이 사랑한 예술'은 모든 분야에 그 영향을 미친 수학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니콜라 부르바키의 저작은 구조주의 그 자체로도 불리고 그 확고한 개념들은 다양한 분야에 흔적을 남겼다. 그 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가상의 수학자를 말하기에 앞서 그 가상의 수학자를 이루어 낸 주요 수학자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니콜라 부르바키의 전체 상을 보게 하고 있다. 숲을 통해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서 숲을 그려 보는 것이다. 단순히 강의계획서를 세우던 일이 점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니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특히 니콜라 부르바키의 저작 대부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의 삶은 흥미로운 것 이상이었다. 구조주의 수학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점도 좋았지만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젊은 수학자들이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는지가 더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