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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평점 :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지만 아픔만큼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 것도 드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의 아픔은 내 아픔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크게 다친 것은 '안 됐네. 힘들겠다' 정도로 끝이 나는 반면 자신의 살짝 벤 손가락은 내내 마음에 걸린다. 사람의 관심은 주로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친구의 장신구가 바뀐 것은 몰라도 자신의 아주 작은 흠은 농구공만큼 커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어디에나 그렇듯 이 관심에 대한 것도 예외가 있다. 무관심이 당연한 것만 같은 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 마을, 딱히 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곳이라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그것도 흥미위주로 말이다. 그래서 타인의 잘못이나 숨기고 싶은 일들에 민감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 오일레이 봄베키는 불행의 늪에 빠진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한적한 시골마을이고 그 곳에서 그는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 그의 엉덩이 깊숙한 곳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되는 마을, 오일레이의 고통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런 마을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작가는 실제로 병을 앓았었고 그것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민간 치료사를 만났었다고 한다. 한 번의 치료가 있고 며칠 후에 다시 민간 치료사가 치료를 해주기로 했는데 그 사람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민간 치료사가 와서 말하기를 자신이 해주기로 했던 치료는 원격치료였으니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그 때 저자는 민간 치료사가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이 책의 주인공 오일레이 봄베키에게 벌어진다. 여느 때처럼 부인의 입 냄새를 맡고 일어나서 엄청난 양의 방귀를 뀐 오일레이는 배 쪽이 아프다 싶으니 화장실로 향한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도 고통이 멈추질 않는 것이었다. 그는 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끝내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만다. 일이 심상치 않게 번지자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치료사가 그에게 온다. 하지만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오일레이의 엉덩이에서 피고름이 쏟아지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더 난감했던 것은 오일레이는 젊을 적에는 권투 챔피언이었으며 지금은 지역 유지이고, 얼마 후면 강력한 여당 상원의원이 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졸지에 망신살이 뻗치고 동네 웃음거리가 된 오일레이는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 양 쪽 측면에 시달린다. 어떻게든 몸의 고통이라도 멈춰보려고 여기 저기 민간 치료사에게 가보지만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어 간다. 한 번 만났던 외과의사가 권했던 대로 바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가 사는 곳의 의료시설은 지나치게 낙후되어 있었고 오일레이는 그런 병원을 신뢰하느니 민간 치료사를 신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민간 치료사에게도 재앙으로 번진다. 많은 치료사들이 명성을 얻고자 오일레이의 엉덩이에 도전하지만 명성을 얻기는커녕 기존에 쌓고 있던 경력도 산산조각을 내면서 실패하고 만다. 그에 따라 오일레이의 고통은 켜져만 가고 오일레이의 엉덩이 깊숙한 곳의 상태는 최악을 달린다.
소재 자체도 독특해서 꽤나 흥미가 있었던 소설이었다. 거기에 남태평양의 문화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는데다가 장광설로 이어지는 민간 치료사들의 설명이나 답변서의 내용이 기발한 느낌이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하나의 질병에 수많은 다른 대안, 더구나 전혀 논리적이지도 의학적이지도 않은 치료법들에 감탄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피고름에 온갖 분비물이 난무하는 덕분에 역겹다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말까지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기 때문에 그 신선한 상상력이 만족스러웠다. 한 남자의 항문 수난기 '엉덩이에 입맞춤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