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폐전쟁 ㅣ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드라마 시리즈 '보스턴 리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직 경험이 별로 없어서 정식 변호사로 고용되지 못한 직원이 가장 친한 변호사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그가 얼마 전에 집을 샀는데 모아 놓은 돈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이자는 5%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아서 월급으로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도 차분하게 갚아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반 이상을 갚은 시점에서 은행이 대출이자는 유동금리에 따른 것이라며 이자를 대폭 인상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달 배로 인상되더니 끝내는 이자가 40%를 넘어섰다. 그는 신용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한 번도 이자를 밀린 적도 없었다. 착실하게 벌어서 집을 가지고 싶었던 것인데 오히려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은행이 갑자기 이자를 대폭 올렸기 때문에 말이다. 결국 이 사건 자체는 친구인 변호사가 은행 담당자와 맞서서 이자를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되지만 이런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화폐전쟁'이다. 다만 옮긴이가 말하듯 지나치게 음모이론에 치중해 있고 어느 정도 추측이 섞여 있기도 해서 '팩션'으로 생각하고 읽는 편이 낫다. 하지만 반 이상이 사실이라고 하니 화폐에 관한 섬뜩한 진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직접 읽고 판가름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과 금융재벌들이 어떻게 세계의 여러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 그리고 금융재벌의 음모에 밀리지 않은 나라의 사례를 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말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하면 빌 게이츠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숨은 실세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경제공황이나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익을 얻는 막후 실력자가 말이다. 그들이 바로 정확한 재산조차 알 수 없다는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한다. 이백년 넘게 금융재벌로 군림하고 있는 이 은행가 가문은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부터 존재해왔다. 처음에는 화폐수집상이었지만 독일의 권력자의 눈에 들어서 그 재산을 관리했고 워털루 전투를 기점으로 금융재벌이 되었다.
정보를 제압하는 자가 세계를 제압한다고 할 수 있었는데 각국에 첩자를 심어두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의 정세가 워털루 전투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프랑스가 승리한다면 영국의 국채는 휴지조각이 될 것이고 영국이 승리한다면 영국 국채는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로스차일드 가문은 마침내 전쟁의 성패에 대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영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영국의 국채는 큰 상승세를 타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로스차일드가의 셋째인 네이선은 일부러 그 정보를 듣고도 무표정을 유지했다. 정보를 함부로 흘릴 생각도 없었고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영국 국채를 전부 팔 것을 지시한다. 그 상태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로스차일드가가 영국이 패배한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휴지조각이 될 것인 국채를 미친 듯이 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국채의 값은 바닥을 쳤고 이때 네이선이 자신의 수하인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국채를 전부 사들이라는 것이다. 네이선은 영국 국채의 원래 가격 5% 정도에 대부분을 매입했고 그로 인해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는데 잉글랜드 은행에서 그의 수표를 받아주지 않자 그는 다음날 여러 명의 사람들과 잉글랜드 은행을 방문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잉글랜드 은행이 발행한 수표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가 환금해간 양이 그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금의 반 이상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날 네이선이 더 많은 수표를 가지고 방문했다. 겁에 질린 은행 측은 결국 정중히 사과하고 앞으로 로스차일드 은행의 수표를 처리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겠다고 제의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의 화폐발행권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장악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각국의 경제를 장악한 것이다. 어디든 공격대상이 있다면 돈을 마구 퍼부어서 거품상태로 만들고 순식간에 돈을 전부 빼내서 자금줄을 마르게 한다면 항복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각국의 목을 조였고 미국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연방 준비 은행이라는 이름만 정부의 소유인 것 같은 민간은행을 실질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모든 통화를 통제하고 예전에는 금으로 각국의 목을 조였다면 이제 관리하게 편한 화폐를 이용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그들,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공황이 일어나는 것도 이들의 수익을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꽤나 충격이었다.
이렇게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면서 동시에 각국의 화폐발전사를 같이 전개해나가고 있다. 이어 미국 대통령이 왜 그렇게 많이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금융재벌의 음모와 묶어서 설명하는 것이 꽤나 흥미진진해서 더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더욱이 그들이 금본위 정책을 폐지하려는 것과 우리나라가 IMF의 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금모으기 운동'의 기억이 교차되면서 오싹한 느낌까지 받았다. 이렇게 여태 알 지 못했던 화폐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는 '화폐전쟁' 굉장히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