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문 -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최고의 젊은 작가 한한 대표작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여자가 바람둥이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라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여자들은 자신과 달리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우는 다르고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허나 자신의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기 힘든데 몇 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5년 후나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 아주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른이 되었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성격도 생각하는 방법도 좋아하는 것도 말이다.

얼마 전 자기계발서에서도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사람은 5년 후의 모습도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으며,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5년 동안 읽은 책의 양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 구성한 사회 역시 크게 변하지 않는다. 부조리함에 염증을 느끼고 사회가 크게 바뀌길 바라지만 설사 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사회가 안정화되고 나면 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10대가 하는 고민의 폭은 다를까 했는데 이 책 '삼중문'을 읽어보니 그것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심리적으로도 계속 부딪히던 나라라서 가깝게 생각했지만 그 속사정을 알면 알수록 먼 나라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기묘하게 섞여 독특한 사회구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잔뜩 있어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중국의 모습은 혼란스러웠다. 책의 주인공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10대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 '삼중문'에서는 린위샹이라는 소년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린위샹은 어렸을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집에 책이 많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부 과시용으로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시용으로 책을 가지고 만 있을 뿐인 아버지가 무조건적으로 강요해서 하게 된 독서이니 그가 책을 좋아하기는 무리가 었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과시용으로 가지고 있을 만큼 허영이 강한 아버지라서 그에게 수많은 고전문학을 읽고 외우도록 시켰고 린위샹은 덕분에 천재소년으로 동네에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책에 취미가 없었고 실은 천재도 아니었다. 쓸데없는 허영을 더했을 뿐이었던 어린 시절이 지나가고 중학생이 되자 린위샹의 실제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외운 고전문학을 인용하거나 누군가의 글을 도용하는 식으로 글을 작성하면서도 자신에게 뛰어난 글재주가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자신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린위샹이 경쟁이 치열한 문학반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별재주도 없으면서 자비로 책을 출간한 마더바오가 문학반 담당 선생으로 부임하면서 린위샹에게도 기회가 생긴다. 허영만 있고 재주는 없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린위샹은 문학반에 들어가고 문학반만 갔던 여행에서 예쁜 여학생과 마주치게 된다. 중국이름은 알 수 없고 서양이름인 '수잔'이라는 이름만 알게 된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된 린위샹은 공부에서 점점 멀어만 진다.

그 과정에서 문학반에서 사귀게 된 친구와 수잔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하기도 하고, 수잔의 친구에게서 그녀의 정보를 얻으려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린위샹의 허영을 더 키울 일이 하나 발생하는데 그가 낸 글이 전국 일등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회 자체가 너무 허술하기도 하고 그의 글이 실린 문집도 허술했지만 린위샹과 부모는 크게 만족한다. 이때 조금만 겸손한 모습을 보여도 좋으련만 본인의 입으로 자랑을 하고 다니느라 바쁜 린위샹이었다. 그 후 졸업반이라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과외를 받게 된 린위샹은 공부에 집중하려 하지만 수잔에 대한 마음만 커져갈 뿐이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년 린위샹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나오는데 그 소년이 실상은 오히려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취하는 태도도 허영심도 우습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외에는 마작을 하느라 밤새는 줄 모르는 린위샹의 어머니가 당혹스럽기도 했고 경제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그런지 돈이면 전부 통용되는 사회분위기가 묘하기도 했다. 돈만 있다면 부정입학도 대놓고 가능한 사회의 모습이 놀라웠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모습이 크게 달라도 10대가 하는 고민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읽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입시에 대한 고민에 휘둘리고 자신도 짝사랑을 하면서 중학교 1학년이 연애놀음을 한다고 한심해하는 린위샹의 모습을 공감하기도 하고 우습게 여기기도 하면서 읽다보면 책의 끝에 와 있었다. 고민 많은 10대의 이야기를 수많은 고전의 문구를 통해 풀어낸 '삼중문' 중국 사회를 들여다 볼 기회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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