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긋나긋 워킹
최재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흔히 몇 번 마주치지 않은 사이에 인연을 강조하려고 사용되는데, 이 말의 실제 의미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옷깃이 스치는 인연이 되려면 어떤 돌을 다 닳게 할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천 년에 한 번 내려오는 선녀가 돌 앞에서 춤을 추는데 그럴 때 닿은 선녀의 옷자락에 돌이 닳을 정도의 시간과 우연이 있어야 옷깃이 스치는 인연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별 것 아닌 인연조차도 엄청난 시간과 행운이 필요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백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연분을 찾으려면 그 몇 배로 힘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붙잡으려는 것은 옷깃만 스치고 지나치는 인연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닌 인연을 만들기도 힘든데 자신의 옆에서 함께 웃어줄 인연을 붙잡는 것이 쉬울 수가 없지요. 그래서 더 일단 부딪혀보자는 발상으로 만남을 엮어가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모르는 일이니까요. 백 번을 만나서는 인연을 못 찾아도 천 번을 만난다면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도 말입니다. 물론 천 번이나 다른 사람을 만나야 인연을 찾을 수 있다면 중도포기자가 속출할 것 같습니다만…….

이 책 '나긋나긋 워킹'은 소개팅에서 만난 두 남녀의 연애를 담은 소설입니다. 그래서 진한 연애로 넘어가기 전 남녀 간의 탐색전과 줄다리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때가 가장 긴장감 넘치는 터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조마조마 해집니다.

주인공은 웹 디자이너 임해진과 대기업 과장인 윤남욱 두 사람입니다. 보통 남녀의 연애를 담은 소설에서는 여자가 화자로 등장하는 터라 당연히 처음에 나온 임해진의 입장에서 서술 될 것으로 알았습니다. 허나 이 책에서는 그것마저 연애의 줄다리기인 것 마냥 두 사람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보여줍니다. 그 덕분에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 있지만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점은 좋았습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두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재밌더군요.

윤남욱은 아직 전의 실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터라 소개팅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인 오과장이 부추기기도 했고 상대 여성이 워낙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들은 터라 소개팅을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당일이 되자 패션기자라던 본래 소개팅을 하기로 했던 여성은 못 나온다고 합니다. 대신 대타로 다른 사람이 나온다고 연락이 오자 윤남욱은 소개팅을 하지 않으려 상대여성에게 연락을 하려 하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같은 시각 회의를 하던 임해진은 급하게 소개팅 장소로 달려갑니다. 그 와중에 전화는 받지 못했고 약속장소에 나가자 소개팅 상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 불현듯 흡연의 욕구가 떠오릅니다. 사실 임해진은 흡연자였는데 소개팅 할 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흡연하는 여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남욱이 도착하고 상대 남자의 첫 인상이 마음에 들었던 그녀는 가능한 흡연욕구를 참아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윤남욱이 담배를 피겠다고 하자 참지 못하고 같이 담배를 피게 되고 맙니다. 아쉽지만 담배를 너무 피우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윤남욱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고 그는 임해진에 대해서 좋은 첫 인상을 갖게 됩니다.

두 사람은 장소를 옮겨서 식사를 하는데 메뉴는 삼겹살입니다. 이 때 예사롭지 않게 고기를 배열하고 균일하게 자르고 딱 맞는 순간에 뒤집는 임해진의 모습을 윤남욱은 재미있게 받아들입니다. 거기에 그가 고기를 뒤집으려고 집게를 잡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이었던 겁니다. 윤남욱은 말없이 굳어졌다가 그가 집게에서 손을 살며시 거두자 풀리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폭소를 터뜨립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지쳐있던 터라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탓이었습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어 임해진이 택시를 타고 가자 윤남욱은 그녀가 시계를 두고 갔음을 알게 됩니다. 시계를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라도 그녀와 만나야 할 이유가 생겼던 겁니다. 윤남욱에 대해 후한 점수를 준 임해진, 임해진과 다시 만나려 하는 것이 시계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헷갈리는 윤남욱. 이때부터 두 사람의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인연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그런 인연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법입니다. 소개팅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두 남녀의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터라 가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서로를 탐색하는 마음, 그 과정에서 서로 만들게 되는 독특한 추억들이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지만 그 호감이 연애로 번져가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이미 만난 순간부터 추가 상당히 한 쪽으로 기운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 상당히 즐겁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밀고 당기기 연애 '나긋나긋 워킹'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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