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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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오늘이 지구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겠는가' 입니다. 철학자는 못 되는 지라 사과나무를 심을 생각은 못하고 그때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답했었습니다. 반면 생의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순간에 가족과 함께 단출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겠다고 선택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랜디 포시', 카네기멜론 대학 컴퓨터 공학 교수이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앨리스 프로젝트의 선구자 그리고 이제 '마지막 강의'라는 이름의 동영상 강의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생을 정말 즐길 줄 알았던 랜디 포시는 어느 날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췌장암에 걸렸다는 것이었지요. 다른 암에 비해서 예후도 좋지 않고 생존율도 높지 않은 터라 이 소식은 그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까지 놀라게 합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세 아이와 좀 더 생을 즐기고 싶었던 그는 과감하게 수술을 하기로 선택합니다.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결과를 들으러 간 의사의 사무실, 담당의가 오기 직전 그와 그의 아내는 수술 결과를 미리 알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순간 '크리넥스가 없다니 서비스가 별로군'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이어 들어 온 담당의가 아내를 진정시키는 것이 꽤나 탁월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바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랜디 포시 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태도는 아닌 셈입니다. 심지어 후에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린 상황에서 자신이 시한부라는 이유로 딱지를 끊지 않자 그 사실을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니까요.

허나 마흔 일곱의 랜디 포시는 졸지에 생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아내 재이를 혼자 남겨두고 싶지도 않구요. 이 때 아내 재이는 보통 사람들의 반응을 보입니다. 좀 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달라는 거지요. 하지만 랜디는 강의를 하고 싶다고 고집합니다. 그가 일중독이어서도 아니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상처 입은 사자도 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고 교육자로써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서기도 합니다. 또한 그 강의 내용은 아버지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할 자신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함께 보낼 수 있는 아내의 생일에 강의를 하러 비행기에 오릅니다.

생의 마지막 강의, 기력은 쇠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음에 대해서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강의의 주제는 바로 '삶'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삶을 말한다는 것이 언뜻은 의아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삶에 대한 생각이 더 공감이 갑니다. 그는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새 할인점에는 점원이 아니라 본인이 계산하는 자율계산대가 있습니다. 생필품을 사러 갔다가 자율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던 랜디는 카드로 결제를 하는데요. 영수증이 안 나와서 한 번 더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영수증이 두 장이 나옵니다. 두 번 결제가 된 것이지요. 이 때 그는 고민을 합니다. 결제금액은 16불, 매니저를 부르면 15분 정도를 소요하고 나서야 이중으로 결제된 금액 16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한정된 삶을 사는 처지이고 그 시간을 그런 식으로 날려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돈을 감당 못할 경제상태도 아니었구요. 그래서 그는 환불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나옵니다.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그에게는 '시간'이 절실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 시한부가 아닌 사람이 있을 까요. 병에 걸리지 않아도 칠팔십년 정도로 사람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외도 자신이 한 마지막 강의에 대한 해설서이자 속편인 셈이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지혜나 살아온 이야기 자체를 압축한 만큼 꿈에 대한 것도 나오는데요. 어린 시절 갔던 디즈니랜드에서 언젠가 반드시 디즈니랜드 같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어린 시절의 꿈을 실행에 옮기는 일도 말입니다. 다른 꿈 여러 가지도 실제 실행에 옮겼더군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 꿈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랜디 포시 교수의 아내 재이가 한 '제발 죽지 말아요'라는 말이 더욱 마음 아팠구요. 남은 생 동안 이 강의 내용을 여러 번 떠올리게 될 것 같네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마지막 강의'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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