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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랜드
섀넌 헤일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을 보고 가슴 설레는 일도 한 번쯤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 상상 속의 인물과 비교하게 된다면 실제 인간관계는 상당히 고달파질 것입니다. 이 책 '오스틴 랜드'의 주인공 제인이 바로 그런 경우 입니다. 가볍게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녀의 연애는 매번 꼬여만 갔습니다.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만나는 것을 바랬으니까요.
그런데 제인이 남자친구를 만들려고 하면 그녀의 주위에는 유부남만 맴돌고 그 생각을 포기하면 싱글남이 갑자기 보이니 전부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유지하기도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진지한 관계를 기대했다가 상처받고, 다시 한 번 기대했다가 상처받는 이 패턴을 반복하는 사이 점점 제인은 지쳐갔고 상상 속의 인물 '미스터 다아시'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물론 제인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노생거 사원'을 제외하면 제인 오스틴의 전 작품을 두 번 이상 읽은 것도 사실이었구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소설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던 제인이 영국의 BBC 드라마로 제작된 '오만과 편견'을 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한 '미스터 다아시'에 푹 빠지게 된 것이지요. 무뚝뚝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똑똑한 여성 엘리자베스 베넷과 완벽한 사랑의 순간을 보여준 그의 모습에 말입니다. 한심스런 현실 속과 비교를 하다 보니 상상 속의 인물이 완벽해보였고, 현실의 연애를 마다하고 상상 속의 남자를 꿈꾸는 지경이 되어 버린 겁니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나이 서른이 넘은 여성이 말이지요.
제인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안정적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외모도 성격도 꽤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그녀 집에 있는 화분 이파리처럼 말라버린 상황,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던 이 상황을 한 사람에게 들키고 맙니다. 엄마와 함께 집을 방문한 캐럴린 대고모한테 말입니다.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르는 제인에게 대고모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던 정도의 일이었지만 캐럴린 대고모가 돌아가시고 제인에게 상속을 남겼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제인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는데요. 그녀에게 캐럴린 대고모가 남긴 것은 영국으로의 일등석 항공권과 3주짜리 영국행 휴가여행 상품권이었습니다. 오스틴 테마 파크에서 보낼 수 있는 3주,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인 것 마냥 3주를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인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자극하는 이 선물에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당혹해 합니다. 허나 어차피 환불 불가인 상품이었고 제인은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그 여행을 가서 다아시에 대한 집착을 떼어버리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도착해보니 보닛을 쓰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되는 1816년의 세계가 있었는데요. 이제 제인에게는 현대와 떨어져서 1816년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 테마 상품을 즐기러 또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고객들과 보내는 3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실제로 좋아하기도 하고 해서 나온 작품은 전부 읽어본 터라 제인의 심정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고 읽었습니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만 해도 '오만과 편견'의 현대판이라는 식으로 광고되어서 읽었었구요. 그런 맥락으로 BBC드라마 '오만과 편견'도 봤던 터라 콜린 퍼스가 연기한 미스터 다아시에 열광하는 제인의 심정도 이해는 됐습니다. 제인만큼 열광적은 아니었지만 그 드라마에서 콜린 퍼스가 꽤 매력적이긴 했거든요.
이 책 '오스틴 랜드'는 제인 오스틴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말이 딱 맞는 책입니다. 언뜻은 콜린 퍼스에 대한 열광 같은 느낌도 있지만 주인공 제인이 열광하는 인물은 어디까지나 '미스터 다아시'니까요. 정확하게는 그 시대와 진지한 관계를 동경한 것 같습니다만, 오스틴 랜드에서 다른 시대의 '어스트와일 양'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점점 제인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상상과 실제는 다른 법이니까요. 그래서 유쾌한 로맨스 소설이라기보다 한 여성의 자아확립기 정도로 읽었습니다. 오스틴 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가로써의 옛 열정을 되찾기도 하고 그녀의 옛 남자친구를 어렸을 때부터 하나하나 되새김으로써 마지막에 이르게 되니까요.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전개됩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은 몸무게에 집착하는 모습도 있고 심히 눈뜨고 못 봐줄 정도의 창피한 상황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런 면에서 제인은 점잖은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이 정서적인 부분에서 혼란스럽다가 안정을 찾아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구요. 감정을 억누른 점잖은 말 속에 감정의 끈을 찾아가던 시대 1816년, 오스틴 랜드 속에서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위선이 인상적이기도 했구요. 제인 오스틴 소설 속의 장면이나 인물을 떠올리면서 보는 재미도 꽤 컸어요. '오스틴 랜드' 소재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