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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정약용은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고 시험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저서 목민심서를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목민심서가 정약용의 훌륭한 저서라는 것도 그가 뛰어난 학자이며 관리였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냥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정약용의 실제 인생은 그가 가진 재주에 비해서 상당히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만큼 뛰어난 인재는 그렇게 흔한 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산처럼 노론의 공격을 막아주던 군주 정조가 떠나가자 그는 기나긴 유배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수렴청정을 하게 된 정순왕후와 노론 쪽에서 선왕인 정조의 총애를 받던 그를 눈엣가시 취급한 것입니다.
이 책 '다산'은 가진 재주가 뛰어나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만큼 반대세력의 질투를 받게 된 다산 정약용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재주가 뛰어나 왕의 신임을 얻었지만 그 재주로 인해서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정약용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그의 어린 시절을 짤막하게 보여주고 재능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 승진을 거듭하던 시절과 바람을 막아주던 큰 산이 무너진 이후 천주학 논쟁에 휘말려 유배 길에 오르게 된 이후와 해배된 이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정약용이 산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이는 그의 절친한 벗이며 큰형 정약현의 처남인 이벽입니다. 두 사람은 쉬지도 않고 산을 올라 미리 산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두 사람을 만납니다. 한 명은 서양인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중국인입니다. 이벽은 먼저 그 두 사람에게 술을 한 잔씩 받아서 반씩 섞어서 마시는데요. 그 후에 이벽은 정약용에게도 똑같이 따라 할 것을 권합니다. 정약용이 똑같이 따라하자 이벽은 술을 나눠 준 두 사람을 정약용에게 소개합니다. 서양인 신부 복색을 한 사람은 '마테오리치', 중국인은 '주자'라는 겁니다. 정약용은 두 성인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그 순간 그는 꿈에서 깨어납니다.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자 그를 부른 목소리의 주인이 눈앞에 있습니다. 정약용은 유배가 풀려 얼마 전에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 홍씨와 결혼 60주년 회혼일이 머지않은 시점입니다. 그 기념으로 아들이 가락지 두 짝을 세공해 왔고 그것을 미리 아버지에게 보이러 그를 깨웠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꿈이었던 셈입니다. 정약용은 허탈했지만 집안은 곧 회혼연을 할 준비에 분주해집니다.
허나 정약용은 회혼일 당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잔치를 준비하던 그의 집에서는 장례의 준비로 분주해집니다. 정약용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생애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죽어갈 때 자신의 생이 한 순간에 다시 보인다고 합니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의 눈에 들어서 승승장구하던 시절, 너무나 자신만만했고 학문에 욕심이 많아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새로운 학문에 손을 댔던 일, 새로운 학문이 도움이 되기도 했으나 그 안에 천주학이 있었고 그 천주학이 오히려 독이 됐던 일까지 많은 일들이 정약용 안에서 흘러갑니다.
스물여덟 살에 벼슬에 오른 후 정약용이 암행어사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한 탐관오리를 파직케 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노론의 서용보였다고 하더군요. 정약용이 한 일은 분명 자신의 직분을 다 한 것이었지만 서용보는 이 일로 앙심을 품었고 이후 정약용의 평생을 괴롭힙니다. 서용보는 파직 당한 후에 정순왕후 쪽에 뇌물을 썼고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요직에 오르게 됩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적이 나라의 중요한 자리에 오르고 정약용에게는 천주학을 익혔었다는 약점이 있었구요.
그 이후부터 정약용은 물론이고 정약전, 정약종 삼형제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고 하지만 나라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허나 왕정이라는 것은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편이구요. 왕이 그런 자신의 권력을 최대한으로 휘두르고 싶다면 모든 요직에 자신의 심복을 두고 싶을 것입니다. 정순왕후와 노론 쪽에서는 수렴청정기간 동안 자신들의 권력을 평안히 유지하기 위해서 선왕의 총애를 받던 남인들을 몰아내려고 계획한 것이었구요.
굴곡이 많은 정약용의 생애를 그가 죽음을 맞기 전 돌아보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권이라 그의 인생의 한창 빛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에 휩싸인 인물을 구하기도 하고 고을 원님으로 선정을 베풀기도 합니다. 학자로 뛰어났으나 정쟁에서 밀려서 인생 후반이 힘들었던 정약용이라 오히려 좌천되었던 때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구요. 선정을 베푸는 청렴한 관리인데다가 명판관이라서 옛 이야기 속의 원님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물론 그 때는 큰 산처럼 그를 총애하는 왕이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다음 2권에서는 학자로써는 더 빛난 정약용이겠지만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이어질 터라 조금은 씁쓸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