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이야기 - IQ 76, 인생의 진정한 로또를 찾아낸 행운아
퍼트리샤 우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하는 것도 시간낭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약속장소가 집 앞이라서 걸어가면 되는 일은 흔치 않고, 교통사정에 따라 도착하는 시간이 달라지니 약속장소에 딱 맞추어 도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결국 불안한 생각에 어딘가에 갈 때에는 삼사십분 정도의 여유를 잡고 출발합니다. 덕분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얻을 수 있구요. 매일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주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대체로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의 속도입니다. 낮 시간대에도 여유 작작 걷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아침 출근시간대 지하철역에서는 여유롭게 걷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특이한 편입니다. 모두가 뛰어다니는 공간에서 혼자 여유롭게 걸어가다 보면 빠른 세상에서 혼자 느린 것 같아 불안한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가만히 투덜거립니다. '저 사람들이 지나치게 빠른 거야'라고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페리 역시 지나치게 빠른 사람들 속에서 사는 '느린'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를 보고 정신지체라 하면 반박합니다. 자신은 느린 사람이고 아이큐가 76이므로 정신지체가 아니라구요. 참고로 정신지체로 판명되는 것은 아이큐 75이하라고 하는 군요. 느리지만 현명한 페리,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에게 큰 시련이 생깁니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너무나 사랑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지요. 페리는 너무 슬퍼서 멍해져있는데 가족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남긴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그리고 페리를 어디에 떠맡길지만 궁리합니다. 심지어 사촌 형 중 큰 형인 존은 자기 집 객실이 무너져서 페리를 재워줄 수 없답니다. 그러면서 페리의 명의로 되어있던 할머니의 집은 한시적 권한 위임장을 받아서 팔아버리지요. 집에 와서 할머니의 보석을 전부 가져가는 엄마 루이즈, 그림과 할아버지가 만드신 배 모형을 가져가는 사촌형 존, 제일 늦게 와서 쓰레기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다 수집한 동전을 가져가는 사촌 형 데이비드. 페리는 이 상황에 분개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전부 챙겼으니까요. 할머니의 유골이 담긴 유골함, 주변 사람들이 고양이 오줌 냄새가 난다지만 할머니 냄새가 배어있는 소파, 할머니가 빙고를 하러 갈 때 입으신 옷 같은 것들 말이지요.

페리는 결국 자신이 일하는 홀스테드 선용품점 위층에 살게 됩니다. 경비를 겸해서요. 이것은 사장 게리의 제안이었구요. 이때를 기점으로 페리의 생활이 약간 바뀝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시나몬 롤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설탕 도넛을 사고 할머니 빨래가 없어져 빨랫감이 줄고, 그게 너무 슬퍼서 또 혼자 웁니다. 그러다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집은 물바다가 되고 갈아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시리얼 사오는 것을 잊어버렸거든요. 큰 소리가 나자 아래층에서 일하던 친구 키스와 사장 게리가 올라옵니다. 둘은 페리를 진정시키고 옷과 먹을 것을 가져오고 세탁기를 새로 주문합니다. 줄어버린 빨래가 슬프니 주변 친구들의 옷을 함께 세탁해주기로 하구요.

할머니의 죽음은 너무 슬프지만 페리의 곁에는 할머니가 같이 있습니다. 유골함에 들어계시고 말을 하시지도 않지만 페리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조심해' 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습관적으로 산 로또가 1200만 달러에 당첨됩니다. 친구 키스와 함께 올림피아로 가서 복권 당첨금을 수령하고 텔레비전에도 페리의 이야기가 방송됩니다. 이때부터 하이에나 같은 가족들, 각다귀처럼 달려드는 모르는 사람들이 페리의 주위를 맴돌면서 당첨금을 빼앗으려 합니다.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던 루이즈는 갑자기 엄마라고 부르라 하구요. 객실이 무너졌다던 존은 앞으로 돌봐주겠답니다. 데이비드도 나타나 같이 살자고 하구요. 관심도 없었고 페리 근처에도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전부 그에게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페리는 그 상황이 싫지 않습니다. 자신을 싫어하던 사람들이 그가 부자가 되자 전부 그를 좋아한다면서요.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전부 나를 모른다 라구요.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하기도 했지만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리의 말대로 문제의 본질이 '고작 돈 문제'인 것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전에는 닿기도 싫어했던 사람들이 페리가 복권당첨자가 되자 모두 친하고 싶어 합니다. 이 부분을 볼 때 부글부글했는데 페리의 생각은 다르더군요. 또 페리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그에게 돈은 고작 돈일 뿐이구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그게 다입니다.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 것은 오랜만이지 싶습니다. 고작 돈 문제에 휘둘려 온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봤습니다. 불쾌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더 불쾌한 태도로 대응해 온 것은 아닌지 너무 빠른 속도로만 인생을 살려고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느리지만 현명한 페리에 대한 '페리 이야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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