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보다 성인이 된 이후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는 주변의 모든 것이 신기해서 시간이 거의 정지 된 것 같이 느껴지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주변 것들이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어른에게는 잠깐이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영원같다고 하더군요. 같은 시간인데 주변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잃었기 때문에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지요. 그런데 어른이 된 이후 많은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고, 배운다는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책 '산중일기'는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책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담고 그저 흘러가는데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담은 내용과 일상을 담은 내용으로 나뉩니다.

불교와 관련된 일화나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담아놓은 다양한 생각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점이 좋습니다. 하지만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있다'는 말처럼 웃게도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아무래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나이 들어서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갔던 이야기를 하는 '깨깨 씻어라, 인호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구요. 대중목욕탕을 가면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탕의 경우 꼭 모자가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의 여성들은 보통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특히 아이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도 여탕 쪽으로 들어온 경우에는 더하구요.

그런데 저자분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여탕으로 데리고 가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작은 키와 어려보이는 얼굴을 믿고 9살이라고 속이고 말입니다. 당연히 목욕탕 주인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고 목욕탕 손님들 역시 불쾌한 시선으로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몇 살이냐면서요. 그 때 9살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게 창피했다고 서술 되어 있는데요.

여기까지는 다른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지만 어머니가 굳이 나이를 속여 여탕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은 돈을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깨끗이 씻기려고 그런 것이었다며 회상하는 부분부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의 보호하에 있지 않습니다. 혼자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 생기구요. 그런 무조건적인 보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시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자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감정이 더 하기도 했구요.

이렇게 어린 시절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글이 애잔했다면, 나이가 들은 이후 이제는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보호해야 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쓰인 글의 느낌은 또 달랐습니다. '가족'이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나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에 대해서 회상하는 것도 그랬구요. 자상한 아버지는 감정적인 아버지라 아이에게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아닌가 반성하는 느낌이 나는 글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글과 함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고 잠시 숨을 돌리는 기분이 들게 하기도 했거든요. 사람이 길어야 백년 남짓을 사는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을 준 책이었습니다. 글로 보여주는 휴식 같은 책 '산중일기'. 여백의 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더욱 좋았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